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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명 생태공원을 꿈꾸며


지난 겨울 도쿄에 들렀을 때 진보초(神保町) 고서점가를 가다보니 전에 없던 초고층건물이 눈에 들어 왔다. 알고 보니 메이지(明治)대학의 정문을 겸한 건물이었는데, 안에는 학생들이 통로계단이나 로비에 잔뜩 모여 있고, 사무실, 상점들로 북적대어 무슨 회사 같은 인상을 받았다. ‘참, 돈도 많구나! 도심이라 고층화할 수밖에 없겠지’ 하면서도 어쩐지 ‘고층캠퍼스’ 속의 학생들이 가여운 생각이 들었다.

계절의 여왕 5월이다! 푸른 물감을 뿌린 듯한 신록의 향연이 펼쳐지는 넓은 우리 캠퍼스가 새삼 고마운 계절이다. 잠시 하던 일을 멈추고 봄볕에 일렁이는 신록들을 바라보자. ‘무릇, 봄에 만물이 나고, 여름에 자라, 가을에 거두고, 겨울에 갈무리한다. 이것이 하늘의 큰 이치다’(史記)라고 했듯이 초목이 자라고 열매 맺고 지는 원형이정(元亨利貞)의 이치는 농경민족인 우리에게 ‘순리’와 ‘생명’을 말해준다.

캠퍼스는 살아있는 강의실이다. 벚꽃이 흐드러지면 학생들과 문학 산책을 하거나 서투른 내레이션을 넣어 비디오에 담아 수업에서 쓰기도 하고, 영암관 뒤뜰 연보랏빛 등꽃송이가 늘어질 때면 소설 ‘겐지모노가타리’의 몽환적인 미학을 이야기한다. 일본발 화투짝의 ‘4월 흑싸리’는 싸리가 아니라 ‘등꽃’을 형상화한 것이고 ‘열’짜리에 그려진 새가 이맘때 쯤 우는 두견새라는 얘기도 곁들인다. 7월 홍싸리는 진짜 싸리꽃을 형상화한 것인데 가을이면 한학촌 옆 오솔길에 피는 것을 아는지? 예비군훈련장 가는 중턱에는 ‘향수’를 말해주는 찔레꽃도 가득하다.

‘자세히 보니 / 냉이꽃 피어있는 / 울타리로다’(바쇼), ‘짧은 밤이여 / 송충이 잔털위의 / 이슬방울들’(부송), ‘목욕물을 / 버릴 곳이 없네 / 풀벌레소리’(오니쓰라)는 미세한 생명들에 대한 감동을 읊은 하이쿠이다. 물(物)에 파고들어 좀더 섬세하게 느껴보자.

앞으로 장맛비에 어울리는 수국도 심고, 풀이 적어 산의 피부가 드러난 궁산에는 저절로 자라는 마타리, 오이풀, 도라지 같은 풀꽃도 심으면 좋겠다. 한학촌에는 여름밤 반딧불이와 풀벌레들을 흩어 놓으면 어떨까? 온 캠퍼스가 우리의 오감을 열어주는 ‘생태공원’이 될 수도 있겠다는 꿈을 꿔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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