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군. 강의가 끝나자마자 가방을 챙겨 부리나케 달려나가는 자네 뒷모습을 보며 이 글을 써야겠다고 마음먹었네. 원래 이 지면은 소중한 의미를 담고 있지만 쉽게 지나치게 되는 학교의 이모저모를 엿보기 위해 마련된 것이라네. 대개 유형의 사물이 대상이 되어 왔지. 하지만 오늘은 성격을 달리하여 이야기를 풀어나가고자 한다네. 가만히 살펴보면 자네처럼 강의 시간에만 잠시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학생들이 한두 명이 아니더군. 옛날과 같은 캠퍼스의 낭만은 이제 사라진 것 같아. 다들 너무 바쁘게 살고 있다는 생각이야. 전공학과의 개념을 희미하게 만드는 제도 변화의 산물이기도 하고. 그런데 자네, 학생들이 급한 물살처럼 빠져나간 빈 강의실을 떠올려본 적 있는가. 자네들이 벗어두고 간 갈급한 마음들이 무늬를 이루어 적요함을 이겨내는 모습을 말이야. 그게 금요일 오후 4시의 풍경이라네. 주일 단위로 돌아가는 대학사회에서 금요일 오후는 각별한 의미를 지니지. 오후 4시는 만상이 분주함에서 벗어나 제자리로 돌아가는 일몰의 길목. 자네들이 바쁘게 빠져나간 교정에는 온갖 소음에서 풀려난 낮 소쩍새의 울음과 푸른 풀벌레소리, 담쟁이덩굴을 흔드는 바람소리가 주인이 되어 빈 자리를 채운다네
얼마 전 늦은 밤 연구실에 앉아 있다가 강물소리를 들었다. 성서 캠퍼스에 웬 강물소리라니? 그렇다. 캠퍼스 뒷산을 넘으면 바로 금호강이다. 지척에 있으면서도 눈앞에 보이지 않아 그 존재를 크게 의식하지 못한 탓이다. 조감도를 보면 금호강이 우리 캠퍼스를 바싹 감싸 안고 흐르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금호강이 어떤 강인가. 대구는 금호강과 신천의 선물이라는 말이 있다. 이 두 물줄기가 일궈낸 몽리면적이 대구라는 큰 삶터를 만들어낸 것이다. 금호강은 낙동강의 제1지류로서 남한의 10대 강에 속한다. 길이로만 치자면 낙동강, 한강, 금강, 임진강, 섬진강 다음이다. 영천 보현산 자락에서 발원한 강은 영천, 하양을 거쳐 성서 강창 나루터에서 낙동강과 합류하여 장장 300여 리를 마무리한다. 이 지점에 우리 캠퍼스가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그 의미가 얼마나 심대한가. 금호강(琴湖江)은 이름 그대로 아름다운 강이다. 강변의 갈대가 스치는 소리가 거문고를 연주하는 소리처럼 들린다고 해서 붙인 이름이라고 한다. 혹자는 ‘금’자가 단군신화의 곰이 살았던 굴의 상징으로 어머니, 생명의 탯줄과 같은 강이라는 뜻을 품고 있다고 풀이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어머니인 금호강
라일락의 우리말 이름은 수수꽃다리이다. 30여 년 전 대명동 캠퍼스에는 봄이 되면 수수꽃다리 향기가 온 교정을 뒤덮었다. 입학한 해 사월 어느 날, 서울 출신 영문과 여학생이 친구 두어 명과 함께 지나가는 나를 불러 세웠다. 수수꽃다리 잎을 씹으면 그 이빨 자국으로 사랑의 점을 쳐 주겠다는 것이다. 순진한 나는 구멍이 나도록 그걸 힘껏 씹었다. 그 쓰디쓴 맛이라니? 깔깔거리며 쏟아지는 웃음소리. 그 쓴맛이 바로 첫사랑의 맛이라는 거였다. 쓴맛 속에 감춰진 갓 스물 푸른 나이의 풋풋함이 거기에 배여 있었다. 대명동 캠퍼스를 장식했던 수수꽃다리를 성서 캠퍼스에서는 사회관 옆 도서관 가는 길목에서 볼 수 있다. 이른바 수수꽃다리 거리이다. 지금은 누구도 순진하게 잎을 따서 깨물지는 않으리라. 살펴보면 우리 캠퍼스에는 유명한 가로수길이 몇 군데 있다. 박물관 옆 메타세콰이어 거리가 대표적인데, 가을 되면 정문을 노랗게 장식하는 은행나무 거리와 체육관 뒤의 느티나무 거리, 노천강당 뒤 편 중국단풍 거리도 우리의 눈길을 빼앗기에 충분하다. 관심이 없어 눈길 못 미치는 곳에서 나무들은 우리에게 추억거리를 장만하도록 권하고 있는 것이다. 얼마 전 올라가 본 대명동 캠퍼스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