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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0회 전국육사백일장’ 대상, 전경미 씨

“시인으로서의 삶과 엄마로서의 삶 모두 잘 해내고 싶어요”

 

우리학교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하고 현재 대학원에 재학 중인 전경미(문예창작학·석사과정) 씨가 안동에서 개최된 ‘제40회 전국육사백일장’에서 대상을 수상했다. 두 아이의 엄마인 동시에 시인의 꿈을 향해 달려 나가고 있는 전경미 씨의 삶과 꿈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자.

 

Q. 대상 수상을 축하드립니다. 소감 한 말씀 부탁드려요.

제가 이번 백일장에 아이들과 함께 가서, 시를 짓는 데에 온전히 집중할 수 없었어요. 시간 내에 절반 정도만 쓰고 나머지 절반은 제출하는 곳 앞에서 채운 터라 큰 상은 바라지도 않고 작은 상 하나만 받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죠. 이번 백일장은 대회 당일 오후 4시에 수상자 발표를 한다길래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식사를 하러 가버렸어요. 스스로에게 화가 난 상태였는데 그때 마침 대상 소식을 알리는 전화가 왔어요. 처음 수상 발표 전화가 왔을 때는 믿기지 않아서 제가 썼던 시를 다시 읽어보기도 했어요. 대상을 수상할 정도의 시는 아니라고 생각했거든요.(웃음)

 

Q. 어떤 작품으로 수상하셨나요?

운문 부문에서 ‘안개’라는 작품으로 수상했어요. 백일장에서 주어진 여러 제목들 가운데 ‘안개’를 선택하여, 안개를 꿈이다 생각하고 시를 썼어요. 제가 예전에 교통사고를 목격한 적이 있는데, 그때 사고로 인해 생긴 선명한 연기가 마치 안개 같다는 생각을 했던 게 백일장에서 떠올랐어요. 연기가 뿌옇게 흩어지지 않고 선명하게 보일 때가 마치 꿈과 같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시 2연에 ‘안개를 묻고 돌아오던 날, 내 발걸음은 뿌옇게 흐려지고 있었다.’라는 대목은 꿈을 포기하고 결혼을 선택했을 때의 제 모습을 나타낸 것입니다. 물론 지금은 다시 꿈을 찾게 되었지만요.

 

Q. 지난 ‘제14회 이상화백일장’에서도 대상을 수상하셨는데, 연이은 대상 수상의 비결은 무엇인가요?

저는 제 삶과 생활을 시 속에 솔직하게 담는 편이에요. 이상화백일장에서는 ‘바람’을 주제로 시를 지었는데, 저는 바람을 ‘빨래거리’라 생각했어요. 아이들과 남편이 벗어놓은 바람이 묻은 빨래거리 즉, 바람을 안고 세탁실에 가서 그 바람을 세탁한다는 이야기에요.

또한 본인의 글 솜씨도 물론 중요하지만 운이 따라줘야 한다고 생각해요. 심사위원들마다 각자의 관점이 다르기 때문에 본인의 스타일이 심사위원과 맞아야 하는 것 같아요. 무엇보다 백일장에서는 짧은 시간 내에 글을 써야 하기 때문에 모호한 글보다는 한눈에 그 의미가 보이는 글을 쓰는 것이 수상에 한층 더 가까워지는 방법인 듯해요.

 

Q. 본인이 지은 ‘시’ 중에서 가장 애착이 가는 시는 무엇인가요?

결혼과 육아로 수년 간 학업을 중단했다가 지난 학기에 대학원에 다시 돌아왔는데, 오랜만에 시를 쓰다 보니 잘 안 써지더라고요. 그러던 중 교수님께 처음으로 칭찬받았던 작품이 ‘집’에 관한 시였어요. 시를 보면 ‘긴 여행 끝에도 돌아갈 집이 없었다. 돌아가기보다는 누군가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내가 바로 집이 되고 있었다. 꿈에서 내가 살던 집에 들어가서 엄마 하고 불렀다. 꿈에서 깨보니 내가 엄마였다.’라는 내용이 있어요. 이 시는 제가 그 자리에서 지어서 쓴 것이 아니고 결혼한 후 아이들을 키우면서 써두었던 일기를 보고 쓴 것이에요. 그래서 저는 이제까지 제 마음을 제일 솔직하게 표현한 이 시를 가장 애정이 가는 시로 꼽고 싶어요.

 

Q. 본인에게 시란 무엇인지 말씀해주세요.

저는 시를 ‘집’이라고 표현하고 싶어요. 시라는 것은 쓰고자 하는 마음이 절실한데도 잘 안 써질 때가 있는 반면, 시에 대한 고뇌가 없을 때 오히려 술술 써질 때가 있거든요. 집도 마찬가지로 너무 가고 싶은데 못갈 수도 있고, 뛰쳐나가고 싶지만 다시 돌아가야 하는 곳이잖아요. 학창시절에 학교에 늦게까지 남아 집에 가고 싶어도 마음대로 갈 수 없었던 것처럼 시 또한 쓰고 싶다고 해서 금방 써 내려가기 힘들다는 점에서 시를 집이라고 말하고 싶어요. 

 

Q. 앞으로 시인으로서 어떤 삶을 살고 싶으신가요? 

정식으로 등단해서 시인으로서의 삶과 엄마로서의 삶을 병행하며 살고 싶어요. 아이들을 유치원에 보내놓고 학교에 오면 다시 학생이 된 기분이 들어 정말 기뻐요. 하지만 때로는 ‘엄마가 되기 전의 나’와 ‘엄마가 된 후의 나’가 분리되는 것 같아서 힘들 때가 있어요. 전에 도서관에서 책을 읽고 글을 쓰다가 아이들을 데리러 가야 할 시간이 되어 도서관을 나서는 길에 저도 모르게 눈물이 나왔던 적도 있어요. 아이에 대한 시를 많이 지어보기도 하며 분리된 삶이 아닌 시인이자 엄마로서 동시에 받아들여진 삶을 살고자 노력하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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