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금 세계의 곳곳은 빠르게 연결되어 돌아가고 있다. 공항은 연휴 때 마다 해외로 나가려는 여행객들로 북새통을 이루고, 멀리 떨어진 그리스의 재정위기로 국내 증시와 환율은 요동친다. 트위터나 페이스북 같은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는 전 세계의 어느 곳에서든 정보를 공유하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시대를 열어주었다. 하지만 단일민족의 배경 하에, 한국어로 이야기하며, 같은 역사를 공유하고 있는 우리 사회는, 아직도 다른 문화나 역사적 배경에 대하여 무지하거나, 혹은 편협한 시야를 가지고 있음을 느낀다.
물론 세상을 자신의 중심에서 보고 자민족 중심의 세계관을 갖게 되는 경향은, 생명체의 자기보존 본능에서 비롯된 자연의 법칙과도 같은 것일지 모른다. 자국 정부가 베트남에 1제곱미터에 하나 꼴로 융단폭격을 가하거나 말거나 전혀 동요하지 않던 부인들이 불쌍한 고래를 잡지 말라고 눈물로 호소하거나, 유출된 석유에 발이 빠져 허우적대는 물새를 동정하면서도 바그다드에 핀포인트 폭격을 하는 것에는 박수갈채를 보내는 경우도 있기 마련이다.
<마녀의 한 다스>의 저자인 ‘요네하나 마리’는 러시아어 동시통역가로 활발히 활동했던 일본 여성이다. 그녀는 서로 다른 문화가 충돌하고 교차하는 기이하고 재미있는 에피소드들을 통해, ‘다름’을 이단으로 낙인찍거나 배재하는 우리의 모습을 다시 생각해 보게 한다. 오히려 그 ‘다름’으로 인해 우리가 스스로를 자각하고 새로운 가치를 발견할 수 있으며, 그것이 우리를 얼마나 풍요롭게 해주는 가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나 자신을 풍요롭고 넓은 사람으로 확장시키기 위해서는 결국 세계와의 소통이 필요한데, 이는 자신의 생각과 다른 타인의 입장에서 그의 생각을 이해할 수 있어야 함을 의미한다.
“여러분들에게 한 다스는 몇 개입니까?” 일반 상식에서 한 다스는 12개다. 그러나 마녀의 세계에서는 13개가 한 다스라고 한다. 13은 기독교 문화권에서 불길하고 사악한 숫자로 여겨져 왔지만 가까운 일본이나 중국에서는 오히려 좋은 숫자로 여겨진다. 이처럼, 같은 숫자라도 각자의 상식과 배경에 따라 전혀 다른 것을 의미하게 된다. 다른 예로, 이라크에서는 초대받은 손님이 귀한 접시를 깨게 되면, 주인이 아닌 손님이 오히려 “괜찮아, 신경 쓰지 마.” 라고 말한다. 우리로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상황이지만, 여기에는 “소중한 접시를 당신이 직접 깼다면 당신은 무척 속상했을 것이다. 하지만 접시는 내가 깼고, 그래서 당신은 속상해하지 않아도 되니 나에게 고마워할 것이다. 하지만 고마워할 필요는 없다. 괜찮다.” 라는 의미가 담겨져 있다.
며칠 전 스티브 잡스의 사망소식을 들었다. 창조와 혁신의 대명사였던 그의 많은 어록 중 가슴에 남는 말이 있다. “창조성이란 단지 사물을 연결하는 것이다. 창조적인 사람들에게 어떻게 그런 일을 할 수 있었는지 묻는다면 그들은 약간의 죄책감을 느낄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진정 창조적인 일을 한 것이 아니라 단지 무엇인가를 봤을 뿐이기 때문이다.” (와이어드, 1996년 2월) 마음의 시야를 넓혀 열린 가슴으로 세상을 대할 때, 우리는 그동안 보지 못했던 정말 중요한 것을 보게 될 것이며, 이는 평소에 전혀 다른 것으로만 생각하고 있던 이질적인 요소들을 연결하는 창조적인 사고의 시작이 될 수 있다. 융합형 인재로의 첫걸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