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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48호 독자마당] 순수의 시대

누군가 갑자기 당신에게 “넌 순수하지 못해”라고 말한 상황을 가정해보자. 당신은 이 말을 듣고 무슨 생각이 들까. 우선 ‘순수’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곰곰이 따져보기 시작할 것이다. 나를 향한 ‘불순하다’는 지적은 우리네 세상에서는 둘 중 하나를 뜻할 수 있겠다. 하나는 내가 진정으로 나쁜 행동을 일삼아 주위 사람들로부터 받아 마땅한 비난을 받는 악한(惡漢)인 경우이고, 다른 하나는 나에게 순수하지 못하다고 말한 자가, 내 신분적 특성과 나의 언동(言動)을 지적하며 ‘불순종자’로 낙인찍는 행위일 것이다. 흔히 정치권에서 이것이 ‘종북몰이’의 양상으로 나타나고, 학내에서는 ‘불만 많은 학생’ 혹은 ‘운동권’으로 구분되는 듯하다.

앞서 운동권을 언급하였지만 사실 우리학교에서는 운동권이라는 개념 자체가 사라진 지 오래다. 전통적 의미의 운동권은 ‘자주·민주·통일’을 주장하는 소위 NL 세력이다. 우리학교에서 이러한 NL 계열 학생은 내가 아는 선에서는 적어도 20년 전부터 완전히 멸종되었다. (누군가의 시선에서는) 캠퍼스를 시끄럽게 하고 학교에 불만 많은 것들이 역사 속으로 퇴장한 셈이니 이제 교내에는 순수한 학생들만 남아야 이치에 맞다.

나는 다만 옳은 것은 옳다고 말해야 하고 그른 것은 그릇되었다고 말하는 것이 이 시대가 요구하는 참된 인재상이라고 생각한다. 바른 말 하는 사람의 입을 막으며 회유나 협박을 하는 불의의 세력이나 악의 편에 붙어 진보를 가로막는 자들에게는 당당히 “당신들은 틀렸다.”고 말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 이러한 자세는 특히나 장차 대한민국을 이끌어 나갈 대학생들에게 수반되어야 하는 자세라는 것이 내 소신이다.

한데 요즘 대학들의 분위기가 심상찮다. 여기저기서 학생-대학본부 간의 분쟁이 계속되고 있다, 보통의 경우 분쟁은 커다란 소음을 동반하기 마련이지만 의외로 ‘소리 없는 분쟁’이 이어지는 경우도 잦다. 외부적으로는 평화로워 보이지만 그 속이 점점 곪아감에 따라 여태까지는 보이지 않던 내부적 문제가 점차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이러한 문제는 대학생들의 (정치적)행동과 비판적 사고를 마비시키려는 일련의 시도들, 예컨대 학생자치의 붕괴나 학내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군사정권 시절 잔재의 부활과 밀접한 관련이 있을 터이다. 추측건대 요즘의 대학에는 정치적 행동과 비판적 사고를 가지는 학생들을 그야말로 ‘공부’만 하였으면 하는, 취업이나 하였으면 하는 자본의 논리가 깊이 개입한 것이다. 사정이 이러하니 공부만 하고 취업이나 잘하는 학생들이 비로소 ‘순수’한 학생이 되지 않겠는가.

순종적인 학생이 순수한 학생으로 찬양받는 어둠의 시대, 억압의 시대, 순종의 시대가 대학사회의 지배적 이데올로기가 되고 있는 현실에 나는 슬퍼한다. 지금의 대학생들에겐 조용히 슬퍼하고 침전할 권리만 있을 뿐 그 슬픔을 표출하거나, 분노하거나, 행동할 권리가 없음에 나는 대학인의 감정이 거세되었음을 주장한다. 이것이 우리학교에서 이뤄지는 비이성(非理性)의 단면이다. 나는 차라리 어둠이 걷히길 기대하며, ‘불순’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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