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제 정말 가을이다. 교정을 걷고 있으면 바람 없는 순간에도 여름 내내 무성했던 잎들이 살포시 나선형의 곡선을 그리며 발밑에 떨어진다. 가을은 남자의 계절인가? 아니면 독서의 계절? 고독의 계절?
하지만 나에겐 가을은 재즈, 그중에서도 단연코 베이스의 계절이다. 여름엔 시원스런 빗줄기처럼 거칠 것 없는 관현악 합중주가 생각나고 겨울엔 맑고 투명하고 얼음처럼 시린 피아노의 높고 가느다란 선율이 마음속에 그려진다면, 가을은 역시 떨어진 낙엽만큼이나 쓸쓸하면서도 고독한 중저음을 내는 베이스가 제격이다.
클래식에서는 더블베이스(콘트라베이스)가 아르코(Arco)를 사용하여 일종의 배음을 내주는 역할만을 담당하면서 기교적인 면에서나 주도적인 면에서 결코 뛰어 넘을 수 없는 한계가 있지만, 재즈에서는 이미 그 한계를 넘어 심장박동과도 같은 무겁지만 아름다운 선율이 중심에 서기도 한다. 그 서막을 알리는 가장 무겁고 가장 아름다운 선율이 Ron Carter라고 이야기해도 좋을지..
대부분 사람은 재즈를 클래식만큼이나 어려워한다. 그러나 재즈의 태생에 조금만 관심을 기울이면, 재즈는 우리에게 좋은 친구가 될 준비가 되어 있다는 걸 알게 될 것이다.
재즈의 출발은 목화의 주생산지이자 최대의 흑인노예시장이 있었던 뉴올리언스이다. 아프리카의 광활한 대지에서 자연이 주는 리듬에 익숙한 흑인들이 혹독한 노예생활을 견디면서 자유를 갈망하며 선물한 음악이 바로 재즈이다. 그래서 재즈는 머리보다 가슴이, 가슴보다 몸이 먼저 알고 반응하는 음악이다. 그 때문인지 초기 재즈 연주가들 중엔 흑인이 대부분이었다. 그리고 그 다음 세대에서 베이스의 거장이라 불릴 만한 연주가가 있다면 레이 브라운과 론 카터가 아닌 듯싶다.
론 카터는 1937년 미시건주에서 태어났다. 10살 때부터 첼로를 시작하였지만, 그 당시에는 유색인종의 클래식 연주에 관한 보이지 않는 거부감이 있었다. 클래식 음악이 냉랭하게 외면하는 흑인이라는 이유 때문에 그는 재즈로 전향하였다. 유럽의 백인음악인 클래식은 흑인이라는 이유만으로 그를 버렸지만, 재즈는 그의 평생의 반려자가 된 것이다. Ron Carter의 초기활동은 Miles Davis를 떠나서는 상상할 수 없다. 특히 마이 퍼니 발렌타인(My Funny Valentine)에서 그는 강력한 비트로 베이시스트로서의 존재감을 충분히 드러냄과 동시에 존재감을 확인시켰다. 그리고 이제는 어느 앨범이든 베이스주자에 그의 이름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우리들을 가슴저리게 한다. Bass and I 나 Pastels, Stardust, Carnaval처럼 유명한 앨범도 그러려니와 개인적으로는 Orfeu 앨범이 가장 좋다. 흑인 오르페라는 영화가 생각나기도 한다(물론 그 영화의 음악감독은 너무나도 유명한 카를로스 조빔이었지만...). 가만히 OrfeuI의 앨범표지를 들여다보고 있으면, 론 카터와 더블베이스는 마치 서로 기대고 의지하는 친구처럼 보인다. 가을분위기를 편안히 느끼고 싶다면 론 카터의 연주를 들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가을... Ron Carter의 베이스 선율은 말없이 가을을 전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