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왔다. 내가 가을을 맞이하는 방법은, 굳게 닫아두었던 창문을 아침저녁으로 활짝 여는 것이다. 무더웠던 여름에는 창문 열기가 그렇게 두려울 수 없었건만, 어느덧 활짝 열어두어도 딱 기분이 좋을 만큼의 시원함이 스친다. 좋아하는 노래 목록을 재생한다. 말라가는 화분에는 듬뿍 물을 주었고, 반가운 마음에 대청소도 시작한다. 누군가가 1년 이상 입지 않는 옷은 과감하게 정리하라고 한 말을 기억하고는, 옷장을 열어 탐색에 들어간다. 입은 기억이 까마득한 연분홍 블라우스와 청치마가 눈에 띈다. 청치마를 무척이나 좋아했던 나는, 어느 순간 편안한 옷을 선호하게 되었다. 살을 빼면 그때 꼭 다시 입겠노라고 접어두었던 나름의 사연이 있는 옷이다. 하지만 내년에도 입지 않을 것 같은 무언의 느낌에 과감히 상자 속에 던진다. 짧은 여름옷은 구석으로, 긴 종류의 옷을 꺼내기 쉬운 서랍에 차곡차곡 정리한다. 아침저녁의 기온 차에 대비하여, 약간 도톰한 후드도 꺼내놓아야겠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정리가 막바지에 달할 무렵, 돌려두었던 이불빨래가 꺼내달라고 아우성이다. 무거운 이불을 낑낑대며 널어두고 나면, 그제야 화장실 청소가 남았다는 사실에 두 눈을 질끈 감는다. 청소를
지난 10월, 유명 연예인이 극단적인 선택을 하며 스스로 목숨을 끊은 비극적인 사건이 일어났다. 갑작스러운 자살 소식은 사회적으로도 큰 충격을 가져왔는데, 언론에서는 고인이 그런 선택을 하게 된 결정적 원인이 오랫동안 앓고 있었던 우울증 때문이라 밝혔다. 그 사실을 접한 많은 사람들은 고인이 앓았던 우울증의 가장 큰 원인으로 ‘악성댓글’을 꼽았다. 결국 그가 그런 극단적인 선택을 할 수 밖에 없도록 만든 것은 무분별한 악성댓글이었다. 정보화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는 각종 SNS에서 익명성이라는 방패 안에 숨어 면전에서는 하지 못할 말들을 서슴지 않고 내뱉는다. 내가 어떤 댓글을 쓰든 나 외에는 아무도 알 수 없기에 그 익명성을 악용해 타인에게 악성댓글을 다는 사람 또한 비일비재하다. 연예인뿐만 아니라 정치인, 스포츠선수, 유튜버, 심지어 미디어에 잠깐 비친 일반인들까지도 이른바 ‘악플러’들의 표적이 되는 시대가 되었다. 그 중 악플러들에게 가장 만만한 표적은 미디어에 가장 많이 노출되는 연예인들이다. 악성댓글의 수위 또한 날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는데, 부모님 욕부터, 성희롱성 댓글까지 입에 담기 힘들 정도의 댓글들이 매일 수천·수만 개씩 불특정 다수에 의해
전라남도 보물찾기 영상콘테스트 응모분야: UCC/영상 접수마감: 2019.03.18.~2019.11.15. 2019 한국전력 미디어콘텐츠 공모전 응모분야: 디자인, UCC/영상, 캐릭터/만화 접수기간: 2019.09.04.~2019.11.15. 2019년 대학(원)생 사회복지 프로그램 기획전 응모분야: 기획/아이디어 접수기간: 2019.09.02.~2019.11.22. 불법경마 예방 홍보 동영상 공모전 응모분야: 디자인, 광고/마케팅, UCC/영상 접수기간: 2019.10.10.~2019.11.24. 2019 과천시 블로그·유튜브 콘텐츠 공모 이벤트 응모분야: 광고/마케팅, 사진, UCC/영상, 문학/수기, 캐릭터/만화 접수기간: 2019.08.12.~2019.11.30.
