계명대신문사가 주최해온 계명문화상이 28년을 맞았다. 연륜이라 할 것까지는 없지만 적잖은 세월이 흐른 것이다. 새삼스러운 생각이 든다. 28년 전 문학을 지망하던 친구가 계명대 신문사 편집국장이 되면서 전국의 대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문학상을 만들어 대학생들의 문학에 대한 관심도 높이고, 학교 홍보도 하겠다는 생각으로 문학상 제정을 추진하던 일을 이 대학 영문과에 다니던 나는 곁에서 지켜보았다.
당시로서는 아주 사소한 일처럼 보이던 ‘계명문화상’ 제정이 이제는 전국의 문학하는 대학생들이 반드시 거쳐 가야 할 관문처럼 되었다는 평가를 받는 권위 있는 문학상으로 성장했다는 것은 그간 신문사에서 이 상을 주관하면서 고생해 온 신문사 기자들, 학교 당국의 노고가 컸을 것임에 틀림없다. 얼굴도 모르는 그분들의 노고에 나 역시 문학하는 한 사람으로서, 그리고 계명대 동문의 한 사람으로서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나도 재학 중 이 상에 한 번 응모한 적이 있는데 낙방했었다. 그리고 졸업 후 소위 문단에 등단하고 시인이 된 후 예심에 여러 차례 참가한 적이 있다. 누구보다도 비교적 이 문화상의 발차취를 많이 알고 있는 셈이다. 이 상이 시행되던 초기에는 지금은 이름만 되면 알 만한 많은 문인들이 대학문사로서 이 상을 거쳐 갔다.
현재 희곡작가로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심산(연세대)이 문학비평부분에 당선됐고, 소설가 이인화(서울대, 현재 이화여대 교수) 역시 류철균 이라는 본래 이름으로 비평부분에 당선돼 상을 받아가던 모습이 새롭게 떠오른다. 무엇보다도 <논리야 반갑다>, <아홉 살 인생>이라는 베스트셀러 작가로 유명해진 위기철(연세대)이 상을 받으러 왔을 때, 애인이던 공지영 학생이 따라왔던 기억이 난다. 이후 공지영 씨는 한국의 대표적인 유명작가가 되어 계명문화상을 심사하고 기념강연을 하러 계명대에 와서 자신이 대학생 때 이 상을 받는 친구를 따라 온 기억이 있다고 말하는 것을 나는 들은 바 있다.
계명대 출신으로 문단에서 활동하고 있는 권진희 시인도 계명문화상에 시가 당선되기도 했고, 이밖에 많은 계명대 출신 문청들이 이 상에 많이 당선되었다.
고은, 신경림, 황동규 같은 원로 문인들이 심사위원으로 거쳐 갔고 이번 28회 심사위원으로 참가한 안도현, 성석제 같은 신예(?)문인들도 두루두루 이 상의 심사위원으로 거쳐 갔다. 심사위원 하니까 생각나는 게, 10여 년 전 신문사 기자가 누구를 심사위원으로 모시는 게 좋으냐며 내게 자문을 구해왔었다. 당시에는 심사를 하면 시상식에 와서 강연을 해야 하는 관례가 있었다. 그래서 그간 나는 기자들이 자문을 해 오면 시국도 그렇고, 학생들에게도 필요할 것 같아서 주로 진보성향의 문인들을 추천해 왔는데 그때는 마광수 시인(연세대 교수)이 필화사건으로 언론에 오르내리기도 했고 하여 마광수 교수를 추천하였더니 신문사에서 그대로 시행하였다.
이후 아는 교수에게서 “그런 사람을 어떻게 추천했느냐”는 핀잔을 받은 바도 있는데, 내 생각으로는 문학에 대해, 그리고 性에 대해 비교적 자유롭고 발랄한 생각을 가진 분의 견해를 학생들이 들어보는 것도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도 이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학생들이 한쪽으로 편향된 ‘도그마’에 몰입하기 보다는 다양한 세계를 엿볼 수 있는 게 대학생활이기 때문이다.
올 해는 당선자들에 대한 시상방식이 바뀌었다. 그간에는 심사위원이 학생들을 모아놓고 일방의 문학강연을 했다. 그래도 당시에는 많은 청중이 모여들었다. 그러나 세월이 달라져서 그런지 요즘은 학생 청중들이 모이지 않는다고 한다. 이런 현상은 학생문단뿐 아니라 기성문단도 마찬가지이다. 문단에서 ‘근대문학의 종언’이 논란의 중심을 이룰 정도로 문학이 독자들에게서 멀어졌다. 이런 현상에 대해 여러 가지 진단이 있지만 여기서 언급하기는 지면관계로 적절치 않아 보인다.
각설하고 이런 문학소외 현상이 대학문단에도 불어 닥쳐 이를 타개하기 위한 방편으로 이번 28회 시상식에서는 예선 통과자들을 모두 모아서 심사위원과 대화하고 토론하는 ‘콜로키움’ 형식을 선택했다. 누구의 아이디어인지 모르지만 학생들에게 문학에 대한 관심을 끌려고 한 적극적인 시도로 칭찬받아야 할 것 같다.
이번 콜로키움 사회자로 참가한 나는 토론에 참석한 학생들에게 요즘 대학문단에 대해 많은 것을 물어보았다. 내가 많이 배웠다. 경희대 국문과에 재학 중인 시 당선자인 학생은 자기 학교의 경우 요즘 국문과에서도 시를 쓰는 학생은 거의 없고 다 취직공부만 한다고 말했다. 소설 당선자인 건국대 인문학부 여학생 역시 대답이 다르지 않았고, 많은 학생들이 이 견해에 동의하는 것 같았다.
문학이 독자들에게서 멀어지는 현실을 대학문단에서도 확인한 셈이다. 실용주의가 판을 치고, 사회적으로 자본이 전일적인 공세를 펴는 신자유주의 시대에 대학이 취직공장으로 전락했다는 진단이 많이 나오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실제로 취직이 중요하고, 이 세상을 살아가는 데 인간이 물적 토대를 확보하는 것만큼 중요한 일도 없다. 그렇지만 문학은 빵 못지않게 인생에 중요한 의미를 부여해 준다.
자본을 뛰어넘는 정신의 영역을 추구하는 게 문학이다. 물론 의도한다고 다 되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나는 계명문화상이 한국의 대학문단, 대학문화의 일각에서 제대로 대학문학을 활성화하기 위해 분투하는 것을 이번 토론회에서 목격했다. 박수를 보낸다. 참석한 많은 학생들이 전국 대학생들 사이에서 계명문화상의 권위에 동의한다는 것을 들었다.
대학 내에서 이런 작은 움직임들이 모여 수준 높은 대학문화를 만들어 나갈 것이다. 그리고 그 영향이 정신적으로 성숙한 대학생을 키우는 데 도움을 줄 것이라는 생각을 하면, 대학문학상의 중요성은 말 그대로 아무리 강조해도 넘치지 않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