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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칼럼] 부끄럽지만 전해야 할 진심

친구의 권유에 우연히 영화 ‘애자’를 봤다. 스물아홉 ‘애자’는 세상에 무서울 것이 없는 여자이다. 고등학교 시절 ‘부산의 톨스토이’로 이름을 날리며 소설가의 꿈을 품고 서울고 상경했지만 바람둥이 남자친구, 산더미 같은 빚만 남은 스물아홉으로 매일을 보내고 있다. 답답한 상황에서도 어쩌면 막무가내로 보일정도로 당당한 ‘애자’가 무서워하는 한 가지는 엄마이다.

늘 오빠만 챙기는 엄마 대신 가족보다는 자기 자신에게만 관심을 쏟던 애자는 상상도 못했던 이별통보, 엄마의 죽음으로 ‘성숙한 어른’으로 성장한다.

영화 ‘애자’를 보며 마음이 아팠던 것은 힘들어도 막무가내로 무조건 당당했던 한 여자가 결국엔 엄마의 사랑을 원하는 평범한 여자였던 것이 밝혀져서도, 누구나 눈물을 흘릴만한 ‘엄마의 죽음’이라는 소재 때문도 아니었다.

바람둥이 남자친구 앞에서도 당당한 애자가 엄마 앞에서는 늘 진심을 삼키는 모습에서 ‘나’를 봤기 때문이다. 무뚝뚝한 딸인 애자는 엄마의 암 재발 앞에서도 괜찮으시냐는 말 한마디가 쑥스러워서 늘 뒤에서만 걱정하고 안도한다. 눈앞에서 점점 죽어가는 엄마를 보면서도 애자는 따뜻한 말 한 마디 못하고 엄마의 죽음을 두려워하고 부정하기만 한다. 그리고 마침내 찾아온 엄마의 죽음에서 애자는 꿈속에서 엄마를 만나서 비로소 솔직한 자식이 되어 안가면 안 되냐고, 사랑한다고 말한다. 그런 애자에게 엄마는 따뜻한 포옹으로 말을 대신한다.

우리는 타인보다 가족에게 더 불친절할 때가 많다. 친구의 상처는 격려하고 안아주고 보듬어주려고 노력하지만 가족은 말하지 않아도 내 마음의 진실을 알아 줄 것이라고 생각하며 쉽게 상처주고 짜증내며 가시 돋친 말을 내뱉는다. 하지만 말하지 않아도 알 것이라는 생각은 나 혼자 편하겠다는 편리한 이기주의였을지 모른다.

올해 5월, 친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 20년 동안 사랑하고 또 미워한 할아버지의 죽음이 남긴 것은 결국 아쉬움과 안타까움, 미안함이었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기 1주일 전 마지막으로 할아버지의 손을 잡아드렸다.

그때 전해야 했던 ‘사랑해요, 미안해요’라는 말은 왠지 낯간지럽고 부끄럽다는 이유로 미뤄졌고 다음 기회는 없었다. 조용한 진심은 소중하다. 다음번을 기약하며 전하지 못한 진심들은 결국 후회로 쌓여 우리를 덮칠 것이다. 부끄러움을 무릅쓴 진심이 담긴 말 한마디는 언젠가 우리가 맞이해야 할 후회와 아픔을 덜어줄 마지막 위로가 될 것이다. 오늘은 부모님께 전화를 걸어 말해야겠다. ‘사랑해요’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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