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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와 청년, 공정을 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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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공정성의 시대에 살고 있다. 정의와 평등에 대한 논의마저 ‘공정’을 넘어서지 않고는 한 발짝도 나아갈 수 없다. ‘기회의 평등, 과정의 공정, 결과의 정의’를 내세운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로 공정성을 둘러싼 갈등은 갈수록 격화되는 모양새다. 2017년 평창올림픽 남북단일팀 논란, 2018년 조국 사태에 이어 올해 들어서는 인천공항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인국공 사태), 공공의대 신설 논란에 이르기까지 이들 사건에는 줄곧 ‘불공정’이라는 꼬리표가 따라붙었다. 

 

20대 청년들은 특히나 공정성 문제에 민감하다. 공정성은 대통령의 지지율마저 흔들었다. 당초 문재인 정부의 핵심 지지층이었던 20대는 조국사태와 인국공 사태를 거치며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지지를 철회하고 있다.또 지난 6월 29일 리얼미터가 진행한 ‘공공기관 정규직 전환에 대한 공감도 조사’에 따르면 ‘정규직 전환을 보류해야 한다’는 의견이 55.9%로 조사돼 전 세대를 통틀어 가장 높은 수치를 보이기도 했다. 이런 현상을 어떻게 진단해야 할까.

 

<계명대신문>은 이른바 ‘공정담론’으로 일컬어지는 현상에 대해 최종렬(사회학) 교수와 대구청년유니온 조영태 정책위원장과 인터뷰를 진행했다. 이들은 무한경쟁을 부추기는 사회가 청년들이 공정성에 매달리도록 만들었다고 입을 모아 말했다.

- 엮은이 말

 

 

 ● 최종렬(사회학) 교수

“왜곡된 성과주의에 기대선 안 돼”  

 

합의할 수 있는 공정이 ‘절차적 

공정’ 뿐이었던 한국사회

 

‘시험을 통한 줄세우기’가 

가장 공정하다는 신념을 주입

 

절차가 공정하더라도 부당한

결과가 나올 수 있음을 알아야

 

 

Q. 공정성을 둘러싼 문제가 뜨겁다.

우리가 서로 합의할 수 있는 공정은 ‘절차적 공정’ 밖에 없다. 어떤 것이 바람직한 사회인가에 대한 합의를 그동안 이뤄내지 못했기 때문에, 자연히 절차적 공정이 곧 모든 공정성을 대표하게 됐다. 때문에 청년들이 절차적 공정성을 중시하게 되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청년들은 이 사회가 좋은 사회인지 아니면 나쁜 사회인지를 문제 삼을 필요가 있다. 그런데 일생의 대부분을 경쟁에 치이며 살다 보니 오직 경쟁에서 이기는 것만이 최고의 가치가 됐다. 하지만 경쟁에 뛰어드는 청년은 소수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공정성 논의를 주창하는 청년들을 관찰해보면 경쟁에 뛰어들었음에도 성공하지 못한 청년들이 대부분이다. 이들은 자신이 열심히 노력했음에도 성공하지 못한 이유를 불공정에서 찾는다. 절차가 공정하지 않게 운영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들은 나아가 특히 절차적 공정 이외에 한국사회에 통용되는 관행이 ‘공정성’이라고 불리는 공적 영역을 침해한다고 생각한다. 다만 불공정 문제에 민감한 청년들은 앞서 말했다시피 경쟁에 뛰어든 청년에게만 해당한다. 경쟁에 뛰어들지 않는 청년들, 특히나 지방 청년들은 이런 공정담론에 상대적으로 무관심하다고 볼 수 있다.

 

