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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회 교양도서 독후감 경시대회’ 최우수작 - 이슬기(피아노·1) 씨

『역대명화기』를 읽고

나는 음악을 전공하는 학생이다. 대부분의 음악하는 사람들처럼, 나 또한 예술을 한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좀 더 아름다운 한 음을 얻기 위해 고된 연습을 견뎌내며 살아가는 사람이다. 그런 자부심 속에 나를 가두며 클래식이 아닌 음악들은 듣지 않았고, 클래식이 최고라고 믿었다.

이때까지 살아오면서 내가 걸어가는 길 외의 다른 곳에는 눈도 두지 않았던 탓일까? 어쩌면 ‘오만과 편견’이라고 할 수 있는 그런 자부심에 취해 있었던 나에게 다른 분야의 예술들은 내 관심 밖의 것들이었고 지금까지 나는 그것들의 가치를 외면하고 있었다.

평소에는 그림에 대해서 관심이 없었기 때문에 그림에 대해서도, 그림을 감상하는데 있어서도 무지했다. 그래서 그림의 가치를 제대로 보지 못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카메라가 있는데 극사실주의가 왜 등장한 것일까?

왜 도대체 의미를 이해하기 힘든 추상적인 그림에다 그 그림과 어울리지도 않는 제목을 걸고 전시회를 여는 것일까? 그런 것들에 대해 나는 허영과 허세 때문이라는 편견을 가지고 성급하게 결론을 내려 버렸다. 그랬기 때문에, 솔직히 내가 「역대명화기」를 읽게 된 것은 나의 의지에 의한 것이 아니었다.

칙칙하게 갈변한 옛 그림들의 사진이 흑백으로 수록된 그 책을 마지못해 집어 들면서 나는 속으로 비웃었고 심지어 콧방귀까지 뀌었다. 하지만 그림 그리는 사람을 환쟁이라 부르고 제대로 대우해주지 않았던 그 먼 옛날에, 그림을 너무나 사랑해서 평생의 업으로 삼아 살아갔던 사람들의 이야기들을 그려낸 「역대명화기」를 읽으면서 나는 그 담담하게 써내려간 문체에 담긴 어떠한 쓸쓸함을 차마 외면할 수가 없었다.

「역대명화기」는 당나라 후기의 미술사가 장언원이 기록한 화술서이자 화사서이다. 화법 연구서이며 동시에 중국 회화의 장대한 서사시라 할 수 있다. 이 책에는 수많은 화가들의 작품과 그 시대적 배경, 화가들의 열전이 수록되어 있다. 또한 그림의 수준을 판단하기 위한 글쓴이 자신의 판단기준 다섯 가지와 그림의 여섯 가지 법칙인 사혁의 화육법에 대해서도 자세히 서술되어 있다.

이번에 내가 읽은 「역대명화기」는 본래 10권이나 되는 장대한 분량의 원본을 중요한 부분만 모으고 요약하여 편찬한 책이었기 때문에, 그림 자체의 역사나 의미보다는 화가들의 이야기와 생각들을 듣고 싶었던 나에게 여러모로 유익했다.

「역대명화기」를 읽으면서 가장 놀라웠던 점은 화가들이 그림에 부여하는 의미가 음악가의 삶에서 음악이 차지하는, 음악에 부여하는 의미와 너무나도 유사하다는 것이었다. 내게 음악이 그러하듯이, 그림은 그들에게 삶이었으며, 살아가는 이유였고 그들의 영혼이었다. 화가들은 그림을 그림으로써 학문과 도를 닦아 신선에 이르는 것과 같은 높은 정신적 경지에 다다랐다.

선 하나조차도 쉽게 그리지 않으며 실수로 튄 먹물 한 방울 조차도 세밀한 파리의 모습으로 승화해내는 그러한 화가들의 진지함이 결국 내 마음을 움직였다. 좁은 틀에 갇혀 있었던 내게 그림이 가져다주는 ‘거대한 무엇인가’가 희미하지만 분명히 보였던 것이다. 마음이 열리자 갑자기 「역대명화기」 속 많은 것들이 나에게 친숙하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위진남북조 시기 이후 지금에 이르기까지 세상에 전해지는 이름난 그림들은 모두 직접 내 눈으로 보았다. (중략) 어떤 그림은 물의 양이 너무 적어서 도저히 배가 뜰 수 없을 것 같은 것도 있었고, 또 어떤 그림에는 사람이 산보다 더 크게 그려져 있었다. (중략) 산수와 수석을 이렇게 표현한 옛 사람들의 의도를 자세히 살펴보면 그들의 뜻이 오로지 자기가 핵심으로 하는 장점을 발휘하는 데 있으며, 세속적인 변화나 유행에 얽매이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이것은 내가 「역대명화기」를 읽으며 가장 기억에 남았던, 그리고 내게 몇 가지 의문점을 던져준 문장이다. 나의 그러한 의문점들은 ‘그림은 무엇을 표현하기 위한 것인가?’ 라는 질문으로 제기되기 시작했다.

