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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캄캄한 영화관에서 극중 이야기에 빠져 있다가 밖으로 나왔을 때 방향이 온통 거꾸로 보이고 시간을 분간하기 어려웠던 기억이 있다. ‘지금’ ‘여기’ 눈앞에 펼쳐지는 일에 정신을 팔면 내가 어디에 있는지 때론 내가 누군지조차 잊어버릴 수 있다.

해리포터, 반지의 제왕, 캐리비언의 해적 시리즈와 같이 일부러 시공간을 무시해 버리는 판타지가 넘쳐나고, ‘클릭!’ 만으로 다른 세계로 순간적으로 이동하는 요즘은 내가 있는 곳을 모르고 어떻게 관계를 맺고 어디로 가야 하는지 무척 헷갈린다. 불교적으로 보면 지금 내 앞의 모든 현상은 환영일 뿐이고 ‘나’라고 생각하는 것도 실체가 아닌 ‘인연’의 화합물일 뿐이니 오직
‘관계’와 ‘흐름’을 아는 것이 삶의 지혜라고 볼 수도 있다.

생각해 보면 새로운 세계를 연 사람들의 손에는 언제나 지도와 나침반이 들려 있었다. 유럽의 땅 끝이라는 까보다로까에 들렀을 때 포르투갈인들은 거친 대서양을 바라보며 여기가 어딘가라는 궁금증에서 세계로 세계로 나아갔음이 실감이 났다. 우리 학생들도 지도도 열심히 들여다보고 나를 있게 한 흘러온 시간에 대해서도 좀더 진지하게 생각해보자.

국제화의 선두를 달리는 우리 대학에 지구본이나 세계지도, 각국 지도, 하다못해 대구지도도 눈에 띄지 않는 것은 무척 아쉬운 일인 것 같다. 지구본과 지도는 맘만 먹으면 멋진 인테리어 효과와 실용성을 겸할 수 있을 텐데 말이다. 컴퓨터로 지명을 클릭하는 것과 전체를 조망하며 상상의 나래를 펴는 것과는 전혀 의미가 다르다. 대구 지도를 들고 성주 방향으로 조금만 들어가 봐도 한개마을, 육신사, 성밖숲, 회연서원 등의 고즈넉한 시간의 흔적들이 있어서 흘러온 시간 속의 나를 발견할 수 있다. 뒷산인 궁산에 올라가 대구를 둘러싼 산들과 강, 우리 대학을 내려다보면 우주속의 나를 느낄 수도 있다.

유학, 단기연수, 인턴십 등, 해외로 해외로 러시현상이 일고 있지만 내가 가는 곳의 방향과 그 곳의 역사에 대해 호기심이 없는 학생들이 안타깝다. 많은 비용을 들여 다니는데 한낱 점과 점을 잇는 ‘순간이동’, ‘촬영 세트장’만이 되어서는 아무 의미가 없다.

지도와 시각표를 들고 미지의 공간과 시간 속으로 깊숙이 파고들어 ‘낯설음’과 ‘통함’을 체험하는 것이 바로 나를 발견하는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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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칼럼] 가해자들의 도피처, ‘심신미약’ 요즘 하루가 멀다 하고 뉴스에선 잔인한 사건들이 보도된다. 서울 강서구 한 피시방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던 청년이 잔인하게 살해됐다는 보도, 오피스텔 관리사무소에서 경비원 2명을 잔혹하게 살해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20대 남성, 2011년 같은 회사에 다니던 여성의 몸속에 손을 넣어 숨지게 했지만 상해치사로 종결된 사건 등이 그러하다. 이 잔혹한 사건들의 처리과정에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바로 가해자가 ‘심신미약’을 주장했다는 것이다. 실제 경비원 2명을 살해한 20대 남성은 검찰이 사형을 구형했지만 심신미약 주장이 인정돼 일부 감형되었고, 같은 회사에 다니던 여성을 살해한 가해자는 피해자에 입힌 상해 정도가 심각하지만 술에 취해 심신미약이었다는 이유로 4년형을 받았다. 한 사람의 목숨을 앗아간 범죄임에도 불구하고 심신미약을 이유로 처벌은 가벼운 수준에 그쳤다. 잔혹한 살인을 했음에도 ‘심신미약’으로 감형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형법 제10조를 살펴보면 ‘심신장애로 인해 사물을 변별할 능력이 없거나 의사를 결정할 능력이 없는 자의 행위는 벌을 하지 않거나 형을 감경한다.’고 명시돼 있다. 여기서 심신장애란 인지·지능·언어·정서·행위 등의 심신기능 면에 장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