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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45호 기자칼럼] 정의의 이름으로

충격의 연속이다. 부산 중학생 폭행사건과 잇따르는 비슷한 사건 만을 이야기 하는 게 아니다. 더 놀랍고, 무섭고, 충격적인 것은 이들 사건을 바라보는 대중들의 비이성적인 시선이다. 끔찍한 사건이 있은 뒤의 여론은 과도하게 부푼 모습이었다.

“나쁜 놈은 죽여야 할까?”라는 질문에서 출발하는 논의에 대중들은 거의 비슷한 반응을 보인다. “물론, 나쁜 놈은 죽여야지!” 그렇다면 “나쁜 놈은 ‘왜’ 죽여야 할까?”를 물었을 때 어떤 답변이 나올까. 나쁜 놈이니까? 나쁜 짓을 했으니까? 어쩌면 나쁜 놈을 죽여야 하는 이유는 ‘내가 분노했으니까’일 수도 있겠다.

각종 흉악범죄 가해자들을 옹호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분명 그들은 잔인무도한 짓을 저질렀고 피해자와 그 가족에게는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주었다. 법정에 선 그들은 모든 범행사실에 대해 시종일관 변명뿐이었고 반성의 기미 또한 보이지 않았다. 때로는 피해자를 비웃기도 했다. 흔히 말하는 ‘나쁜놈’이자 ‘죽일놈’이 분명했다.

하지만 단순히 이들이 ‘나쁜놈’이기 때문에 ‘극형’을 선고해야 한다는 주장은 지나치게 감정적이고 편협한 관점에서 바라본다고 밖에 생각할 수 없다. 가해자들의 폭행 이전에는 그들을 흉악한 범죄자로 만든 어떠한 원인이 있을 테다. 이를테면 소년범죄가 그렇다. 무엇이 그들의 비행을 부추겼는지 역학조사를 하든, 다시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 어떤 조치든 강구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여론은 그렇지가 않다.

끔찍한 사건이 벌어졌다 하면 너도 나도 솔로몬을 자처하며 나름대로의 판결을 내린다. 범죄가 있는 곳에 법은 없고 필요 이상의 비난과 인신공격이 가해진다. 가해자의 신상이 공개되는 것은 시간문제고, 가해자와 조금이라도 관련된 사람들은 도매금으로 묶여 비난의 화살을 맞는다. 그 과정에서 피해자의 사진도 함께 유포되면서 대중은 ‘2차 가해’를 저지르기도 한다. 이 모든 과정이 ‘정의’의 이름으로 너무나 손쉽게 자행된다. 만의 하나 잘못되는 일이 있어도 누구 하나 책임지지 않는다. “법이 제 할 일을 하지 않으니, 우리가 나선 것”이니 문제가 없다는 식이다. ‘제 할 일을 하지 않음’이라는 건 ‘통쾌한’ 처벌을 하지 않는다는 의미로 보인다. ‘여론재판’에서 보이는 공통적 특성이다.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간과하는 지점은, 법은 단순히 정의나 윤리의 실현을 위한 존재가 아니라는 점이다. 법은 법질서와 법익을 보호하기 위해 존재한다. 형벌이 지나치게 엄벌주의 내지는 응보형주의로 흐를 경우 우리는 ‘악(惡)’에 대한 보복적 반동과 쾌감만을 추구하게 된다.

악인(惡人)이든 성인(聖人)이든 똑같은 인권을 가진다. 둘의 인권에 우선순위를 두면 인권은 더 이상 보편권이 아닌 ‘특권’이 된다. 가해자에 대한 필요 이상의 비난과 조롱은, 결국 가해자의 인권을 피해자의 인권보다 뒤에 세우겠다는 선언이다. ‘정의’의 이름으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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