그림에서 표현해야할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사물의 모습을 화폭 위에 그대로 담아내는 것이 중요할까 아니면 사물에서 가장 중요한 것, 즉 본질을 그림으로 표현해내는 것이 중요할까? 「역대명화기」에서 말하는 회화란 ‘색을 합쳐 자연스러움을 나타내고 사물이나 본래의 것을 나타내는 것’이다. 사물 자체의 모습 뿐 만 아니라 그 속에 있는 본래의 것, 즉 본질을 나타내어야 한다는 뜻이다. 하지만 그림에 대한 지식이 짧은 나에게 사물의 모습을 그대로 표현하면서 동시에 그 속에 있는 본질을 표현하는 것이 어떻게 가능한지 도대체 이해가 되지 않았다. 사물의 본 모습이 곧 그것의 본질이 아닐까? 그래서 나는 두 가지 관점을 가지고 본질과 형상에 대해서 고민해 보았다.

첫 번째로, 본질과 형상의 딜레마는 바로 나의 문제이기도 하다. 나에게 그림보다 친숙하고 내 삶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음악에 있어서도 끊임없이 테크닉과 음악성의 문제를 놓고 치열하게 고민한다. 이 문제에 대해 나는 귀로 듣기에는 잘못된 음이 없고 전체적인 연결이 매끄럽다 하더라도 그 안에서 음악가가 표현하고자 하는 감정이나 사상이 드러나지 않는다면 좋은 음악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다른 것을 다 제쳐놓고 전체적인 음악을 만드는 것에만 너무 집중한 나머지 평소 레슨 시간에 교수님께 미스터치가 너무 많다는 지적을 자주 듣곤 했었다.
즉 나는 사물 안의 본질을 나타내기에 너무 급급한 나머지 그 사물의 본래 모습을 무시하고 세모를 네모로, 네모를 동그라미로 그리는 어설픈 화가였던 것이었다. 화가나 음악가의 입장에서 보았을 때 가장 최선의 예술이라는 것은 본질과 형상 두 가지는 조화롭게 빚어 아름다움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어느 한 가지도 나머지 한 가지에 비해서 모자란다면 진정으로 좋은 예술이 아니라고 분명하게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너무나 당연한 말이다. 하지만 예술의 영역이 아닌 현실에서도 본질과 현상의 문제가 이렇게 해결될 수 있을까?

사회적으로는 본질과 현상이라는 상반되는 두 가지를 두고 ‘조화시키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절충적이고 애매한 해결책을 제시할 뿐, 제 3의 대안에 대해서는 비교적 배타적이 아닌가?
그래서 그림과 음악에서 시작한 질문을 현실사회에 적용시켜 다시 한 번 제기해 보고자 한다. 현상과 본질의 문제를 외모지상주의 현대 사회현상에 접목시켜 보았다. 요즘 한창 사회에서 문제가 되고 있는 청소년 미용 성형과 취업 성형에 대해 생각의 추를 현상과 본질 사이를 오가며 어디로 떨어뜨려야 할 지 한참을 헤매었다. 과학이 발달하여 점점 미용을 위한 여러 가지 기술이 발달하고, 사람들은 외모에 점차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쉽게 말해 외모 지상주의 시대가 도래 한 것이다. 사람들은 뛰어난 외모를 가진 연예인들에게 열광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자신의 얼굴에 칼을 대는 것까지 주저하지 않게 되었다. 턱부터 귀 밑까지 매끄러운 곡선으로 이어진 소위 ‘브이라인’ 열풍이 불어 위험한 턱 수술을 감행하는 사람들이 생겼으며, 심지어 쌍꺼풀 수술은 더 이상 성형 수술의 일종이 아닌 간단한 미용 시술 정도로 인식되는 시대가 되었다. 불과 1, 2년 전 내가 고등학교에 다닐 때, 일주일 정도의 짧은 방학이 끝나고 학교로 돌아오면 어김없이 한 반에 한 두 명은 쌍꺼풀 수술 때문에 퉁퉁 부은 눈을 가리고 등교를 하곤 했다.

