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벚꽃이 필 무렵, 지역아동센터에서 근로를 시작했다. 센터에서 만난 초등학생들은 내 예상보다도 조그맣고 앳된 얼굴들이었다. 꾀꼬리 같은 목소리와 무한정 충전되는 체력, 순진무구한 질문을 가진 아이들을 보며 내가 동심의 세계에 들어왔다는 것을 하루하루 실감했다.
근로를 시작한 지 사흘 차가 됐던 날, 뜻밖의 일을 겪었다. 한 아이가 나를 학습방 밖으로 불러낸 것이다. 유난히 동그랗고 맑은 눈을 가진 초등학교 1학년 상우(가명)였다. “선생님 이리 와봐요.”라고 내 귀에 속삭이는 목소리는 다분히 은밀했고, 나는 영문도 모른 채 상우의 손에 이끌려 나갔다.
아무도 없는 방 밖에서 내가 무슨 일이냐고 물었을 때 상우는 긴장된 얼굴로 나를 올려다보았다. 뭔가 할 말이 있는 듯 입술을 달싹거리던 상우는 뜻밖에도 이렇게 말했다. “선생님, 사랑해요.” 일순간 저항없이 웃음이 새어나왔다. 푸석푸석한 말들만 오가던 나의 일상에 오랜만에 들어온 사랑스러운 말이었다. 쑥스러워진 나는 “응, 고마워. 근데 왜 선생님 밖으로 불러내서 얘기해?”라고 물었고, 상우는 다른 친구들이 놀릴까봐 그렇다고 답했다.
그날 이후로 아직까지도 상우는 종종 내게 와 사랑한다고 말하곤 한다. 하루에도 열 번 넘게 찾아와 사랑한다고 속삭이고 가는 날도 있다. 상우는 만나면 반갑다고 인사하듯 사랑한다고 말할 줄 아는 아이였다. 돌이켜보면 나는 상우가 센터에 왔을 때 반갑게 인사를 건네고, 소소한 놀이를 하며 함께 놀아준 일밖에 없었다. 그런데도 상우는 “사랑해요. 많이 많이 사랑해요.” 하고 말해주었다. 어린 아이에겐 이토록 쉬운 말을 어른들은 왜 어려워할까? 나이가 들면서 사랑이란 말을 거창하게 생각하기 때문이다. 나 또한 활자가 아닌 말로써 누군가에게 사랑한다고 말했던 일이 까마득했다. 사실은 무언가를 아끼고 소중히 여기는 마음은 전혀 어렵지 않은데도 말이다. 하지만 조그마한 사랑도 잊지 않고 번번이 표현하는 상우를 보며 나도 조금씩 변해갔다. 그리고 올해 여름, 나는 좋아하는 사람의 눈을 보고 처음으로 말했다. 너무너무 좋아해. 사랑해. 모래성이 파도 한 번에 무너지듯 내 안에서 무언가 사르르 녹았다. 허무하게도 쉬운 사랑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