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나푸르나에서 엉뚱하게 모교 생각을 했다. 안나푸르나의 4월은 여기저기 피어나는 꽃들로 황홀하다. 히말라야가 있는 나라 네팔의 국화(國花)인 라리구라스 군락은 멀리서 보면 마치 동백 숲을 보는 것 같다. 만년설을 배경으로 핏빛으로 하강하는 라리구라스의 낙화.
이 봄, 백련사 뒤편 동백 숲을 가 보았는가? 꽃이 떨어져 눈부신 그 바닥과 선홍의 라리구라스가 깔린 안나푸르나의 바닥은 황홀함 하나로 유사하다.
히말라야의 오지(奧地)에서 뜻밖에 30년 전 교정에서 스쳤던 이름 하나를 발견하고 가볍게 흥분된 적 있다. 지금까지 서로가 서로를 모르는 사이이고, 이름 또한 내게 선명히 각인되어 있던 것이 아니라 책을 읽다 확인한 것이지만.
몇 해쯤 선배로 기억되는 그가 계명대산악부였다는 것도 책을 읽어가는 동안 알게 된 사실이다. 30년을 잊고 있던 모교의 산악부에 늦게 관심을 두게 된 건 에베레스트에 시신을 묻은 박무택, 백준호, 장민, 세 분의 계명대학교 에베레스트원정대의 그 극적인 드라마를 접하고 난 뒤부터였다.
그런 계명대산악부 출신 중 한 사람인 그 선배의 인생스토리를 여행 중에 가져간 책을 통해 안나푸르나에서 읽게 될 줄이야.
이번에는 히말라야가 아니라 해발 6천9백99미터, 남미의 최고봉 아콩카쿠와(아콩카과)에서였다. 사업차 갔던 남미에서 아콩카쿠와를 보는 순간 산쟁이 기질이 발동한 그는 단신으로 정상에 서게 되는데, 문제는 하산 길에서 발생한다. 조난당한 채 물 한 모금 없이 일주일을 헤매는 동안 개미 세 마리를 발견하고 그것들을 하루에 한 마리씩 먹으며 연명하는 등 조난에 대한 그의 드라마틱한 이야기는 오랜 세월이 지난 뒤에도 그가 내 기억 속에 지워지지 않고 남아있던 이유에 단서를 제공하는 것이기도 했다.
산쟁이 중에서도 좀 특별한 산쟁이 같은 인물 손칠규. 30년전 교정에서 스치던 인연일 뿐 그 세월이 지나도록 한번도 만난 적 없는 그가 이렇게 내 글쓰기의 대상이 된 것 또한 계명대가 맺어준 동문수학의 인연 때문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