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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건 없는 사랑

라 렌토(La lenteur),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란 책으로 세상에 널리 알려진 밀란 쿤데라의 소설 제목입니다.

밀란 쿤데라는 체코 출신 작가지만, 그의 대표작인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나 ‘라 렌토’ 같은 책들은 자신의 모국어가 아닌 프랑스어로 써서 유명해진 책들입니다. 이 책은 우리말로 ‘느림’이란 제목으로 번역되었는데, 거기서 밀란 쿤데라는 이런 말을 하고 있습니다.

“조건 없이 사랑받는다는 것은 진정한 사랑의 증거다. 만약 누군가가 내게, 네가 똑똑하기 때문에, 또 네가 선물을 사주기 때문에, 네가 외도를 하지 않기 때문에, 네가 설거지를 해주기 때문에 사랑한다, 라고 말한다면 나는 실망한다. 그런 사랑은 뭔가 이해관계에 의한 것이다. 그런 식의 사랑이 아닌 예컨대 이런 말들은 얼마나 듣기가 좋은가. ‘비록 네가 똑똑하지도, 정직하지도 않고, 비록 네가 거짓말쟁이고, 이기적이라도 난 널 너무나 사랑해”.

여러분은 소설에 나온 밀란 쿤데라의 글처럼 아무런 전제 조건 없이 누군가에게 사랑받거나 또 사랑할 수 있습니까? 네가 좀 못 생겼어도, 네가 앞날이 그다지 창창하지 않아도, 네가 대학생이 아니라도, 네가 나보다 나이가 좀 많아도, 사랑할 수 있다고 말할 수 있냐는 말입니다.

똑같은 질문을 누가 제게 한다면, 저는 이렇게 대답하겠습니다. ‘아니군요. 난 아직 아무런 전제 조건 없는 사랑을 해 보지도 못했고, 앞으로도 하지 못할 것 같습니다’

물론 앞으로도 못 할 것이란 말은 제 나이 때문입니다. 이제 더 이상 여자와의 사랑은 폐업해야 될 나이라고 스스로 생각하고 있으니까요. 그러나 이 글을 읽는 젊은이 여러분이야 어디 그렇습니까. 한창 사랑할 나이지요.

꼭 이성간의 사랑이 아니더라도 아무런 전제 조건 없이 사랑을 주는 일은 고귀한 것입니다. 사랑이 조건에 의해 더하고 덜해지는 현상이 극심해진 사회는 부모와 자식 간의 천륜까지 끊어놓는, 인간이 금수같이 되는 사회이며,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대가 바로 그런 금수의 시대입니다.

그러나 짐승을 욕하진 마십시오. 짐승 입장에서 보면 억울한 일이니까요. 짐승 입장에서 보면 인간만큼 나쁜 놈들이 어디 있겠습니까. 모르긴 해도 아무런 전제 조건 없이 상대를 사랑할 수 있다는 점에선 짐승들이 인간보다 앞서 있지 않을까요. 몸짱도 얼짱도 구별하지 않는 동물 세계는 자동차를 타고 다니는 인간 세계보다 조금 느릴 뿐 평등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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