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일락의 우리말 이름은 수수꽃다리이다. 30여 년 전 대명동 캠퍼스에는 봄이 되면 수수꽃다리 향기가 온 교정을 뒤덮었다. 입학한 해 사월 어느 날, 서울 출신 영문과 여학생이 친구 두어 명과 함께 지나가는 나를 불러 세웠다. 수수꽃다리 잎을 씹으면 그 이빨 자국으로 사랑의 점을 쳐 주겠다는 것이다. 순진한 나는 구멍이 나도록 그걸 힘껏 씹었다. 그 쓰디쓴 맛이라니? 깔깔거리며 쏟아지는 웃음소리. 그 쓴맛이 바로 첫사랑의 맛이라는 거였다. 쓴맛 속에 감춰진 갓 스물 푸른 나이의 풋풋함이 거기에 배여 있었다.
대명동 캠퍼스를 장식했던 수수꽃다리를 성서 캠퍼스에서는 사회관 옆 도서관 가는 길목에서 볼 수 있다. 이른바 수수꽃다리 거리이다. 지금은 누구도 순진하게 잎을 따서 깨물지는 않으리라.
살펴보면 우리 캠퍼스에는 유명한 가로수길이 몇 군데 있다. 박물관 옆 메타세콰이어 거리가 대표적인데, 가을 되면 정문을 노랗게 장식하는 은행나무 거리와 체육관 뒤의 느티나무 거리, 노천강당 뒤 편 중국단풍 거리도 우리의 눈길을 빼앗기에 충분하다. 관심이 없어 눈길 못 미치는 곳에서 나무들은 우리에게 추억거리를 장만하도록 권하고 있는 것이다.
얼마 전 올라가 본 대명동 캠퍼스에는 수수꽃다리가 고목이 되어 아직도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그 시절에 만났던 여학생과 친구들과 선생님들은 자취조차 없는데 나무들은 그 때 그 자리에서 한 발짝도 움직이질 않았다. 생각해보면 우리 학교의 주인은 이 나무들이 아닌가. 사람은 기껏 머물러야 사십 년인데 나무는 백년이 넘도록 그 자리를 지킨다.
그런데 한 가지 정말 궁금한 것은, 가지나 줄기는커녕 뿌리까지 파헤쳐도 꽃잎 한 장 안 나오는데 어찌하여 해마다 저 수수꽃다리는 그토록 진한 향기 꽃잎을 매다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