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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마녀 사냥'

인터넷은 자신의 감정을 표출 시킬 좋은 매개체로 언제나 마녀사냥 유발 가능


며칠 전 계명대신문 기자로부터 “최근 방송에서 한 여성이 키 작은 남자를 비하하는 발언을 해서 인터넷이 시끄럽습니다. 누리꾼들이 이 여성에게 비난을 퍼붓고 여성의 과거를 낱낱이 들춰내 인신공격을 하고 사생활을 침해 하는 등 마녀사냥을 일삼고 있습니다. 인터넷이 발전함으로써 더욱 심해지는 마녀사냥에 일부 연예인들은 극단적인 결과에 달하기도 했습니다. 이에… 마녀사냥을 일삼는 누리꾼들의 심리적 원인은 무엇인지… 이러한 행동으로 인한 폐해 등은 무엇인지에 대해 알아보려고” 하는 특별기획을 시도하니 원고를 청탁한다는 부탁을 받았다. 심리학과 교수라 해서 인간의 심리현상을 전부 이해하는 것도 아니고, 특히 이러한 현상은 인터넷이란 새로운 매체에 의해서 발생하는, 우리사회에는 생소한 현상으로써 어떤 심리학자도 체계적인 설명을 제시하기는 어려운 문제이다. 따라서 다소 부담스러운 요청이었다. 하지만 이번 사건을 ‘마녀사냥’이라고 지칭하는 것이 벌써 부정적으로 평가하였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 사건은 좀 더 다른 각도에서도 고려해 볼 수도 있는 현상인 관계로 그러한 관점을 한번 부각시켜 보고자 원고청탁을 수락했다.

먼저 이 문제의 발단은 “키가 작은 남자는 루저(loser)”라는 발언으로 시작되었다. loser란 ‘실패한 사람’을 지칭하는 단어다. ‘실패’란 국어사전에 따르면 “일을 잘못하여 뜻한 대로 되지 아니하거나 그르침”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이러한 정의에 따르면, 키가 크고 작은 것이 우리의 의지로 결정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키는 유전적으로 결정되는 것이지, 본인의 노력과는 무관하다. 내가 아무리 노력하더라도 유전적으로 결정된 결과를 바꿀 수는 없는 것이다.

큰 키는 어느 사회를 막론하고 선호하는 특질이다. 반면 작은 키는 선호하지 않는다. 이러한 사실을 고려할 때, 선천적으로 결정되어 본인의 노력과는 무관한 한 개인의 특질을 노력 부족으로 비하할 경우, 어느 누구나 강한 부정적 정서반응을 일으키게 된다. 특히 사람은 동일한 강도의 정서자극이라도 긍정적인 정서보다 부정적인 정서에 보다 강력하게 반응한다. 예를 들면, 아름답게 장식된 초콜릿 케익에 한 마리의 바퀴벌레가 앉아 있을 때 그 케익에 손댈 사람은 없다. 그렇다고 해서 바퀴벌레가 득실대는 접시에 먹음직스러운 초콜릿 케익이 있다고 해서 그 케익이 더 먹음직스럽게 보이지는 않는다. 이렇게 우리는 조그마한 부정적인 자극에 조차 강하게 반응한다. 진화론적 관점에서 볼 때, 부정적인 자극은 일반적으로 위험을 예지한다. 따라서 그러한 자극에 대한 민감성은 생존에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다. 이러한 부정적인 자극에 대한 민감성을 부적 편향이라 한다.

평소 작은 키를 비관해 온 사람들에게 이 여학생의 발언은 강한 정서반응을 유발시키라는 것을 부적 편향의 관점에서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더 나아가 강렬한 정서반응은 행동을 유발한다. 이 때 인터넷은 그러한 행동을 표출할 수 있는 좋은 매개체가 되는 것이다.
20세기까지만 해도 우리 사회는 문맹, 즉 글을 읽지 못하는 것을 걱정하여 문맹퇴치 운동을 전개해 왔다. 아이러니하게도, 이제는 인터넷이 보급되어 글 읽기보다 글을 쓰지 못하는 것을 걱정하는 시대가 되었다. 어느 누구나 신문의 기사에 댓글을 단다거나 자신의 블로그에 개인의 의사를 피력할 수 있다.

최근 한 조사결과에 따르면 서기 1400년도에 저자(글 쓰는 사람)의 수는 전체 인구의 0.000001%밖에 되지 않았다. 그 후 저자의 수는 매 세기당 10배씩 증가하여 서기 2000년에 0.01%에 도달했다고 한다. 하지만 2009년 현재, 100명 이상이 읽은 문자 메시지를 작성한 사람들을 ‘저자’로 간주할 때, 저자의 수는 9년 만에 10배 증가하여 0.1%에 도달했다. 이 속도로 증가할 경우 2013년이면 모든 인류가 저자가 된다고 예측한다.

한때 글을 쓴다는 것이 소수의 전유물인 시대가 있었다. 하지만 인터넷은 그러한 시대를 종결시켰다. 이제 우리는 더 이상 남이 쓴 글을 읽기만 하는 글의 소비자가 아닌 직접 글을 창조해내는 생산자 시대로 급속도로 변화해가고 있다. 얼마 전까지도 문맹을 걱정하던 사회가 글 쓰는 능력을 걱정하는 사회로 완전히 탈바꿈하고 있는 것이다.