Q. 시험점수에 따른 차별적 대우가 정당하다고 생각하는 청년들이 많은 것 같다.

어느 사회나 사회적으로 귀중한 자원은 희소하다. 정치적 권력, 경제적 부, 사회적 지위가 모두 그러하다. 이것이 넘쳐나는 사회는 없기 때문에 희소한 자원을 어떻게 효율적으로 분배할 것인가 하는 문제는 어느 사회에서나 논란거리다. 그런데 사회는 희소 자원을 효율적으로 분배하는 논리만으로 유지되지 않는다. 그렇게 되면 모든 사회가 경쟁의 논리로만 움직이게 된다. 경쟁의 논리가 사회 전체의 논리로 될 수 없는 이유, 또 그래서는 안 되는 이유는 인간은 결국 더불어 살아가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한국사회에서 말하는 효율성만 보더라도 5지선다형 시험을 봐서 이미 다 정해진 답을 정해진 시간 내에 빠르게 풀어내는 인지 능력 테스트가 전부다. 시험 결과에 따라 줄을 세워 사회적으로 희소한 자원을 분배하고 이것이 곧 평생을 좌우한다. 그간 우리 사회는 이런 시험을 통한 줄세우기가 가장 공정한 분배 방식이라고 보아왔다. 한 번의 시험으로 차별적 대우를 하는 것이 과연 공정한가, 우리는 질문해야 한다. 그러나 현재 청년들은 이러한 줄세우기가 차라리 공정하다고 느끼는 경향이 있다. 시험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는 것이야말로 개인이 절대적으로 시간을 투여하면 얻어낼 수 있는 성과라고 믿는 것이다. 부모가 가진 경제적·사회적 자본, 즉 개인의 노력을 떠나서 작동하는 힘들이 시험에서는 그나마 영향력이 덜하다는 생각이다. 그러니 “시험을 통한 줄세우기가 오히려 가장 공정하다”고 청년들이 주장하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인지 능력 테스트는 실상 성실성 테스트다. 세상은 복잡하게 분화되어 있는 탓에 성실성만으로 모든 것을 판단할 수는 없다. 따라서 청년들은 공정성을 문제 삼을 것이 아니라, 왜곡된 사회구조에 집중하고 서울중심주의에 따라 지방을 사실상 식민지로 전락시킨 이 사회에 문제를 제기해야 한다. 청년들이 이런 논의는 제쳐두고 공정성 문제에만 몰두하니 안타깝다.

 

Q. 과거에 비해 현재의 청년들이 보수화되었다고 보는지.

어느 사회를 가든 어린 아이들이 가장 보수적이다. 배운 것이 한정적이기 때문에 오히려 도덕적으로 유연하지 않고 경직돼있다. 그러다 사춘기를 벗어나 청년기에 접어들면 그동안 보지 못했던 새로운 세계를 접하고 진보적인 성향을 띠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청년들이 특별히 보수화되었다고 할 것은 아니다. 다만 기성세대의 관습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다 보면 기존의 것을 긍정하고 의심없이 살아가게 된다. 현상에 의문을 가지고 질문을 하는 존재가 청년이라는 관점에서 본다면, 질문하지 않는 청년들은 보수적이라고 볼 수도 있을 것 같다.

 

반면 80년대에 대학을 다닌 청년들의 앞에는 누가 보더라도 너무나 뚜렷한 사회적 악이 있었다. 그런 사회에서는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현재의 청년들은 지금의 세상이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성공한 사람이 부러울 뿐이다. 이 사회가 무언가 잘못되었고, 변화가 필요하다고 느껴야 질문을 던질 텐데, 그런 질문을 던지지 않는다는 점에 한정해서 본다면 보수적이라고 볼 수도 있겠다.

 

Q. 청년들은 이미 능력주의적 태도를 체화한 것 같다.

현상이 굉장히 복잡하고 미묘해서 해석하기 어려울 때는 ‘자로 재라’ 식으로 단순한 잣대를 들이대려고 한다. 포괄적인 가치의 차원에서 논의하기는 복잡하니까 절차적 공정만 따지자고 해왔던 것이 한국사회의 모습이었다. 그러나 절차적 공정만으로는 얼마든지 악한 결과가 나올 수 있다. 절차가 옳다고 해서 언제나 좋은 결과가 나오는 것은 아니다. 히틀러도 공정한 선거를 통해 정당하게 선출됐다. 때문에 단순히 공정한 절차만으로는 부족하고, 어떤 게 좋은 사회이고 살아갈 만한 삶인지 질문을 던져야 한다. 그런데 청년들은 질문하는 방법을 배우지 못했고, 사회가 그들에게 오로지 ‘경쟁에서 이겨야 한다’는 신념만을 주입해왔다. 이런 경쟁은 시효가 지났다.  공정성 자체를 인지능력 테스트에 국한해서 판단하는 왜곡된 성과주의에 기대서는 안 될 것이다.

 

Q. 공정을 뛰어넘는 가치를 어떻게 찾을 수 있는지.

질문하는 능력을 키워야 한다. 그러나 당장은 쉽지 않을 것 같다. 청년들은 지금껏 질문이 아닌 ‘답’을 하는 방법만을 배워왔다. 그리고 이 답이라고 하는 것도 답이 있는 질문을 암기하는 데 그친다. 물론 중고등학교 시기엔 답이 정해진 질문을 교육받을 필요가 있긴 하다. 하지만 대학에 오면 정해진 답을 찾을 게 아니라 무엇이 문제인지를 포착하고 질문을 던지는 능력을 키워야 한다. 그런데 지금은 신자유주의적 질서가 사회 전반을 휩쓸다 보니 당장에 답을 내놓으라는 강요만이 남았다. 고개를 들어 먼 곳을 쳐다볼 수 없는 것이다. 땅바닥만 보고 간다. 그래서 질문을 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다. 질문을 하고, 도전하고, 의문을 던져야 하는데 이 세계를 수동적으로 받아들이고 만다. 청년들은 의구심을 갖는 일보다 “주식 투자로 성공한 사람이 부럽다” 혹은 “건물주가 부럽다”처럼 어떤 대상을 선망하는 일에 더욱 익숙해졌다. ‘어떤 것이 좋은 사회인가’를 질문할 수 없기 때문에 악한 사회에 적응해버린 것이다.

