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바빌론에서는 “눈에는 눈 이에는 이”를 정의의 전형으로 하고 있었다. 당한만큼 보복하는 것이 정의였다. 그러나 현대사회는 이를 허용하지 않는다. 이처럼 정의의 관념은 시대에 따라 변한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정의는 사회적 개념으로써 공동체의 질서를 유지하는 것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선(善)은 존재하는 것만으로 가치를 가질 수 있으나, 실천적 의미를 수반하지 않는 정의는 공허한 것이 되어 버리는 이유이다.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이라는 공리주의는 지금까지 가장 고전적이고 일반적인 정의론이었다. 그러나 최대 행복을 위해서는 불가피하게 소수의 희생을 감수해야 하는 부분도 있기 때문에 비판을 받는다. 이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에서 존 롤스(John Rawls)는 『정의론』(1971년)에서 공정한 것이 정의(Justice as fairness)라는 주장을 해서 많은 공감을 얻었다.
사람들은 자기의 특성에 유리한 것을 주장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공정성 확보는 불가능하다. 롤스는 자기의 특성(지위, 능력, 성격 등)에 관한 정보가 완전히 차단된무지의 베일(vale of ignorance) 즉 원초적 상태(the original position)에서 다수의 사람이 고안한 룰(사회적 제도)이 가장 공정하고 이상적인 것이라는 가설을 성립시켰다. 이 원초적 상태에서 확립된 원리를 롤즈의 ‘정의의 두 원칙’이라 한다. 자유의 우선과 격차의 원리가 그것이다. 다른 재화를 더 많이 얻기 위해서도 자유는 제약될 수 없으며, 사회적 최하층의 이익이 되지 않으면 불공평(격차)은 허용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어떠한 발명이 최하층의 사람들에게도 이익을 제공할 때, 그 발명가는 특허료를 받아 부자가 되어도 좋다는 것이다. 이러한 롤스의 가설은 다양한 비판을 받고 그 자신도 일정 부분 비판을 수용했으나, 정의론에 관한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최근에 화제를 부르고 있는 마이클 샌델(Michael J. Sandel)의 『정의란 무엇인가(Justice: Whats the right thing to do)』(김영사)는 공동체주의(Communitarianism)의 입장에서 롤스를 비판한다. 이 책은 재미있는 사례를 들면서 아리스토텔레스, 로크, 칸트, 벤덤, 밀, 롤스와 같은 사상가들의 도덕원리와 정의론을 검증한다. 세금, 대리모, 동성결혼 등도 중요한 소재로 등장한다. 이러한 문제들에 대해 샌델은 독자(수강생)에게 끊임없이 질문을 한다. 이 과정을 통해 지금까지의 정의론을 비판적으로 극복하면서 그는 공동선(common good)에 입각한 공동체주의를 설파한다. 공동선을 통해 ‘좋은 삶’을 영위할 수 있는 공동체의 형성이 이 시대의 정의라는 것이다.
경쟁과 이기주의가 만연하고 자유가 위협을 받고 있는 지금 한국에서 롤스와 샌델의 정의론이 새삼 주목을 받고 있다. 인생에서 청춘은 사회적 이상을 추구하는 ‘정의’의 시기이다. 일독을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