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동주는 유명한 시인이다. 역사적으로, 대중적으로, 못다 피운 꽃 하나는 해방이라는 다른 꽃이 핀 후에 민들레 씨 마냥 널리 퍼져나갔다. 나도 아마 민들레 꽃가루를 맞은 사람일 것이다. 그렇게 몸속으로 그는 스며들어왔다.
우리는 SNS(social networking service)를 통해 자신의 감정을 글로 표현하는 것이 예전보다 훨씬 자유로워졌지만, 그만큼 말의 무게가 가벼워지기 시작했다는 악영향도 존재한다. 4차 산업혁명까지 운운하고 있는 시기에도 슬픔은 사람 간의 이별이라는 것에 쫀득쫀득하게 결속되어 있다. 마치 힘만 주면 떼어낼 수 있을 것 같지만, 떼어내도 나머지 손에 남는 것은 좋은 것이라 할 수도 없고, 나쁜 것이라 할 수도 없다. 그래서 이별은 자연스러운 것이다. 그에게 어릴 적 모든 것이 ‘순이’였다(「사랑의 전당」 中).
‘봄’(春)을 노래하고, ‘봄’을 그리다가, 헛봄이 아닌 역사의 ‘봄’을 보기 몇 개월 전에 세상과 이별해야 했다. 그렇게 그는 아른하게 높기도 한 하늘의 별빛을 따라 1945년 2월 16일 생을 마감했다. 윤동주는 내게 시를 본격적으로 쓸 수 있게 해 준 장본인이다. 사실 윤동주를 논할 때에 역사를 고려하지 않는다고 하면 굉장히 곤란하고 실례이다. 슬픔을 수치화할 수 없고, 같은 역사를 반복해 겪을 수는 없겠지만ㅡ겪으면 더더욱 안된다ㅡ현대시를 읽는 사람들이나 SNS에 올라오는 글귀들을 감성적으로 향유하던 사람들의 시각으로 윤동주의 시를 바라보면 어디까지 소모적일 수 있는지 생각해보는 계기가 됐으면 하는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