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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은 지혜보다 지식을 추구하는 학문

글쓰기와 토론 훈련 통해 사고력과 판단력 배양

● 철학은 어떤 학문인가?
사람은 자신이 경험하는 사물의 배후에 있는 어떤 통일된 원리를 찾고자 하는 강한 욕구를 갖고 있는데, 철학은 바로 이런 욕구를 지성적으로 실현하는 작업이라고 볼 수 있다. 철학자들은 이런 원리에 입각해서 우리가 경험하는 것들을 설명하고자 하는 사람들로서, 그들이 발견한 원리는 인생과 세계를 바라보고 해석하는 모형이 된다. 예를 들면 플라톤은 ‘이데아’라는 모형을, 공자는 ‘인’(仁)을, 피타고라스는 ‘수’(數)라는 모형을 각각 생각해냈다.

철학을 공부한다는 것은 일차적으로 과거의 훌륭한 철학자들이 제시한 여러 가지 모형을 배우고 익히는 것이다. 동서고금의 철학자들이 내놓은 모형이 얼마만큼 독창적인지, 또 얼마만큼 설득력이 있는지 탐구하는 것이다. 데카르트의 ‘코기토’는 사람들의 관심을 초월적 신으로부터 투명한 자아로 돌려놓았으며, 원효는 ‘화쟁’을 철학적 담론의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제시하였다. 어떤 모형이 얼마나 좋은지는 그것이 발휘하는 설명력과 그 속에 담긴 통찰력에 달려 있다. 좋은 철학자는 세월이 지나도 영향력을 잃지 않는 비전과 모형을 제시한 사람이다.

철학적 모형은 논변에 의해 뒷받침된다. 철학자는 우선 자신의 독창적 모형을 만드는 일에 몰두하고, 그 다음 그것을 다른 사람들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도록 논변을 세우는 데 심혈을 기울인다. 모형을 만드는 일도 중요하지만 논변을 세우는 일도 매우 중요하다. 철학적 모형과 체계는 결국 개념들로 이루어져 있기에, 개념들의 연관 즉 논리는 철학의 생명을 좌우할 만큼 중요하다. 논변 세우기는 철학적 주장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작업이다.

● 철학은 일상생활과 무슨 관계가 있나?
일상생활과 연관시켜 본다면, 철학은 평소에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고 있는 기본적 믿음이나 개념들의 근거를 캐묻는 작업이다. 이를테면 우리는 지식, 자유, 옳음과 그름 등과 같은 개념을 당연시하지 않고는 인생을 제대로 살아 갈 수 없다. 하지만 우리는 평소에 과연 어떤 것이 확실한 지식인지, 나 자신이 얼마나 자유로운 존재인지, 어떤 행동을 옳거나 그릇되게 만드는 근거가 도대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좀처럼 물음을 던지지 않고 살아간다.

왜냐하면 이러한 물음들은 먹고 사는 문제와는 별로(혹은 전혀) 관계가 없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이런 문제들을 생각하는 것 자체가 ‘골치 아픈’ 일이다. 따라서 이런 문제를 붙들고 관련된 개념들의 근거를 스스로 탐구하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타성적 생활의 굴레에서 벗어나 자신의 삶을 진지하게 고찰하려는 사람들에게는 저 물음들은 피할 수 없는 것으로 다가온다. 그들은 저 물음들이 안고 있는 심각성을 정직하게 받아들이고, 그것들과 씨름을 하면서 자신을 얽어매고 있는 온갖 편견과 독단으로부터 힘겨운 탈출을 감행한다.

● 해답보다 물음이 더 중요한 학문
철학에서는 답보다 물음이 훨씬 더 중요하다. 이 점에서 철학은 분명한 답을 요구하고 제공하고자 하는 대부분의 학문들과 다르다. 일부 사람들이 철학을 ‘밑도 끝도 없는’ 학문으로 오해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그러나 철학은 물음 자체를 끊임없이 추구하고 즐김으로써 우리의 지적 상상력을 풍요롭게 하고, 우리의 지성이 독단과 우상의 포로가 되는 것을 방지한다.

사람들은 자신의 삶을 이끌어 줄 어떤 고상한 이념을 희구하는 경향이 있다. 그 이념이 자신의 삶에 소중한 목표를 제시하고, 삶에 위안을 줄 것이라고 기대한다. 그러나 철학은 엄밀히 말해서 삶에 목표와 위안을 주기 위해 생긴 학문이 아니다. 철학은 어떤 목적을 위해 만들어진 이념이나 신념체계, 이데올로기가 아니다. 설사 그 목적이 아무리 좋고 이념이 아무리 매력적인 것일지라도 말이다. 고상한 이념은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매력이 있다. 문제는 사람들이 일단 이념이나 이데올로기에 끌리고 나면 좀처럼 그 틀을 벗어나지 않으려 한다는 데 있다. 이것은 철학의 생명인 지성의 자발성과는 거리가 멀다.

● 철학의 효용성
철학은 삶의 목표를 제시하는 인생관이나 장밋빛 표어를 내세워 유토피아 건설을 외치는 이념이 아니다. 그 대신 철학은 사람들이 신봉하는 신념이나 개념들의 문제점이 무엇인지 보여 주며, 그 문제점에 직면해 어떤 길을 선택할 수 있는지 안내한다. 즉 철학은 삶의 여러 가지 문제에 대하여 구체적인 해답을 주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스스로 철학적 반성과 분석을 통해 자기 인생의 문제를 스스로 결정할 수 있게 도와준다.

철학이란, 어떤 점에서 보면, 일상생활에서 우리가 쓰고 있는 말의 의미를 분명히 깨닫는 일이라고 볼 수 있다. 철학의 주된 기능이 반성과 분석에 있다면,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많은 지식을 획득하기보다 이미 우리가 가지고 있는 지식이나 신념체계의 바탕인 언어를 검토하는 일일 것이다. 철학을 공부하는 사람은 따라서 정직한 글쓰기와 대화를 통해 자신의 생각과 언어를 검토하고 그 결과를 논리적으로 표현하는 훈련에 많은 시간을 보낸다. 이러한 노력을 통해 그는 문제의 핵심을 파악하는 사고력과 균형 잡힌 판단력을 얻고, 궁극적으로는 지식보다는 지혜를 사랑하는 사람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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