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대생 태반은 ‘호황’보다 ‘불황’이라는 말이 더욱 익숙하다. 80년대의 3저호황 시기 ‘한강의 기적’으로 불릴 만큼의 괄목할 성장률을 기록한 우리나라는 IMF 금융위기 사태를 기점으로 ‘경제 우등생’ 한국의 신화를 내려놓게 됐다. 바야흐로 정리해고와 비정규직이 일상화된 시대가 도래했고, 청년실업률은 해마다 증가하고 있다. 한국경제연구원에 따르면 2009년부터 2019년까지 10년 간 우리나라의 청년실업률은 5.0%에서 5.7%로 0.7포인트 악화된 것으로 조사됐고, 통계청은 지난달 우리나라 청년실업률을 8.3%로 발표했다.
그런데 세간에서 흔히 경제호황기로 인식되는 80년대에도 대졸자 취업난은 여전했다는 사실을 아는가? ’89년 11월 28일자 〈계명대신문〉의 ‘취업가능성 희박하다’ 기사는 “매우 치열한 ‘취업전쟁’”을 우려하는 시선이 고스란히 반영돼 있다. 기사는 90년 초 졸업예정자 16만 명과 졸업 후 취업을 준비하는 이른바 ‘취업재수생’의 숫자가 10만 명에 달해 취업에 어려움이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더욱이 지방대 학생은 과거에도 취업에 어려움을 겪은 것으로 보이는데, 이런 현상 속에서 “대학졸업 후의 곧바로 취업은 ‘횡재’, ‘행운’”으로 불리며 “다른 사람의 부러움을 살 정도”였다고 한다. 과거의 일이지만 2020년과 유사한 형편이다.
기사에 따르면 87년부터 89년까지 3년간 우리학교 졸업생의 취업률은 각각 37.6%, 35.7%, 47.5%로 나타나 10명 중 절반은 일자리를 구하지 못했다고 한다. 이에 기사는 우리학교에 위치한 취업홍보실이 제 기능을 다하지 못하는 사실을 지적하며 취업홍보실의 역량 강화를 주문한다. 당시 취업홍보실은 “대명동은 실장을 포함해 4명, 성서에는 고작 1명 뿐”인 매우 영세한 조직이었던 탓에 그 역할과 기능이 제한적이었다. 취업홍보실은 학내에 취업지도특강을 개설 및 취업홍보지 배포와 더불어 대구 일원 기업에 연간 800~900명의 취업 알선을 한 것으로 조사돼 나름대로의 역할을 해냈지만, “단대·학과와의 협조와 이해부족으로 그 실효성 면에서 부정적인 요소”가 있어 한계를 드러내고 있었다.
기사는 취업난을 가속화시킬 수밖에 없는 사회 구조도 조명한다. 여대생의 경우 전체 여대생 졸업자의 1%만 취업을 할 수 있었을 정도로 성별 간의 기회불균형이 심각했다고 지적했다. 또한 “세칭 일류대학들”과 비교되어 저평가되는 선입관과 편견도 시급히 해결해야 할 당면과제라고 강조했다. 기사는 끝으로 “취업난이 대학의 건전한 발전을 저해하고 사회문제화 되고 있다는 우려의 소리가 높”다며 정부와 대학에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할 것을 촉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