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 위기로 인한 피해가 자연을 넘어 인간에게까지 도달하고 있다. 그에 따라 환경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부쩍 늘었다. 이스라엘 텔아비브대학 지구생태학과 생물지리학 연구팀이 지난 11월 12일에 학술지 ‘사이언스 어드밴시스’에 게재한 논문에 따르면 ‘물고기와 갑각류, 오징어와 같은 연체동물 등 236종 해양생물의 서식지를 분석한 결과 지중해 일대에서 생물들이 평균 55m 가량 수심이 깊은 곳으로 이동했다’고 한다. 또한 연구팀은 논문에서 지구 온난화로 인해 아마존에 서식하는 새들의 몸집이 작아지면서 날개가 점점 길어지고 있다며 기후 위기의 위험성을 강조했다. 이처럼 지구 온난화는 우리에게 직접적인 피해를 야기하고 있다. 그런데 지구 온난화는 어느날 갑작스럽게 진행된 것이 아니라 이전부터 천천히 진행되어왔다. 오늘날과 같이 급속한 변화가 일어나기 이전에는 사람들이 환경문제를 어떻게 인식하고 있었을까. ’97년 11월 17일 <계명대신문>에 실린 ‘음식물 쓰레기 줄이기, 1인당 30g 감소 효과’ 기사는 환경보호를 위해 음식물 쓰레기 줄이기 캠페인에 나선 우리학교 구성원들을 다뤘다. 기사는 “학생들이 많이 이용하는 바우어관, 인문관, 자연관 학생식당에
A교수는 종강을 앞두고 학생들의 강의 만족도 조사를 기다리고 있다. 한 학기를 마무리하며 본인의 강의가 학생들에게 만족스럽게 다가갔을지 고민이 많다. 반면 대학생 B씨는 기말고사 성적을 확인하기 위해 반드시 해야 하는 강의 만족도 조사에 어쩔 수 없이 응했다. 답변은 모두 ‘보통이다’ 항목으로 통일했고 주관식 평가란에는 ‘교수님 수고하셨습니다’라는 상투적인 표현을 적어넣었다. 한편 교수의 강의가 불만족스러웠던 C씨는 해당 강의 문제점을 감정적인 문구들로 강의평가에 녹여냈다. 우리학교는 강의 만족도 조사를 통해 강의의 질을 개선하고자 한다. 하지만 강의 평가가 형식적이라는 비판이 제기된다. 강의 만족도 조사에 진지하게 응하는 재학생의 비율은 결코 높다고 할 수 없는 수준이며, 학생들은 강의 평가로 무엇이 달라지는지 체감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강의 평가를 둘러싼 갑론을박은 과거에도 있었다. ‘96년 11월 4일자 <계명대신문>에 실린 ‘교수 활동…실적 위주 평가 문제 많아’ 기사에서 교수업적 평가제의 허와 실을 조명한다. 기사는 교수의 교육 활동을 평가하는 방법으로 ▶교수 자체 평가 ▶동료 교수 평가 ▶수업을 듣는 학생들의 직접 평가 등이 있다고
대학생 A씨는 눈을 뜨자마자 책상에 앉아 컴퓨터를 켠다. 수업 시작 1분 전 겨우 비대면 수업에 접속한 A씨는 그제야 거울을 보며 자신의 모습을 단장하기 시작한다. 한편 자취방이 답답했던 B씨는 집 근처 카페에서 강의를 듣기 시작했다. 코로나19가 바꿔놓은 대학가 풍경은 어느덧 학생들의 일상에 깊이 스며들었다. 하지만 불편도 뒤따른다. C씨는 동영상 수업을 듣기 위해 교수학습지원시스템에 접속했지만 로그인이 안 되는 오류로 수업을 듣지 못했다. 또 D씨는 교수가 몇 년 전 촬영된 강의 영상을 재활용했다는 사실을 알아채고 황당한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이처럼 많은 학생이 강의의 질적 하락을 이유로 비대면 수업을 달가워하지 않고 있다. 그렇다면 전산 환경이 온전치 못했을 옛날엔 어땠을까. ‘96년 9월 23일자 <계명대신문>에 실린 ‘전산교육원, 학생 편의와 강의 질 개선 위한 노력 전개해야’라는 기사에서 캠퍼스 전산화 작업이 진행되던 당시의 모습을 찾을 수 있다. 기사는 “무엇보다 학생들의 편의와 강의 질 개선을 위한 전산화 개발과 실습실 증설이 시급히 이루어져야 한다”고 지적하며 그 이유를 설명하고 있다. 동아일보에서 실시했던 ‘96년 대학 정보화
