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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칼럼] 지적 허영심으로 시작하는 힙한 독서 문화, ‘텍스트힙’

"책을 읽으려하는 허세도, 호기심과 관심으로 이어지는 출발점이 될 수도 있다.

최근 젊은 세대들의 독서 열기는 다소 독특하다.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한강 작가의 소설 ‘채식주의자’와 걸그룹 뉴진스의 뮤직비디오에 등장한 ‘순수의 시대’ 등 화제를 모은 책들을 따라 읽는 것이다. 젊은이들의 책 읽기 열풍은 개인의 독서 경험과 배경지식에 관계없이, 책 자체를 소비하거나 책 읽는 모습을 SNS 등에서 공유하는 ‘텍스트힙’ 문화로 자리 잡아 가고 있다.

 

디지털 매체와 대비되는 감성을 느끼며, 지적인 자신을 드러내고자 하는 독서 문화인 텍스트힙은 글자를 뜻하는 ‘텍스트’와 ‘멋있다’, ‘개성 있다’라는 뜻의 은어인 ‘힙하다’를 합친 말이다. 텍스트힙 문화는 책 읽기를 지적 활동보다는 자기 과시의 수단으로 삼기 때문에 이를 지적 허영심에서 비롯된 젊은 세대의 허세로 보는 시각도 있다. 하지만 과시와 지적 허영심에서 시작된 독서야말로 책과 가까워지기 좋은 명분이다.

 

 

책이 과시의 수단으로 사용된 역사는 오래되었다. 18세기 프랑스의 화가 모리스 켕탱 드 라 투르의 작품 ‘뉴턴을 생각하는 페랑 부인’은 이를 잘 보여준다. 이 그림은 교양을 과시하는 자세를 취한 페랑 부인과 그녀 뒤에 놓인 아이작 뉴턴의 큼지막한 책이 강조된 작품으로, 당대의 교양 과시 문화를 보여준다. 이외에도 칼 슈피츠버그의 ‘책벌레’나 프랑수아 부셰의 ‘마담 드 퐁파두르 초상’ 등 많은 초상화와 미술 작품에서 책과 책장, 독서는 인물의 교양 수준을 돋보이게 하는 과시적 교양주의의 도구로 쓰였다.

 

책의 형태가 권자본(두루마리)이었던 고대 로마에서도 마찬가지였는데, 당시 로마에서는 공화정 후기부터 제정 시대에 이르기까지 ‘애서가(Bibliophile)’ 문화가 유행했다. 명망 있는 집안이라면 상당한 양의 장서를 보유해야 했고, 육중하고 화려한 서가는 가문의 위신을 나타냈다.

 

이에 로마의 애서가들은 책의 내용을 즐기기보다는 정교한 장식으로 문고를 꾸미는 데 집중했다. 그래서 일부 수집가들은 책을 필사하는 노예들보다도 책의 내용에 무지했다고 한다. 하지만 허영과 교양의 상징으로 시작된 귀족들의 책 수집은 점차 지적 호기심과 학문적 관심으로 이어졌고, 이는 고대 공공도서관 건립과 서적 유통망 확산 등 독서 문화의 발전에 기여했다.

 

고대 로마의 애서가 유행이 독서 문화 발전에 영향을 미쳤듯, 오늘날의 텍스트힙 문화도 책 읽기 열풍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실제로 한강 작가의 책은 1백만 부 이상 팔렸으며, ‘순수의 시대’는 전보다 8배 증가한 판매량을 기록했다. 또한, 국내 각지의 도서관에서는 젊은 이용자층을 사로잡기 위한 다양한 행사를 기획하며 오랜만에 활기를 되찾았다.

 

책을 통해 지적 허영심을 드러내고자 하는 텍스트힙 문화는 과시적 교양주의의 현대적 모습이다. 비록 책을 손에 쥐고 놓지 않으려는 이유가 허세일지라도, 이는 점차 호기심과 관심으로 이어지는 출발점이 될 수도 있다. 그런 의미에서 지적 허영심과 교양 과시는 책과 가까워질 수 있는 하나의 이유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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