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을 먹은 후 강의실 풍경 속, 학생들의 자리에는 어김없이 커피잔이 놓여있다. 친구들과의 약속에서 카페가 빠지면 섭섭할 정도로 커피는 우리들의 일상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국민 1인당 커피 소비량은 연간 600잔으로 하루 1.6잔꼴로 마시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처럼 한국인의 커피 사랑은 가히 폭발적이라 할 만큼 한국사회를 점령해 가고 있다. 우리나라에 커피가 소개된 것이 100년을 넘었다 하나 대중화된 것은 다방이 본격적으로 보급된 1960년대 이후부터다. 더구나 요즘 사람들이 즐겨 마시는 원두커피의 경우 보급된지 10년 정도에 불과하니 실로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커피 관련 산업이 각광받는 것과는 반대로, 저개발국가의 생산자들은 너무나 가난하다. 한 잔에 4,000원 하는 아메리카노 원두의 원가는 최종 소비자 가격과의 차이가 무려 200배에 가깝다. 즉 소비자는 생산지 원가의 수백 배나 되는 돈을 지불하고서 한 잔의 커피를 사먹는 셈이다. 유통업자들의 폭리 때문에 농민들이 손에 쥘 수 있는 돈이 거의 없고 이런 구조적인 문제로 인해 세계 커피 농가의 3분의 2가 절대빈곤에 허덕이고 있는 실정이다.
유통업자와 가공업자들이 폭리로 배를 불릴 때 원산지 생산자들은 가난과 굶주림에 시달리고 있다. 아이들은 학교에 가는 대신 농장에서 일을 해야 했고, 교육을 받지 못하는 아이들은 빚과 가난을 물려받으면서도 의료 혜택은 꿈도 꾸지 못한다. 커피 농가 뿐 아니라 바나나, 카카오, 홍차, 올리브 농가 등도 이와 유사한 상황에 처해 있다. 저개발국가 농민들의 삶은 어제도 오늘도 지옥인 것이다.
개발도상국에서 제품생산은 그 나라 일자리 창출에 중요한 요소임이 분명하다. 착취당하지 않고서는 살아갈 수조차 없는 것이다. 하지만, 앞으로 우리는 자꾸만 더 싼 제품을 원하는 소비행태에서 비롯된 개도국의 나쁜 일자리에 대해 근본적인 의구심을 가져야 한다. 또 우리가 손쉽게 구입하는 제품이 열악한 근로조건 아래에서 노동자를 착취하거나 혹은 자연자원을 고갈시키면서 생산된 것은 아닌지 다시 한 번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오늘날 대한민국은 절대적 빈곤에서 하루 세 끼를 먹지, 국제적 원조가 없으면 살지 못하는 나라에서 당당하게 벗어났다. 단군 이래 물질적으로 가장 풍요로운 나날을 보내고 있는 한국에 살면서 나는 오늘도 생각해 본다. “내가 먹고 있는 이 커피가 개발도상국의 어느 농장에서, 나보다 어린 아이들이 착취당하면서 생산된 원두로 만들어진 것은 아닐까? 무심코 이루어지는 나의 소비로 인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정당한 대가를 받지 못하고 피해를 볼까?”
아무리 생각해봐도 쉽사리 결론이 나질 않는다. 우리 개개인은 너무도 나약하고 작은 존재임을 절실히 깨달을 뿐이다. 하지만 적어도 이 글을 읽는 당신에게는 조그마한 생각의 변화가 생겼으면 한다. “스타벅스에서 커피 한 잔 하자.” 이 말을 쉽게 내뱉으면 안 되는 것이구나. 나의 일상적인 행동으로 인해 지구 반대편 어린 아이들이 하루 12시간씩 일하고 농약에 직접 닿는 위험한 일에 노출되어 있구나. 이런 현실을 마음에 담고 더 나아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작은 행동으로 옮겨질 수만 있다면 대한민국은, 아니, 전 세계는 지금보다도 더욱 살기 좋아지고 정의로운 사회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