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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필품값 이상한 오름세..당국 담합 조사

(서울=연합뉴스) 윤근영 최윤정 최현석 홍정규 기자 = 올해 들어 밀가루 등 원재료의 수입물가가 큰 폭으로 내렸지만, 라면과 빵 등 가공제품의 소비자물가는 오히려 올랐다.

기업들은 수입물가 상승 때 가격을 인상하지 못한 점 등을 들어 즉각적인 소비자가격 인하가 어렵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전문가들과 소비자들은 기업이 의도적으로 수입물가 하락을 외면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당국은 가격 인상을 주도하는 생필품의 투명한 가격 공개를 추진하는 한편 품목에 따라 담합여부에 대한 단속에 나섰다.

◇ 수입가격 하락에도 소비자가격 요지부동
26일 한국은행과 통계청에 따르면 올해 1∼9월 밀의 수입가격은 작년 같은 기간보다 평균 27.7% 떨어졌지만, 소비자물가에서 밀가루는 같은 기간에 7.9% 떨어지는데 그쳤다. 식빵을 비롯한 밀가루 관련 제품과 외식비는 오히려 상승했다.

기업들은 가격 하락 전에 수입한 원료로 제품을 생산하고 있고 과거 원재료 가격 상승 때 제품 가격을 높이지 못했기 때문에 수입가격이 하락하더라도 즉시 제품 가격을 인하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환율이 높았던 시기에 선물 거래 등을 통해 원재료 가격을 고정한 점도 가격 인하가 어려운 근거로 들고 있다.

식품업체 관계자는 "제품 가격에 영향을 미치는 밀가루와 환율, 유가, 농수산물 등 가격이 그동안 많이 올랐으며 원가 인상 압박이 1년간 지속됐다"며 "최근에 조금 내린 수준이기 때문에 가격을 인하할만한 여력은 없다"고 말했다.

원유 수입가격도 올들어 평균 31%나 급락했으나 휘발유.경유 등 석유제품들은 그만큼 떨어지지 않았다.

정유업체 관계자는 "원유 가격이 아닌 싱가포르 시장의 국제 휘발유 가격과 원.달러 환율을 고려해서 휘발유 가격을 책정하고 있다"며 "국제 가격이 하락할 때 국내 가격을 내리려면 국제 가격이 오를 때도 국내 가격을 올려야 하지만 수입업체들이 수입품을 싸게 들여와 국내에서 팔기 때문에 여의치 않은 실정"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그러나 기업이 수익성 등을 고려해 가격 인하에 소극적인 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LG경제연구원 강종구 책임연구원은 "환율 하락으로 수입물가가 떨어지고 있지만, 기업들이 바로 반영하지는 않는다"며 "가격이 오르더라도 사먹을 수밖에 없는 필수품에 가까울수록 가격을 쉽게 내리지 않는 성향이 있다"고 말했다.

독점적 지위를 가진 기업들이 담합 등을 통해 가격 하락에 제동을 걸고 있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민주당 조경태 의원은 "정유사들은 국제 석유제품 가격과 국내 제품 간 가격 차이를 얘기하면 국제 유가 상승 핑계를 대다가 국제 유가와 국내 제품 간 가격 차이를 얘기하면 국제 석유제품가격 핑계를 댄다"며 "원가 공개를 못하기 때문에 핑계만 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정유업계는 최근 국제 유가가 상승 반전하자 휘발유 값을 인상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서민 경제에 부담 가중
상당수 품목에서 수입물가는 큰 폭으로 하락했지만, 소비자물가가 오히려 상승한 것은 소비자들에게 적지 않은 부담이다.

한은과 통계청의 자료를 비교해 보면 올 들어 지난 9월까지 이런 현상이 가장 두드러졌던 품목은 수입산 밀을 가공한 밀가루와 이를 다시 가공한 면류 및 제과류다. 자장면, 짬뽕, 칼국수 등 분식 가격도 일제히 올랐다.

종이의 원료인 펄프 역시 전량 수입하는데, 펄프 수입가격은 13년 만에 가장 많이 내린 데 비해 종이값이 큰 비중을 차지하는 교과서, 사전, 잡지 등은 오히려 가격이 올랐다.

수입 쇠고기의 경우 수입물가 통계에서는 0.4% 내렸지만, 소비자물가 통계에서는 오히려 3.2% 올랐다.

LG경제연구원 강 연구원은 "이들 품목에 대한 소비비중이 높은 서민층의 경제 고통이 심화되는 셈"이라고 말했다.

수입물가와 소비자물가가 이처럼 `탈동조 현상'을 보이는 품목들은 대부분 생활필수품 성격을 띤다. 그래서 피부로 느끼는 물가 부담은 당국이 지표로 파악하는 것보다 훨씬 무거울 수밖에 없다.

또, 필수 소비재의 가격이 오르면 대다수 서민 가계의 소비 여력이 줄어 내수 회복이 어려워진다. 올해 상반기 소득계층별 식료품 및 비주류음료 지출 비중은 하위 20%인 1분위 계층이 18.1%인 반면 상위 20%인 5분위 계층은 10.9%로 나타났다.

한은은 최근 `우리나라 가계소비의 특징' 자료에서 "계층별 소비 불균형이 심해지고 있다"며 "생계형 필수 소비재를 중심으로 물가를 안정시켜 구매력을 늘려야 내수가 활성화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가격 공개.담합 근절 필요"
해결방안은 가격을 투명하게 공개하고 담합 행위를 근절하는 것이다.

정부는 소비자원을 통해 내년부터 80개 생필품의 가격을 공개할 계획이다. 소비자원은 전국 7대 광역 대도시에서 백화점, 대형마트, 편의점 등에서 가격을 조사해 홈페이지에 공지할 예정이다.

공정위는 LPG, 우유, 빵, 소주, 휴대전화, 영화관람료, 주유소 등의 담합 행위에 대해 조사 중이며 이 중 LPG는 담합한 것으로 판단해 조만간 과징금 부과 안을 상정할 예정이다.

식품업체들이 용량을 줄여 사실상 가격인상을 도모한 행위에 대해서도 조사하고 있으며 연말까지 마무리할 계획이다.

민주당 조 의원은 "정유사의 독과점적인 시장 구조를 완화하기는 힘들겠지만, 담합은 철저히 조사해서 처벌해야 한다"며 "공정위가 휘발유도 세심하게 LPG처럼 조사해야 한다"고 말했다.

업계 담합 행위는 상당히 만연한 것이어서 지난 8월 롯데칠성 등 5개 음료회사가 과징금 255억 원을 부과받았고 그 밖에 설탕, 밀가루, 세제, 석유화학 등에서 공정위 철퇴를 맞지 않은 곳이 드물 정도다.

삼성경제연구소 이은미 수석연구원은 "물가는 하방 경직성이 있어서 한 번 오르면 내리기가 쉽지 않고 유통 구조에도 문제가 있을 것"이라며 "구조적 문제를 집어내야 한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업체들의 원가 절감 노력도 병행돼야 한다.

한국수입업협회 관계자는 "수입선을 다변화하고, 대체 시장을 확보해야 하지만 운송거리가 멀거나 자원 분포가 한정돼 있는 등의 문제 때문에 생각만큼 쉽지는 않다"고 말했다.

harriso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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