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후한 시대, 제4대 황제 이후 대부분의 황제들이 어린 나이에 즉위했다. 그로 인해 황태후와 그 적인 외척이 권력을 장악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자연스럽게 외척의 권력을 타도하려는 환관들이 등장했고, 외척과 환관이 번갈아 권력을 손에 넣으며 사리사욕을 채우는 부패한 정치가 이어졌다. 유학자로 이루어진 지식인당이 문제 해결을 위해 대항하기도 했으나, 그들마저 환관과 외척의 권력 다툼에 밀려버렸다. 정치가 두 집단의 욕심에 의해 휘둘린 후한 왕조는 결국 멸망의 길을 걷게 되었다.
이와 같은 대립은 현재 정부와 의료계 사이에서 벌어지고 있는 의료 갈등과 닮았다. 환관과 외척이 자신의 이익을 추구했던 것처럼, 현재 정부와 의료계도 각자의 목적을 위해 충돌하고 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피해를 보고 있는 것은 바로 국민들이다. 지식인층에 해당하는 시민들이 다양한 목소리를 내고 있지만, 여전히 갈등 속에서 충분히 반영되지 못하고 있다.
2024년 2월 6일, 윤석열 정부는 의대 정원을 3천58명에서 5천58명으로 대폭 확대하는 방침을 발표했다. 현재의 의대 정원을 유지할 경우, 2035년에는 의사 수급이 부족할 것이라는 한국개발연구원(KDI)과 보건사회연구원의 연구 결과가 그 근거다. 그러나 의료계는 이 갑작스러운 증원에 강하게 반대하며, 2월 19일부터 집단 휴학과 진료 거부를 시작했다. 정부와 의료계의 의견 충돌로 인해 의대생들과 시민들은 의료 시스템의 불안정으로 고통을 겪고 있다.
지금 정부와 의료계의 갈등은 마치 후한 말기의 정치 싸움처럼, 명확한 목적을 잃고 자신들의 이익을 우선하는 모습이다. 당시에 외척과 환관이 서로 권력을 쥐고 흔들었듯이, 현재 정부와 의료계도 ‘누가 더 옳은가’를 겨루고 있다. 그러나 이 싸움이 과연 누구에게 도움이 되는지를 되짚어 봐야 한다. 정작 시민들의 안전과 미래를 위한 해결책 모색은 뒷전이고 이익만을 고려하는 현 상황은 후한 말기의 혼란과 크게 다르지 않다.
2007년에 초고령사회로 진입한 일본도 의사 수 증원에 관한 문제를 겪었다. 현재 국민 1인당 배당된 의사 수는 한국과 비슷하지만, 의료 부족에 대한 의견은 훨씬 줄어든 상태다. 과연 일본은 어떻게 이 문제를 해결했을까? 우선 일본은 아주 점진적으로 의대 정원을 늘렸다. 2007년부터 2019년까지 총 1천7백95명의 의사를 증원하며 2019년에는 의사 수가 전체 9천4백20명으로 최정점을 찍었다. 또한, 의사수급분과위원회를 설치해 의사 수요와 공급을 투명하게 공개했으며 지역 의사에 대한 인센티브와 지역정원제를 도입하고 있다.
정부는 의사 수만 늘리면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 보고, 의료계는 정부의 증원에 대한 문제점을 나열하며 반발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싸움이 계속된다면, 후한 시대의 비극처럼 모든 피해는 결국 시민들에게 돌아갈 것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외척과 환관의 권력 다툼처럼 개인적 이익을 앞세우기보다는 의료 서비스 확대라는 공동의 목표를 위한 실질적인 대화를 시작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