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학생들은 1마일이 실제로 얼만큼인지는 모르지만 그런 문제가 시험에 나오면 맞출 수는 있을 겁니다. (…) 어떤 아이는 2차방정식을 풀 줄 알지만 옷에 단추를 달거나 달걀을 부칠 줄은 모릅니다. 사인펜으로 답안지의 동그라미를 칠할 줄은 알지만 담장을 쌓을 줄은 모릅니다” 이 말은 헬레나 노르베리-호지(Helena Norberg-Hodge)와 ‘에콜로지 및 문화를 위한 국제협회’(ISEC)가 공동으로 집필한 『허울뿐인 세계화』 (이민아 옮김, 도서출판 따님) 중에 나오는 말이다.
모든 길이 로마로 통한다고 하지만, 이미 오래 전부터, 어쩌면 자본주의가 경제 이데올로기로 전 세계에 확고부동한 위치를 차지한 이래로 모든 가치는 ‘오로지 돈’으로 통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오로지 돈이 인간의 삶을 결정할 뿐, 그 이외의 가치는 아무런 역할도 하지 못하고 있는게 우리의 비극적 현실이다. 자연은 이 가을에 그동안 간직하고 있던 내면의 색을 뿜어내며 인간을 유혹하지만, 사람들은 가을의 여유를 느끼려고 하지도 않는다. 아니, 소위 돈이 되지 않는 것이라면 그 어떤 것도 거부하는 상황이다.
나는 우리의 삶과 현실을 이렇게 만들어버린 원인이 가깝게는 맹목적인 ‘세계화’에 있다고 생각한다.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더욱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 위의 한 마디는 배우는 학생들을 균질화시키는 데 기여하는 교육방법과 내용을 비판하는 것이다.
‘먹을 게 없으면 살 수 없다’면서. ‘돈을 벌지 않으면 먹을거리를 사지 못한다’면서. 그러면서도 먹을거리가 어떻게 생산되는지를 가르치는 것은 오로지 교과서를 통해서일 뿐이다. 이러한 가르침의 방법은 물 바깥에서 수영 이론을 학생들에게 가르친 후에 ‘너는 이제 수영할 수 있다’며 물속에 밀어 넣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수영을 가르치려면 물속에서 이론과 실제를 함께 가르쳐야 하고 운전을 가르치려고 해도 배우는 사람을 운전석에 앉혀서 운전대를 잡게 하고 가르쳐야 한다. 그런데 문제는 가르치는 사람만이 아니라 배우려는 사람의 자세도 바뀌어야 한다는 데에 있다.
‘돈’이 모든 가치의 중심에 있다고 해도 돈이 의식주의 근원적인 생산토대는 아니다. 거대 기업들이 제아무리 많은 (불필요한) 상품을 생산하더라도 만족할 줄 모르는 소비문화가 없다면, 불필요한 낭비는 줄어들 것이며 궁극에 가서 환경위기도 개선될 것이다. 이러한 것은 빈곤을 증가시키고 사회를 불안정하게 만들며, 사회적 불평등을 심화시킬 수 밖에 없다. 우리 가운데에는 그에 대한 반사 이익을 누릴 자가 생기겠지만, 반대로 우리 각자가 그 피해를 입지 않는다는 보장이 어디에 있는가? 바로 이와 같은 이유 때문에 『허울뿐인 세계화』는 ‘지역 경제의 중요성’을 역설하고, ‘작은 것이 아름답다’(Small is Beautiful)는 사실을 잘 설명하고 있다. 한 마디로 말해서 『허울뿐인 세계화』는 우리로 하여금 맹목적 가치를 지양하고, 이론과 실천의 통일, 지와 행의 합일을 가치로 삼을 수 있도록 인도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러면 우리는 가을을 몸으로 느낄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