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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이 되고 싶은 너에게

흔히 그러하듯이, 갑갑한 청춘이었다. 무엇이 불안한 내 정신을 풀어줄까? 스무 살 무렵, 마치 날벌레처럼 흐르다가 문득 집어들었던 책,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꿈의 해석>.

‘정신분석’이라는 말을 만들어내면서, 지금까지도 챔피언의 자리에 올라 있는 사람이 프로이트다. 그는 대단한 일을 해낸 이들 중에서 흔치 않게 어려서부터 줄곧 상위권에서 놀던 인물이다. 유대인이었던 아버지는 “내 아들의 발가락이 내 머리보다 영리하다”고 말할 정도였다.

프로이트는 책을 많이 읽었다. 법학을 전공하기로 한 그는 괴테의 <자연론>을 읽으면서 마음을 바꾸었다. 자연을 가리켜 ‘아이를 키우는 어머니’로 비유한 그 위대한 송가가 그를 자연과학도로 만든 셈이었다. 그는 넉넉한 독서량을 바탕으로 곧잘 문학작품 같은 편지를 주위 사람들에게 보내곤 했는데, 이것은 후일 방대한 저작을 이루는 밑거름이 될 수 있었다.

1896년, 40세가 된 프로이트는 스스로 ‘최고로 중요하고 독창적인 저서’라고 표현한 책을 쓰기 시작했다.

“이 작품은 내가 운 좋게 발견한 것들 중에서 가장 가치 있는 보물을 담게 될 것이다.”

자신이 그렇게 걸작이라고 장담했던 책의 제목은 <꿈의 해석>이었다. 이 책은 4년 뒤, 새로운 세기가 막 시작되던 1900년에 출간되었다. 그는 <꿈의 해석>이 독자들에게 큰 충격을 안겨 줄 것이라 기대했다. 그러나 그의 예상은 빗나갔다.

“의미 있는 책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기사는 한 줄도 보이지 않아.”

프로이트는 남은 생애를 무명 인사로 보내야 할 것 같은 위기감마저 느꼈다. 그 책의 초판본은 2년 동안 겨우 351부가 팔렸으며, 출판사는 이후 그마저 절판시켜 버렸던 것이다.

“아마 명백한 사실만 발견하는 게 내 운명인 모양이야. 사실 아이들이 성적인 감정을 갖는다는 것은 보모들도 알고 있겠지. 잠 속에서 꾸는 꿈은 소원 성취의 욕망을 뜻한다는 것도 다 알고 있을 거야.”

하지만 당시의 그런 실망감과는 달리 <꿈의 해석>은 오늘날 최고의 저서 가운데 하나로 꼽히게 되었으며, 그에 걸맞은 프로이트의 위상은 좀처럼 떨어지지 않을 것이라고들 한다.

지금, 나의 미래가 아무런 증거도 보여주지 않는다고 불안해 하는가? 그러나 흔들리지 말아라. 누가 아는가? 만일 내가 빛나는 열정을 충분히 쏟아붓는다면, 그 창조성의 절정이 나를 황금보다도 더 반짝이는 별로 이끌어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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