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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룡골이야기] 넬리 딕 아담스

그녀는 죽지 않고 잠들어 있다


우리대학의 이름은 미 북장로교 선교사들이 세운 계성학교의 계(啓)자와 신명학교의 명(明)자를 합쳐 만든 합성어다. 오늘날 우리대학이 눈부시게 발전하게 된 원동력이랄까 창학정신은 이미 1백여년전에 씨 뿌려졌던 것이다.


1978년 계명기독학원과 동산병원 유지 재단은 이러한 태생적 역사적 사명을 재확인하고 양기관이 서로 병합하게 됐으므로 명실 공히 그리스도 복음을 통한 선교 사명이 결실을 맺었다고 볼 수 있다. 1895년 전후해 대구 읍성에 도착한 선교사 배위량(Baird)은 현재 대구시 남성로 약전골목 안에 위치한 구 대구 제일교회 땅에 있던 한옥 몇채를 사들였다. 1896년 가을 배위량 선교사가 서울로 발령을 받자 그는 그의 처남인 안의와(Games E. Adams 1867-1929)에게 모든 것을 인계해 줬다. 안의와는 곧 교육(계성·신명·희도), 의료(동산병원), 선교(제일교회)의 사역을 시작했다. 1934년 로즈(Rhodes)의 초기 한국 장로교 선교 보고서에 의하면 ‘안의와 선교사 부처는 1897년 가을 두 아들을 데리고 대구에 왔다’라고 쓰고 있다. 로즈의 기록과는 달리 안의와 선교사가 큰 아들(당시 10살) 안두화만 데리고 대구에 왔다는 기록도 있다. 일반적으로 아버지 아담스(안의와)와 아들 아담스(안두화) 간에 혼돈이 있기도 하다. 다시 정리해보면 초창기 대구 선교지부(station)를 만든 분은 아버지 아담스이고 아들 아담스는 우리대학 설립자 3인 가운데 한분이다. 우리대학 곳곳에서 아담스홀, 아담스채플 등을 만날 수 있는 것은 모두 이분들의 업적 때문이다.


안의와 선교사의 부인 넬리 딕 아담스(Nellie Dick Adams, 1866-1909)은 1909년 10월 31일 4번째 자녀 출산 후유증으로 43세를 일기로 한창 젊은 나이에 먼 이국땅에서 순교했다. 그녀의 묘지는 현재 동산의료원 선교박물관 경내 잔디밭에 안장되어 있다. 남달리 한국을 사랑했던 그녀는 선교기지내에 유년 주일 학교, 부인 주일학교, 부인 사경회 등을 운영하며 남편의 선교사역을 도왔다. ‘넬리 딕’의 장례식은 한국여성들의 애도 물결로 줄을 이었다고 한다. ‘넬리 딕’의 묘비명에는 ‘그녀는 죽지 않고 잠들어 있다(She Is Not Dead But Sleepeth)’로 쓰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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