학생 복지는 중요하다. ‘대학은 공부를 하는 곳인데 복지가 뭐가 중요하냐’라고 반문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복지와 공부는 서로 대립하는 개념이 아니다. 많은 장서를 보유한 도서관, 넓고 쾌적한 강의실, 높은 사양의 컴퓨터가 배치된 PC실, 저렴하고 질 좋은 음식을 판매하는 학생식당처럼 학생을 위한 편의시설이 고루 갖춰질수록 학습 능률도 덩달아 오르기 마련이다. ‘계명정신과 봉사’라는 교양필수 과목에서 언급했듯, 우리학교가 캠퍼스 미관에 신경을 쓰는 이유도 이와 비슷하다. 학생복지시설은 학생들의 요구와 시대적 변화에 힘입어 양적·질적인 개선을 거듭해왔다. 2000년대 초에는 신바우어관이 완공됐고, 2010년대 들어서는 백은관 맞은편에 아람관이 신축됐다. 둘 다 학생식당과 동아리실 등이 위치한 학생복지시설이다. 동산도서관 또한 수차례의 개보수와 공간 조정 끝에 VR 체험존과 현대화된 열람실 등을 갖추며 ‘스마트 도서관’으로 탈바꿈했다. 그렇다면 옛날엔 어땠을까. ‘98년 9월 14일자 <계명대신문>에 실린 ‘학교 복지시설 이용에 불편 많아’라는 기사는 그 제목에서 유추할 수 있듯 복지시설의 미비를 지적하고 있다. 기사는 “실질적으로 학생들이 느끼
“우리학교에 캠퍼스가 몇 개지?” 문득 떠오른 이 질문이 학과 동기들과의 소소한 토론거리가 되었던 적이 있다. 우선 우리가 발붙이고 있는 성서캠퍼스가 있고, 과거에 본캠이었지만 현재는 미술대학만 남아있는 대명캠퍼스가 있다는 데에는 모두가 동의했지만, 그밖에 다른 캠퍼스가 존재하는가에 대해서는 아무도 확실하게 말하지 못했다. 사실 우리학교는 성서와 대명캠퍼스 외에도 세 곳의 캠퍼스가 더 있다. 대구동산병원이 위치한 동산캠퍼스, 달성군 유가읍에 터잡은 달성캠퍼스, 성서의 1.5배 규모에 이르는 칠곡캠퍼스가 그 주인공이다. 하지만 동산캠퍼스를 제외하면 부지만 확보된 상태고, 구체적인 개발 계획이 확정된 것도 아닌 탓에 이들 캠퍼스에 대한 학생들의 인지도는 전무한 실정이다. 한때 성서캠퍼스도 허허벌판이던 시절이 있었다. ’98년 5월 18일자 <계명대신문>은 “81년부터 계속되는 이사, 언제 끝날지는 미지수”라는 기사를 통해 성서캠퍼스 이전 현황을 살핀 바 있다. 성서 이전이 본격적으로 추진된 것은 지난 1983년 1학기. 이전 초기 성서에 자리잡은 단과대학은 이공대(현재의 자연대)와 문과대학, 외국어대학(현재의 인문국제학대학)으로 총 세 곳이었다, 문과
“절반 이상의 빈 좌석엔 가방이 자리를 지키거나 책이 홀로 공부하고 있으며, 어떤 사람은 꾸벅꾸벅 졸고 있다. (내가) 빈 좌석에 앉아 있으면 오전 9시를 넘어 심하면 11시 가량되어 좌석권을 내보이며 당연한 권리인 양 눈짓을 하는 사람이 의외로 많다.” 어제의 열람실과 다를 바 없는 풍경이지만 35년 전, 그러니까 1986년 일이다. 시험 기간만 되면 만석이 되는 도서관에서 빈자리를 찾기란 예나 지금이나 어렵기는 마찬가지였다. 1986년 4월 22일자 <계명대학보>에 실린 ‘작은 질서를 위한 나의 제언’이라는 기고문은 당시의 열람실 이용 실태와 이제는 볼 수 없는 생경한 모습을 상세히 묘사하고 있다. 글은 개강 후 두 달간 분주하게 흘러간 시간을 돌아보며 도서관 열람실의 이용 실태를 지적한다. 글쓴이 양진흥(경제학·3) 씨는 취업난으로 인한 학생들의 불안감에서 야기된 불필요한 경쟁이 “덮어두기엔 고통스럽고 밝히기엔 민망한” 열람실 이용 실태와 맞닿아있다고 말했다. 당시 열람실은 수요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시설로 인해 학생들의 불만이 끊이지 않았는데, 이에 학교는 학생들이 열람실을 공평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좌석권’ 제도를 도입했다. 그러나 이
