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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마당] 우리의 동심은 어디에

최근 노키즈존에 관한 논란이 가중되고 있다. 내가 SNS에서 본 이야기에 따르면, 어느 부모가 아이와 함께 SNS에서 유명한 카페에 방문했는데 카페 측이 노키즈존이라고 알려왔다. 하지만 뒤늦게 노키즈존임을 알린 상황이고 손님이 적었기에 1시간만 이용한다는 조건으로 야외 테이블에 앉을 수 있었다.
 
처음 이 소식을 접했을 때 나는 황당한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아이와 판매하는 음식을 골라담고 사진을 찍는 것은 괜찮지만, 아이와 함께 안에서 먹지는 못하게 했다는 것이다. 부모와 아이는 카페 안에 손님이 별로 없었기에 겨우 한 시간 동안 야외 테이블을 이용할 수 있었고, 하마터면 매장에서 쫓겨날 뻔했다. 긍정적 홍보 효과와 금전적 이득은 얻고 싶지만, 아이들이 통제가 어렵고 시끄럽다는 이유로 몇몇 식당들이 노키즈존을 고집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계속해서 저출산 극복을 위해 여러 정책을 시행하고 있다. 하지만 정작 출산 후엔 어른들이 세운 노키즈존이라는 벽 앞에 아이들의 동심과 자유가 멈춰선다. 우리는 누구나 어린시절을 겪고, 지금의 어른이 되었다. 그럼에도 어른들은 아이들을 배려하지 않고 자신들의 편의만을 생각하고 있다. 이처럼 아이가 멸시받는 세상이라면 어른 또한 존중받지 못하는 악순환이 반복될 것이다. 
 
11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동화작가로 활동하고 있는 전이수 작가는 어린이의 시점에서 노키즈존에 대한 글을 SNS에 게재한 적이 있다. 해당 글에 따르면 동생의 생일을 맞이하여 1시간 동안 차를 타고 스테이크 집에 갔으나 돌아오는 말은 고작 노키즈 존이니 아이는 들어올 수 없다는 것이었다. 이에 “저희도 밥 먹으러 온 거예요” 했더니 직원이 “여기는 노키즈존이야, 애들은 여기 못 들어 온다는 뜻이야. 얼른 나가”라고 답했다. 이런 상황을 경험한 전이수 작가의 한마디가 인상적이다. “어른들이 편히 있고 싶어하는 권리보다 아이들이 가게에 들어올 수 있는 권리가 더 중요하다는 것을, 어른들은 잊고 있나 보다. 어른들도 한때는 어린아이였다는 것을” 
 
그렇다, 우리도 한때 아이였던 시절이 있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누구나 실수를 하지만 유독 아이들의 실수에 민감한 어른들이다. 아이들의 실수가 용납되고 수용되는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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