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수들은 여름·겨울방학 기간을 이용해 여러 가지 목적으로 교수세미나를 가진다. 대개는 학교를 떠나 가까이는 경주나 부산, 멀리는 강원도나 제주도까지 2-3일 정도의 일정을 잡는다. 주로 두 세개 주제를 발표하고 나머지는 자유롭게 쉴 수 있도록 일정이 짜진다. 물론 회의는 첫날 끝나고 이튿날은 아침 식사 후에 대구로 돌아오는 것이 상례였다. 그렇다면 왜 먼 곳까지 가서 회의를 할까? 이것이 궁금하다.
나는 학교의 부서장이나 바깥의 학술 및 사회단체장을 맡아 하루 밤을 보내는 회의 일정을 짜면 꼭 그 지역의 역사와 문화를 이해할 수 있는 강연과 답사프로그램을 넣는다. 연속되는 회의로 짜증지수가 높아질 무렵 이런 강연을 하나 들으면 누가 마다하겠는가? 회의 둘째 날엔 강연과 연관된 답사를 한다면 금상첨화다. 이런 형식은 회의를 ‘해볼 만한 것’으로 만들고 오랫동안
기억나게 할 뿐만 아니라 우리문화를 폭넓게 이해하는 데도 도움을 준다.
몇 년 전 내가 소속된 사회과학연구소의 경주 세미나에 연구소장의 부탁을 받고 이런 형식의 프로그램을 짜준 일이 있다. 참여한 교수들이 무지하게 좋아했었다. 덕분에 나는 연속해서 세 번이나 이런 프로그램을 준비하는 수고로움을 감수해야 했다. 세 가지 주제는 ‘경주의 탑’, ‘차명인 지허스님’ 그리고 ‘문경의 도자기’였다.
조선 중기 선조, 인조대의 문신이며 한문학의 태두로 일컬어지는 신흠(申欽)은 인생을 살아가는 데 세 가지 낙이 있다고 했다. 하나는 문을 닫아 걸고 보고 싶은 책을 읽는 것이고, 둘째는 문을 열고 좋은 벗을 맞아 대화를 나누는 것이며, 셋째는 문밖으로 나가 자연을 벗 삼아 즐기는 것이라고 했다.
나는 책 읽는 일은 좀 게으른 편이지만 친구를 불러 가끔씩 차회를 가진다. 틈나는 대로 여행을 하면서 우리 산하를 느끼며 역사와 문화를 읽는다. 더러 그 지역의 문화 예술인들을 만나 눈요기와 귀동냥하는 것도 즐긴다. 신흠의 삼락 중 이락은 가진 셈이다.
나는 학문도 생활도 일도 모두 즐겁고 재미있게 할 수 있도록 노력한다. 이것을 사람들은 여유라고 하고, 특별한 사람들만 즐기는 것쯤으로 생각한다.
여유는 내 스스로 만드는 것이 아닐까? 신흠은 자연을 벗 삼기 위해 일부러 문을 나서는데 우리는 자연 속에 던져졌어도 자연을 느끼지 못한다. 우리대학의 각종 세미나도 이렇게 여유와 멋을 부린다면 우리 대학사회가 얼마나 밝아지고 멋스러워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