평소에 나는 성형에 대해서 부정적으로 생각했다. 남들은 이런 나를 고리타분하다고 말할지도 모르지만 부모님의 모습을 그대로 빼어 닮은 우리의 얼굴이 정말로 소중하고 아름다운 것이라고 생각했다. 단순히 좀 더 예뻐 보이기 위해서 얼굴을 고치는 것은 부모님이 우리에게 주신 사랑의 증표를 스스로 망가뜨리는 것과 다름없지 않은가?

하지만 만약 누군가가 내게 취업을 위해 소위 ‘스펙 만들기’ 의 일종으로 성형을 하는 것 마저 비판할 수 있는가? 라는 질문을 던진다면 나는 대답을 망설일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예를 들어 뛰어난 학벌과 능력을 가졌지만 못생긴 외모 때문에 항상 면접에서 떨어졌던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이 취업을 위해 성형을 하는 것에 대해 우리가 과연 비판할 수 있을까?

사람의 본질이 아닌 외모로 그 사람의 첫 인상을 판가름하는 외모 지상주의의 현대 사회에서, 쓸데없는 겉치레와 형식을 중요시 하는 우리들에게 과연 그런 자격이 있을까? 이런 맥락에서 무분별한 청소년 성형에 대해서는 기본적으로 반대를 하지만 불가피한 취업성형에 대해서 무조건 반대할 수 없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본질과 현상의 문제에 있어서 못생긴 외모 때문에 실력과 능력이 터무니없이 평가 절상되는 것은 어떠한가? 음악성이 없는 음악가와 본질을 드러내지 못하는 화가가 단지 음악가의 겉모습이 아름답고 테크닉이 좋다는 이유로 많은 사람들에게 인기를 끄는 것도 결국은 형상과 본질의 문제와 일맥상통한다. 우리들 자신이 종종 연예인들을 보면서 ‘저 사람은 못생긴데다 연기까지 못해서 싫고, 이 사람은 연기를 못 해도 예쁘니까 괜찮다.’ 라는 모순적인 말을 무의식중에 던진다.

이처럼 우리 사회는 어느 순간부터인가 현상과 본질에 대한 제대로 된 판단 기준을 상실해 버렸다. 진짜로 옳은 것이 무엇인지, 어는 것이 더 중요한 지, 무엇이 본질인 지를 생각하거나 고민하기 전에 눈에 들어오는 것과 손에 잡히는 것 등 감각적인 현상에 의존하는 경우가 점점 많아지고 있다.

그러다 보니 사람과 사람의 관계에 있어서도 짧은 즐거움을 위한 가벼운 만남과 상대방에 대한 수박 겉핥기식의 이해로 그 깊이가 정해지는 것이다. 21세기에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 본질만이 최선이고 현상은 차선이거나 뒷전이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설득력이 없다. 본질과 현상이 대립적으로 존재하면서 상호 반비례 관계에 놓여 있는 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나는 「역대명화기」통해 알게 되었다.

이 글을 쓰기 위해 「역대명화기」를 몇 번이나 읽었지만 솔직하게 말해서 아직도 「역대명화기」와 그 속에 그려진 화가들의 삶, 그림에 담긴 그들의 정신을 완벽하게 이해했다고는 말하기가 힘들다. 하지만 이 책, 「역대명화기」가 나에게 던져준 딜레마, ‘본질인가 그것을 감싼 형상인가?’ 하는 문제는 언제까지나 내 마음 한 곳에서 내 삶의 방향을 이끄는 그 무엇이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내가 내 스스로에게 던진 현상과 본질에 대한 두 가지 질문에 대해 완전하게 해답을 찾지 못했다. 내 마음의 깊이가 가진 한계와 내 경험의 부족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음악인으로서의 삶을 좀 더 오래 경험하고, 음악의 기술을 더 많이 익히면서 음악성을 더 치열하게 고민하고, 더 넓은 세상으로 나아가서 더 많은 사람들을 만날 그 때 쯤이면 이 질문에 대한 나름대로의 대답을 내어놓을 수 있을 것이다.

그 날을 위해 나는 무엇이든지 서슴지 않고 받아들일 것이며, 그 무엇이 설사 대립적인 것이라고 하더라도 내 속에서 그것이 함께 공존할 수 있도록 나의 그릇을 열심히 빚을 것이다.

● 본 작품은 ‘제14회 교양도서 독후감 경시대회’ 최우수작입니다. 이슬기(피아노·1)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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