 

그래서 나는 청년들에게 질문을 할 수 있는 역량을 키워주는 교육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마지막 희망은 교육뿐이다. 질문하는 능력을 대학에서 키워줘야 한다. 우리가 기업이나 시장에서 그러한 교육을 받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지 않겠나. 그런데 대학이라는 것도 마치 직업훈련소처럼 성과에만 매달리는 현상에 빠져있다. 교육의 중요성을 다시 깨닫고 청년들이 질문할 수 있는 문화적 역량을 키워주는 교육이 절실하다.

 

 

● 대구청년유니온 조영태 정책위원장

“공정성에 대한 합의점 찾아야”

 

공정성에 대한 기성세대-청년세대 간

시각차 존재…불공정 논란 뒤따라

 

시험 성적과 스펙쌓기에 몰두하는 것은

미래가 불안정한 탓

 

경쟁에서 뒤처진 이들을 살피지 못하는 

능력주의는 공정하지 않아

 

 

Q. 최근의 공정성 논란을 어떻게 보는지.

공정성에 대한 기성세대와 청년 사이의 시각차가 있는 것 같다. 청년층은 학창시절부터 열심히 공부하고, 잠 좀 덜자고, 지금 내 시간을 투자해서 스펙을 쌓으면 좋은 직장을 얻는 등 정당한 보상을 받을 수 있다고, 기성세대가 알려준대로 사회가 보여주는 모습대로 커왔다.

 

평창올림픽 이야기를 하자면, 청년들의 입장에서는 선수들이 올림픽 본선에 진출하기 위해 각고의 노력과 경쟁을 거쳤으리라고 생각할 텐데 갑자기 정부에서 남북단일팀을 만든다고 하니 황당했을 것이다. 기성세대나 정치권의 입장에서 올림픽은 통일이나 남북관계 개선을 위한 수단이었을 것이지만, 청년들은 그러한 구도가 공정하지 않다고 느낀다. 구조 안에서 경쟁을 치러 왔는데 갑자기 판을 바꾼다면 그간의 노력이 물거품이 되고 또 불공정한 일이 되는 것이다.

 

Q. 20대가 유독 공정에 민감한 까닭은.

20대 안에도 다양한 계층이 있겠지만, 대부분은 무한경쟁 사회 속에서 시험 성적을 올리거나 스펙을 쌓는 등 생존을 위한 경쟁에 몰두했을 것이다. 이런 경쟁 구도 안에서 청년들의 미래는 굉장히 불안하다. 그래서 더욱 시험 성적과 스펙 쌓기에 연연할 수밖에 없고, 또 한편으로는 지금의 노력을 통해 언젠가 정당한 보상을 받을 것이라는 희망을 품게 되니 공정성 문제에 민감해질 수밖에 없는 것 같다.

 

Q. 얼마 전 <시사인>에서 진행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청년층 내부에서 ‘개인의 삶은 개인 책임’이라는 의견이 지난 수년간 꾸준히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각자도생을 긍정하는 청년이 늘어났다는 신호로 보여진다.

   모든 문제가 환경 탓이라 말하기도 어렵고 또 개인 탓이라 말하기도 어렵다. 이 환경을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대단히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자해야 한다. 자연히 많은 문제를 건드려야 하고 갈등이 생긴다. 몹시 복잡한 과정이다. 그런데 무한경쟁사회에서는 생존을 위해 투쟁하는 과정이 치열하다 보니 구조적 문제를 건드릴 여유가 없다. 이런 현실이 구조적 문제를 개인의 책임으로 해석하는 것 같다. 

 

한편 이러한 과잉경쟁구도 안에서는 내가 잘한만큼은 보상을 받고 반대로 못한만큼은 빼앗기기 때문에, 구조적 문제를 지적하거나 환경을 탓하면 이는 곧 패배자의 논리가 된다. 삶이 각박하니 서로에게 관용을 베풀 여유는 사라지고 점차 개인 탓으로 몰아가는 분위기가 확대되는 것이다. 그만큼 과거보다 경쟁이 더욱 심각해진 게 아닌가 생각한다.

