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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통수] 한씨네와 중씨네 이야기

그리고 못믿을 길용이 삼촌

옛날, 먼 옛날.. ‘동북아’마을엔 한씨네 가족과 중씨네 가족이 살고 있었답니다.

한씨네는 한때 잘나가던 부잣집이었답니다. ‘고구려’밭, ‘발해’과수원, ‘간도’농장 등 가진 땅도 참 많았었죠. 하지만 어쩌다보니 가진 땅 다 잃고 그나마 남은 집도 가정불화 때문에 둘로 갈라졌습니다.

마을사람들은 갈라진 두 집을 “남한이네”랑 “북한이네”로 나누어 불렀답니다. 그리고 한씨네가 화해를 하면 예전처럼 부자가 될 것이라고 입을 모아 말하곤 했습니다.

한편 중씨 아저씨는 내심 한씨네가 화해하는 것이 무서웠답니다. 한씨네 식구들이 잃어버린 땅을 중씨네가 쓰고 있었거든요. 나중에 한씨네 집이 화해하고 다시 부자가 되면 그 땅을 돌려 달라고 하지나 않을까, 매일 매일 걱정했답니다.

그래서 중씨 아저씨는 한 가지 꾀를 냈답니다.

자기네가 그 땅을 가지고 있을 때 한씨네가 살았던 흔적을 지우고 “여긴 옛날부터 우리 땅이었다”라고 우기기 시작했던 거죠. 게다가 한술 더 떠 그 땅에서 살던 한씨네 조상들이 자기네 집에서 일하던 하인들이었다고 말하고 다녔답니다.

남한이네 식구들은 답답하고 어이가 없었지만 뭐라고 할 수 없었죠. 잃어버린 그 땅은 북한이네 식구가 살고 있는 곳이라 뺏겨도 직접 찾을 수 없는 애매한 곳이었거든요. 게다가 중씨네는 식구도 많고 싸움도 잘해서 남한이네 식구들만으론 이길 수가 없었답니다.

그래서 남한이 아빠는 다른 동네사람들에게 하소연도 해보고 옛날 책도 찾아보면서 이리저리 방법을 찾았지만 쉽지 않았어요.

그런데 방송국에 다니는 남한이네 길용이 삼촌은 애타는 아빠 속도 모르고 “저러다 우리 땅 다 뺏긴다”면서 식구들을 부추겨서 중씨네와 자꾸 시비를 붙였답니다. 정작 자기는 뒤에서 할말만 하고 쏙 빠져서 말이죠.

남한이네 식구들은 삼촌의 부추김에 흥분해서 열심히 싸우다 결국 지쳐버렸답니다. 그리곤 길용이 삼촌을 보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길용아~ 나 이제 너 못 믿것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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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마당] 봉사활동으로 채워지는 꿈 영원히 미성년에 머물러 있을 줄 알았던 내가 성년이 되었다. 봉사활동을 즐겨 하던 어린아이는 어느덧 스물두 살의 대학교 3학년이 되어 ‘청소년’의 끝자락을 향해 가고 있다. 몇 년간 봉사해 오니, 이것이 적성에 맞는 것 같다는 작은 불씨 하나를 발견하게 되었다. 진로를 향한 작은 불씨는 단순히 봉사활동으로 뿌듯함과 성취감을 느끼는 것이 아닌, 직업으로 삼아 다양한 연령층을 위해 복지를 지원하고, 클라이언트의 기본적인 생활을 영위할 수 있도록 돕고 싶다는 큰 불씨로 번지게 되어 사회복지학과에 진학하였다. 대학교에서 한 첫 봉사활동은 학교에서 진행하는 독거노인분들께 ‘편지 작성 및 생필품 포장, 카네이션 제작’이었다. 비록 정기적인 봉사는 아니었지만, 빼곡히 적은 편지를 통해 마음을 전해 드릴 수 있었기에 뜻깊음은 배가 되었다. 하지만 조금의 아쉬움은 있었다. 봉사활동이라고 하면 직접 대상자와 소통할 줄 알았는데 해당 봉사는 대상자와 면담하지 못하고, 뒤에서 전달해 드리는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가장 기억에 남는 봉사활동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장애아동어린이집‘에서 활동한 겨울 캠프 활동 보조일 것이다. 이곳에서 가장 힘들었던 것은 아동들이 다른 길로 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