2021년 재보궐선거가 이틀 앞으로 다가왔다. 이번 재보궐선거는 전체 인구의 1/4에 해당하는 1천216만 명의 유권자가 참여하는 엄청난 규모여서 사실상 2022년 대선의 전초전으로 여겨진다. 특히 서울과 부산은 여당 소속 지자체장이 나란히 성추행으로 물러나 공석이 된 상황이라, 수성하려는 여당과 탈환을 노리는 야당 사이의 각축전이 과열 양상을 보여 유권자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더불어민주당 박영선 후보와 국민의힘 오세훈 후보는 각각 ‘도쿄 아파트’와 ‘내곡동 땅’을 두고 부동산 투기 논란에 불을 지피고 있다. 그러나 각자의 도덕성 검증과 불법행위 여부가 논쟁의 핵심이 된 사이, 정책과 비전 경쟁이 설 자리는 점차 협소해지고 있다. 두 후보 모두 부동산 민심 악화를 의식한 듯 너나 할 것 없이 ‘재개발’을 외치고 있고, 나란히 건축 규제를 완화할 뜻을 내비쳤기 때문이다. 후보 진영 간 공약에 뚜렷한 차이를 확인할 수 없고 상호 간의 비방만이 오가는 선거전의 최대 피해자는 물론 우리 국민이 될 수밖에 없다. 이러한 선거 풍경은 독재정권 종식으로 제도적 민주주의가 정착한 1990년대부터 꾸준히 지적돼왔다. ’92년 3월 24일자 <계명대신문>의 ‘
90년대생 태반은 ‘호황’보다 ‘불황’이라는 말이 더욱 익숙하다. 80년대의 3저호황 시기 ‘한강의 기적’으로 불릴 만큼의 괄목할 성장률을 기록한 우리나라는 IMF 금융위기 사태를 기점으로 ‘경제 우등생’ 한국의 신화를 내려놓게 됐다. 바야흐로 정리해고와 비정규직이 일상화된 시대가 도래했고, 청년실업률은 해마다 증가하고 있다. 한국경제연구원에 따르면 2009년부터 2019년까지 10년 간 우리나라의 청년실업률은 5.0%에서 5.7%로 0.7포인트 악화된 것으로 조사됐고, 통계청은 지난달 우리나라 청년실업률을 8.3%로 발표했다. 그런데 세간에서 흔히 경제호황기로 인식되는 80년대에도 대졸자 취업난은 여전했다는 사실을 아는가? ’89년 11월 28일자 〈계명대신문〉의 ‘취업가능성 희박하다’ 기사는 “매우 치열한 ‘취업전쟁’”을 우려하는 시선이 고스란히 반영돼 있다. 기사는 90년 초 졸업예정자 16만 명과 졸업 후 취업을 준비하는 이른바 ‘취업재수생’의 숫자가 10만 명에 달해 취업에 어려움이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더욱이 지방대 학생은 과거에도 취업에 어려움을 겪은 것으로 보이는데, 이런 현상 속에서 “대학졸업 후의 곧바로 취업은 ‘횡재’, ‘행운’”으로 불