이제 인터넷은 어느 누구나 자신의 의견을 대중에게 피력하는 것을 가능하게 하는 매체가 되었다. 특히 강한 부정적 감정을 유발시키는 ‘루저’와 같은 발언은 인터넷을 통한 강력한 반향을 나을 것이란 것을 쉽게 예측할 수 있으며, 사실 그런 결과를 우리는 지금 목격하고 있는 것이다.
이번 사건은 분명히 특정 집단을 모욕하는 발언에서 시작되었다. 따라서 이러한 발언에 반응하는 누리꾼을 비난하기 전에 강한 반향을 유발시킬 수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한 방송제작진에 책임이 있다는 사실을 분명히 인식하여야 한다. 앞으로는 다양한 시청자로부터 부정적 감정을 유발시킬 수 있는 언행에 대해서 특히 대중매체는 보다 민감하게 대처하는 지혜를 보여야 하겠다. 사실 문제 방송의 제목 ‘미녀들의 수다’조차 특정 시청자들을 소외시킬 수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여야 한다. 즉 그 제목이 미녀가 아닌 사람들에게 자괴감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키와 마찬가지로 아름다움과 같은 외모는 유전적으로 결정되는 요인으로 본인의 의지와는 무관한 개인의 특질이기 때문이다.

사실 우리의 주위를 둘러보면 이렇게 외모와 같은 개인의 특질을 근거로 하여 사람들을 구분하는 표현들이 너무 많다. ‘꽃미남’ ‘꿀벅지’와 같은 표현을 들지 않더라도 특정성별, 인종, 나이, 심지어 신체장애자들을 비하하는 표현들을 의식하지 않고 사용하는 경향이 높다. 이러한 표현이 그러한 대상자들에게 모욕적으로 받아질 수 있다는 사실을 지금부터라도 심각하게 인식하여야 하겠다. 왜냐하면 이번 사건에서 보는 것과 같이 이러한 표현들은 또 다른 마녀사냥을 발생시킬 개연성을 항상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서구에서는 일찍부터(1980년대) 이러한 문제성을 인식하여 ‘정치적 정확성(political correctness, 이하 PC)’이라는 행동 강령을 채택해 왔다. 좋은 예로써 흑인을 지칭하는 black이란 표현은 미국에서 더 이상 사용하지 않는다. 그 대신 African-american이란 표현을 사용한다. 색깔로 사람을 구분하지 말자는 의도이다. 만약 PC를 어기는 언행을 한 사람은 그 사회에서 완전히 매장되었다. 지금은 그 강도가 많이 약화되었지만 미국사회는 PC로 인해 지대한 변화를 겪었다. 사실 미국사회에서 PC가 미친 영향은 현재 우리가 겪고 있는 마녀사냥 이상이었다 하여도 과장은 아니다. 우리 사회도 이러한 암묵적 행동 강령을 우리 사회 구성원들에게 주지시켜 항상 자신의 언행이 특정 집단을 소외시키지 않도록 노력하여야 하겠다.

정리하면, 외모를 비하하는 언행은 그 대상자들로 하여금 강한 정서반응을 유발시킨다. 이 때 인터넷은 자신의 감정을 표출시킬 수 있는 좋은 매개체가 된다. 따라서 언제나 이번 사건과 같이 마녀사냥을 유발시킬 수 있다. 이러한 반응은 소외받은 계층이 보일 수 있는 자연스러운 반응이다. 이러한 상황의 재발을 막는 방법은 특정 집단의 ‘기분을 상하게 하는’ 즉 사회를 분리시키는 언행을 삼가는 것밖에 없다. 이제 우리 모두 자신의 언행이 상대방에게 모욕적으로 느껴지지 않을지를 유념하는 자세를 갖도록 노력해야 하겠다. 무의식중에 한 말이 다른 사람의 기분을 상하게 할 수 있다. 이번 사건이 우리 사회를 보다 성숙한 사회로 나아가게 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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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칼럼] 가해자들의 도피처, ‘심신미약’ 요즘 하루가 멀다 하고 뉴스에선 잔인한 사건들이 보도된다. 서울 강서구 한 피시방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던 청년이 잔인하게 살해됐다는 보도, 오피스텔 관리사무소에서 경비원 2명을 잔혹하게 살해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20대 남성, 2011년 같은 회사에 다니던 여성의 몸속에 손을 넣어 숨지게 했지만 상해치사로 종결된 사건 등이 그러하다. 이 잔혹한 사건들의 처리과정에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바로 가해자가 ‘심신미약’을 주장했다는 것이다. 실제 경비원 2명을 살해한 20대 남성은 검찰이 사형을 구형했지만 심신미약 주장이 인정돼 일부 감형되었고, 같은 회사에 다니던 여성을 살해한 가해자는 피해자에 입힌 상해 정도가 심각하지만 술에 취해 심신미약이었다는 이유로 4년형을 받았다. 한 사람의 목숨을 앗아간 범죄임에도 불구하고 심신미약을 이유로 처벌은 가벼운 수준에 그쳤다. 잔혹한 살인을 했음에도 ‘심신미약’으로 감형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형법 제10조를 살펴보면 ‘심신장애로 인해 사물을 변별할 능력이 없거나 의사를 결정할 능력이 없는 자의 행위는 벌을 하지 않거나 형을 감경한다.’고 명시돼 있다. 여기서 심신장애란 인지·지능·언어·정서·행위 등의 심신기능 면에 장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