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연합뉴스) 고승일 특파원 = 미국 워싱턴 D.C. 도심 내셔널 프레스 빌딩에 있는 연합뉴스 미주총국 사무실에 4일 중년의 백인 여성이 단정한 흰색 정장차림으로 찾아왔다.
남들은 해마다 4월이 되면 워싱턴의 벚꽃놀이에 여념이 없을 때 다른 한쪽에서 누가 알아주든, 않든 점퍼차림으로 북한인권을 수 년간 소리 높여 외쳐온 수전 솔티(49) 미국 디펜스포럼 회장이 모처럼 곱사하게 화장을 하고 멋을 내며 사무실을 방문한 것.
이틀 전 제9회 서울 평화상 수상자로 선정된 기쁨이 채 가시지 않은 듯 다소 흥분된 표정의 솔티 회장에게 다시 소감을 물어봤다.
"너무나 영광스럽다. 이게 다 탈북자와 북한인권 운동을 하는 사람들을 대신해 나에게 주신 것으로 생각한다"고 애써 자신의 주변인들에게 공을 돌렸다.
후안 안토니오 사마란치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장, 코피 아난 전 유엔 사무총장, 바츨라프 하벨 전 체코 대통령 등 역대 수상자와 견줄 때 "나는 초라하기까지 하다"며 애써 몸을 낮췄다.
하지만 솔티 회장은 자신이 지난 1996년부터 관심을 갖고 열정을 쏟아온 북한인권 및 탈북자 문제에 대해서는 말을 끊기가 무안할 정도로 많은 얘기를 격정적으로 쏟아냈다.
그는 "이명박 대통령, 조지 부시 대통령, 후진타오 중국 주석 등 국제 지도자들이 6자회담이든 양자회담이든 여러가지 채널을 통해 북한 인권문제가 논의되도록 해야 한다"고 주문하고, 특히 중국정부의 탈북자 송환은 중단돼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솔티 회장은 "물론 중국이 한국이나 미국과 마찬가지로 주권국가로 불법체류자들을 돌려보내는 것을 존중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면서도 "하지만 탈북자들은 식량을 찾아나섰고, 북한으로 송환되면 수용소에 가거나 처형당할게 뻔한데 돌려보내는 것은 안된다고 본다"고 강조했다.
그래서 북한에 거주이전의 자유가 보장돼야 한다는 게 그의 논리다. 먹을게 없고 배가 고프면 다른 곳으로 이동할 수 있어야 하는데 그 같은 기본권이 보장되지 않는 북한 사회에 압력을 가해야 한다는 것이다.
솔티 회장은 "지난 10년간 북한주민 300만명이 기아로 숨졌고, 정치수용소에 20만명이 갇혀있다는 숫자만 봐도 북한이 최악의 인권 사각지대에 있다는 점을 말해준다"면서 "북한인권 문제는 핵문제와 버금가게, 아니 그 이상으로 다뤄져야 할 사안"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미국의 대선시즌을 맞아 그에게 다소 짓궂은 질문을 던져봤다. 민주당 버락 오바마 대선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되면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 등 이른바 `불량국가' 지도자와 만나겠다는 것을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북한 인권을 가장 우선돼야 할 가치로 내세우는 그 답게 주저없이 "오바마 후보가 순진(naive)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솔티 회장은 "오바마 후보가 북한인권 문제를 잘 이해하는 조지프 바이든 부통령 후보를 두고 있어 다행으로 생각한다"고 평가했다.
북한 인권문제로 미 상원 본회의의 대사인준 과정에서 홍역을 치렀던 캐슬린 스티븐스 주한 미대사 내정자에 대한 생각도 물어봤다.
그는 "주한 미 대사에 누가 되든 그 분은 비단 한국 뿐만아니라 북한도 대변하는 역할을 한다고 생각한다"면서 "스티븐스 대사가 한국에 부임해 탈북자들을 만나고, 그들을 위한 교회에 가보는 등 탈북자들에게 손길을 내밀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탈북자 문제와 관련해 중국 대사관 앞에서 자주 시위를 벌이는 바람에 아직 중국을 못가봤다는 솔티 회장. 이번에 서울평화상 시상식을 위해 서울에 가면 황장엽 전 북한 노동당 비서를 만나서 "언젠가 우리 함께 중국 한번 가보자"고 말한 참이란다.
솔티 회장은 유럽안보전문가인 남편 고어와 세 아들을 두고 있다. "남편은 한국에 한 번도 간 적이 없지만 워싱턴에서 한국음식을 많이 먹어봐서 한국 방문 기대에 부풀어 있다"고 소개했다. 또 미 해병사관학교에 다니는 20살난 장남이 해외로 승선실습을 나갔다고 자랑스러워 했다.
솔티 회장은 인터뷰를 마치고 헤어지기에 앞서 마치 기도문과 같은 메모를 자필 사인과 함께 연합뉴스에 남겼다.
"모든 한국인이 자유와 민주주의, 인권을 향유하고, 남한의 밝은 빛이 북한을 비추어 어둠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하느님 도와주세요."
이어 솔티 회장은 연합뉴스 특파원들과 기념 사진을 찍은 뒤 밝게 웃으면서 서울평화상을 받기 위해 워싱턴을 떠나기 전에 다시 한번 만나자고 재회를 약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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