예년과 같았다면 지금은 학생자치기구 선거 유세가 한창일 시기다. 우리학교 특유(?)의 유세 방식이라고 한다면 역시 ‘로봇 인사’와 ‘우렁찬 함성’ 소리다. 로봇 인사야 몇 번 겪어보면 그러려니 한다지만, 양복을 차려입은 무리가 대오를 맞춰 선거 구호를 외치는 행위는 “강의에 방해된다”는 유권자들의 항의를 받을 정도인지라 부정적인 반응이 대다수다. 그런데 매년 지겹도록 경험하는 이 독특한 선거운동이 올해엔 자취를 감췄다. 코로나19의 여파로 선거가 연기되었기 때문이다. 일부 대학에서는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캠퍼스에서 선거운동을 진행한다고 하는데, 썰렁한 캠퍼스에서 지지를 호소하기가 그리 녹록해 보이지는 않는다. 사실 코로나19 팬더믹 이전에도 학생자치기구 선거에 대한 학생들의 관심도는 높지 않았다. 수년째 계속되는 취업난과 대학공동체의 붕괴에 말미암아 투표율은 50%를 겨우 넘기는 수준이고 단독후보가 출마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며 일부 단위에서는 아예 후보자가 없어 보궐선거로 넘어가기 일쑤다. 하지만 과거에는 선거 열기가 꽤나 뜨거웠던 모양이다. ’91년 11월 12일자 〈계명대신문〉의 ‘각 후보자들 막바지 표모으기 작전 주력’ 기사를 보면 당시 총학생회 선거에 나
코로나19는 대학가의 풍경마저 바꿔놓았다. 학생들에게 있어 가장 와닿은 변화는 축제가 아닐까 싶다. 올해엔 코로나19로 인해 축제를 진행하지 못할 가능성이 커 보인다. 총학생회는 여러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고 밝혔지만, 확진자 수가 좀처럼 줄지 않는 상황에서 축제를 기대하기는 어려워보인다. 사실상 무산된 축제의 아쉬움을 뒤로하고, 제1177호 뉴스타임머신은 1985년으로 향한다. 많은 학우들이 모르고 지나가는 사실이지만, 우리학교 축제의 정식명칭은 ‘비사대동제’다. 여기서 대동(大同)이란 ‘크게 하나됨’을 의미한다. 대학 축제에 대동제라는 명칭이 붙은 것은 80년대의 엄혹한 시대상과 무관하지 않다. 당시 대학가에서는 군부 독재에 항의하는 시위를 벌이다가 다치거나 죽는 학생들이 많았는데, 이러한 현실 속에서 마냥 가벼운 마음으로 축제를 즐길 수는 없었을 것이다. 또 당시 대학가를 지배했던 민족주의적인 분위기가 이러한 흐름과 결합해 축제가 곧 하나의 거대한 공동체적 의식으로 자리매김하고 있었다. 또 1985년은 우리학교의 학도호국단(군사정권이 학생들을 통제하기 위해 조직한 단체)이 총학생회로 환원된 시기이기도 하다. 그래서 우리학교 학생들은 그간의 억눌렸던 민주
※ 과거에 발행된 <계명대신문>의 뉴스를 짚어보는 '뉴스 타임머신'이 고정란이 새롭게 연재됩니다. 지난 2016년 대구시가 대구에 거주하는 대학생 708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주거실태 조사를 살펴보면, 원룸에서 생활하는 학생들이 약 30%(212명)로 집계됐다. 이 중 약 54%는 매달 30만원에서 40만원에 이르는 월세를 지불하는 것으로 조사됐으며, 약 94%는 보증금을 제때 돌려받지 못하거나 임대인에게 시설 수리를 요청했음에도 거절당하는 등 대학생 임차인의 권리 침해 문제가 심각한 것으로 드러났다. 과거에는 어땠을까? <계명대신문> (’90년 9월 11일자)에 실린 ‘지방학생 주거환경 실태’ 기사는 90년대 초반 대학생들의 열악한 주거환경을 짐작케 한다. 많은 대학생이 기숙사나 원룸에서 자취하는 현재와는 달리 당시에는 하숙집에서 생활하는 학생들도 적지 않았던 것으로 추정되나, 이 시기를 기점으로 하숙생 수는 점차 감소한 것으로 보인다. 비싼 임대료와 열악한 생활 환경 문제는 현재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다만 그 정도가 과거에는 훨씬 심각했다. 주로 월세로 임차료를 지불하는 지금과 달리 당시에는 사글세(대략 10개월치 월세를 일시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