 

Q. 공정성 문제는 소수자 혐오로도 이어지는 것 같다.

언론이나 미디어에서 조선족, 중국인 등 외국인을 묘사하는 모습은 썩 긍정적이지 않다. 사회가 점차 각박해지다 보니 외부자를 멸시하는 시선이 늘어나고 있다. 코로나19 사태만 해도 그렇다. 외국인들에게 치료비를 지원해준다고 하니 “왜 우리가 일해서 납부한 세금을 돈 한 푼 내지 않은 외국인들에게 쓰냐”고 반발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우리가 정부로부터 받는 서비스는 전부 국민들이 납부한 세금을 바탕으로 이뤄지는 것이니 세금을 내지 않는 사람들에겐 치료비를 지원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고, 이것이 공정하다는 거다. 요컨대 국민이 소비자인 것인데, 이건 시장 논리다.

 

중요한 것은 세상은 시장 논리로만 돌아가는 게 아니라는 점이다. 가령 감염병이라는 건 부자와 빈자를 가리지 않고, 세금을 내는 사람과 내지 않는 사람을 가리는 게 아니지 않나. 또 인종이나 국적을 가리지도 않는다. 오히려 납세 여부를 가지고 차별하다 보면 감염이 더욱 확산될 수도 있다. 이렇듯 공정성 문제는 상황을 좀 더 넓게 보고 접근해야 한다.

 

Q. 능력주의에 대한 생각은.

능력주의가 타당성을 가지려면 개인의 능력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는 환경이 갖춰져야 한다. 그런데 지금의 능력주의는 과연 그런 모습인가 의문이 든다.

 

수능만 해도 그렇다. 수능을 잘 봐야만 좋은 대학에 갈 수 있고, 좋은 대학에서도 좋은 스펙을 쌓아야만 성공할 수 있는 구조다. 그런 구조 안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정정당당하게 경쟁할 수 있을까 싶다. 결국엔 이런 구조 안에서는 특정한 조건을 갖춘 사람들, 사회가 요구하는 것에 적응할 수 있는 사람들만 생존할 수 있다. 때문에 태생적인 조건으로 인해서 경쟁에서 뒤처지는 사람들은 발붙일 자리가 없게 된다. 소외된 이들을 위해 균형을 맞추는 조치가 선행되지 않는 한 능력주의는 공정할 수 없다.

 

Q. 공정담론은 지방 청년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 것 같은지.

불리하게 작용할 수밖에 없다. 제 학창시절 기억을 되짚어보면, ‘성적이 안좋으면 치킨 배달부를 한다’, ‘더운 날 더운 곳에서 일하고 추운 날 추운 곳에서 일한다’부터 시작해서 ‘공부를 잘해야 잘생기고 예쁜 사람이랑 결혼할 수 있다’는 이야기도 많이 나왔다. 수능이 미래의 모든 것을 결정하는 요인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이런 세상에서 생존하려면 결국 내 옆에 있는 누군가를 밟고 올라가야 한다. 절대적으로 패자가 발생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수도권 대학과 지방 대학의 격차가 차별로 이어진다면 지방에 거주하는 청년들은 모든 불합리한 조건을 그저 받아들이고 살아야 한다. 누군가는 지방에서 살 수밖에 없는데, 과연 이런 현상이 올바른가 하는 질문을 던져볼 수 있을 것 같다.

 

Q. 공정담론을 어떻게 극복해야 한다고 보는지.

과잉경쟁구도가 완화되어야 한다. 환경이냐 개인의 문제냐를 짚고 넘어가기 위해서는 우선 개인에게 여유가 있어야 한다. 생존이라는 절박한 환경에 놓여 있지만 않다면 어렵더라도 구조적 문제를 함께 고쳐나갈 수가 있는데, 여유가 없는 사회이다 보니 점점 차별을 정당화하는 논리로 나아가는 것 같다.

 

한편 최근에 벌어지는 갈등들은 결국 공정의 범위가 합의되지 않은 탓이 크다. 청년층은 이미 ‘공정’을 기반으로 살아왔다. 인천국제공항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려고 하니 당시 청년층들이 느낀 주된 감정은 ‘그렇다면 우리가 해 온 노력은 무엇이 되느냐’는 허탈감이었다. 잘못된 구조는 물론 고쳐야 하지만, 그 과정에서 일부 청년들이 느낄 허탈함을 어떻게 해소하면 좋을지 고민해야 한다. 또 지금의 사회구조에서 소외된 사람들과 어떻게 더불어 살아갈 것인가도 고민해야 하겠다. 쉽지는 않을 것 같다. 그러나 시간이 걸리더라도 합의점을 찾아가는 과정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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