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영화 ‘인사이드 아웃’을 보았다. 인사이드 아웃은 사람의 감정을 캐릭터화해 주인공의 내적 성숙을 섬세하게 다룬 작품이다. 감정 친구들이 협응하여 주인공의 감정을 지휘하고, 때론 어떤 감정이 앞서나가 방황하기도 한다. 영화의 내용을 알고 있었음에도 보고 난 후 감회가 새로웠다. 표면적으로 영화를 이해하는 것을 넘어, 나 자신을 이해해보는 시간을 마련해주었기 때문이다. 특히 영화의 후반부에 슬픔을 외면하려 했던 기쁨이가, 슬픔이 있을 때 모든 감정이 의미 있게 됨을 깨닫는 장면은 얼마 전 나의 모습과도 비슷했다.
사실 어릴 적의 나는 어두운 감정들을 줄곧 무시해왔던 아이였다. 부정적인 감정을 표현하는 것이 어색했고, 그러면 안 되는 일처럼 여겨졌다. 그런 나의 세계에 균열이 일어난 것은 전공기초 수업 속 성격유형 분석 활동 때문이었다.
나는 내 유형의 풀이를 보는 순간 민낯을 들켜버린 것처럼 부끄러웠다. 내가 타인의 감정을 돌보는 만큼 나의 감정을 돌보지 않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인간관계에 온 신경을 쏟다 보니 정작 그 속에 내 목소리는 묻혀가고 있었다는 걸 21살이 되어서야 인지하게 된 것이다. 슬픔이 찾아오면 한없이 슬퍼하지 못했던 나의 모습. 긍정으로 무마하고 나면 뒷전이 되는 분노와 슬픔. 나에게 상처 주었던 사람에게 나는 다시 반문했던 적이 있던가. 적어도 나 자신을 억누를 필요는 없지 않았을까. 그렇게 뒤늦은 자아 성찰 속에서 다가온 인사이드 아웃의 메시지는 나의 유년 시절을 보듬어주는 듯했다.
슬픔과 절망, 혼란, 분노가 정말 우리가 외면해야만 하는 감정일까. 생각해보면 슬픔은 과열된 나에게 차가움을 주었다. 슬픔과 분노를 맞이하고 난 후의 행복은 더욱 달콤하며, 그것들을 밟고 나는 더 성장할 수 있었다. 서툴렀던 나를 지나온 지금, 이제는 내 안의 감정들을 무시하지 않고 싶다. 슬프고, 화나고, 답답할 땐 허공에 소리도 쳐보고, 충분히 표현하며 나의 감정 친구들과 잘 지내볼 생각이다.
겁이 나서 외치지 못했던 많은 말들이 과거에 남아있대도, 오늘 밤은 그 외침을 돌려 나 자신에게 물어보고 싶다. 흘려보내기 급급했던 감정들과 한 곳에 둘러 앉아서 말이다. 기나긴 새벽이 이어진대도 상관없다. 아직 그들과 못 나눈 이야기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