이른바 ‘조국 대전’으로 아직도 온 나라가 떠들썩하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국론 분열’을 걱정한다. 한 쪽은 ‘검찰 개혁’을 외치며 촛불을 밝히고 있고, 다른 쪽은 ‘조국 구속’, 심지어 ‘대통령 탄핵’까지 외치며 태극기와 성조기를 흔들고 있으며, 이 진영들 간의 대결에서는 그 어떤 상호 인정의 가능성도 보이지 않으니, 그 걱정의 심정을 전혀 이해하지 못할 것은 아니다. 그러나 우리가 정말로 해야 할 걱정은 좀 더 근본적인 차원의 것이다. 첫 번째 걱정은 방금 언급한 ‘걱정’에 대한 걱정이다. ‘국론’이라는 것은 그 존재 사실부터가 의심스러울 뿐 아니라, 당위성의 관점에서는 본질적으로 용인될 수 없다는 것이 시민사회적 상식이 아닐까. 국가란 저마다 다른 이해관계 속에 살면서 저마다 다른 가치와 신념을 지닌 자립적 주체들이 모여 이루어지는 것이니, 건전한 국가란 다양한 의견들이 서로 인정하면서 공정한 규칙에 따라 수행하는 경쟁, 교섭, 연대 등을 필요조건으로 한다. ‘국론’이라는 단어에는 오로지 한 방향의 주의만이 절대적으로 옳으니 모든 구성원이 그것에 순종해야 한다는 전체주의적 이데올로기가 깔려 있다. 그러기에 그 단어의 소극적 추종자들은 ‘분열’을 걱정
계명대출판부 신간 행복의 철학 이유택/2019 ‘행복이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은 서양 철학의 태동기부터 제기되어온 만큼 서양철학의 역사는 행복 물음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는 오늘날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이 책은 서양 고대부터 근·현대에 이르기까지 소크라테스, 플라톤, 스토아 학파, 니체, 카뮈 등 각 시대를 대표하는 저명한 철학자 18명의 ‘행복’에 대한 생각을 밝힌 책이다. 강의 교재로 활용하기 위해 출판된 책인 만큼 저자는 학생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상세한 설명과 많은 원전을 직접 인용하고 있다. 이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은 독자라면 행복의 문제를 통해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게 되며, 나아가 서양 철학의 역사에 대한 개괄적인 지식과 안목도 갖추게 될 것이다. ● 문의: 출판부 580-6233 동산도서관 신착 도서 독선과 아집의 역사 바바라 터크먼/조민, 조석현 역/2019 최근 대한민국 정치의 좌우 진영 간 갈등이 심화되고 있다. 미국의 제2대 대통령 존 애덤스의 “다른 모든 과학은 진보하나 정치만은 3, 4천 년 전과 거의 차이가 없다.”라는 말처럼 반만년을 이어 온 우리나라의 정치도 다를 바 없어 보인다. 역사책 저술로 두 번의 퓰리처상
“저마다 나름대로 정의를 위해 싸우는 거지. 우리가 각기 다르다는 것을 인정해야 해. 그럴 수 있다면 우리는 서로 사랑해야 옳아.” 까뮈의 <정의의 사람들>에 등장하는 아나키스트 테러단원 칼리아예프의 말이다. 그는 인생을 사랑하기 때문에 혁명에 가담했다. 시(詩)가 혁명적이라고 믿는 주인공이다. 하지만 강제수용소에서 탈옥한 그의 다른 동료 스테판은 오직 폭탄만이 혁명적이라고 강조한다. “나는 인생을 사랑하지 않아. 그보다 정의를 사랑해. 그건 인생 이상의 거야!”라고 스테판은 외친다. 총 5막으로 구성된 연극<정의의 사람들>은 첫 장면부터 칼리아예프와 스테판의 대결 구도로 시작된다. ‘반항하는 인간’을 중심으로 이념, 혁명, 예술 그리고 사랑과 죽음을 들춰내려는 연극이다. 1949년 12월에 초연된 <정의의 사람들>은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할 수 있는가’란 문제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다시 말하면, 폭력에 저항하는 수단으로 대응 폭력이 옳은 것인가란 의문을 제기하는 작품이다. 이러한 문제는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다를 때에 발생하는 갈등과 유사하다. 가령 칼리아예프는 1막에서 “우리는 누구도 살인하지 않는 세계를 만들기 위해
“월수입 수백만 원의 택배일을 알선해준다는 광고를 보고 찾아갔다가 피해를 입는 노인들이 늘고 있다고 합니다. 월 4~5백만 원 수입의 택배일을 알선해 준다는 인터넷 광고를 보고 생계 때문에 어떻게든 일자리를 구해보려다 도리어 수백만 원 생돈을 물어내야 할 상황이 벌어진 것입니다.” 이는 9월 16일자 KBS 보도 가운데 일부다. 피해를 입은 노인은 건설 현장에서 일하다 일감이 뚝 끊겨 세 식구 생계가 막막해져 ‘택배회사’를 찾아 간 것이다. 이처럼 우리 생활에 깊숙이 들어와 있는 ‘택배(宅配, 타쿠하이)’라는 말은 일본말이다. 이제 일상생활에서 택배 없이는 살 수 없는 세상이 되고 말았다. 그렇다면 언제부터 이 ‘택배’라는 말이 들어 온 것일까? 이 말이 들어온 시기를 말하기 전에 일본에서 ‘택배’라는 말이 언제 쓰이기 시작한 것인지를 살펴보자. 기록상 1976년 1월 20일 야마토운수(大和運輸)가 택배사업을 시작할 당시 ‘택배편(宅配便, 타쿠하이빈)’이라는 말을 썼다. 택배사업이 번창하기 전에 일본에서는 철도역을 이용한 소포나 또는 우체국에서 취급하는 소포제도 밖에 없었다. 우체국의 경우 집으로 물건을 배달해주기는 하지만 부칠 때에는 우체국으로 찾아가야
전라남도 나주는 전주와 더불어 전라도 명칭을 낳은 큰 도시다. 고려 현종 9년(1018)부터 조선시대까지 나주는 나주목(羅州牧)이었을 만큼 전라남도의 중심지역이었다. 나주는 고대사회 고분으로도 유명한 도시지만 나주객사 금성관(錦城館)도 유명하다. 금성관은 나주의 진산인 금성산에서 딴 이름이다. 금성은 백제시대의 ‘발라’를 통일신라시대 말 경덕왕 때 사용한 나주의 옛 이름이다. 조선 성종 때 지은 금성관은 조선시대 객사 중에서 가장 큰 규모다. 현재 보물로 지정 예정인 금성관은 이곳에 드는 순간 큰 규모에 압도당한다. 금성관의 또 다른 ‘보물’은 금성관 뒤편에 살고 있는 두 그루의 은행나무다. 6백50살 정도의 은행나무는 조선시대 성리학을 대표하는 나무다. 성리학 공간에 은행나무를 심은 것은 공자의 행단에서 유래한다. 은행나무를 두 그루 심은 것은 이 나무가 암수딴그루이기 때문이다. 이 같은 사례는 서울의 성균관을 비롯해서 경북 영주의 소수서원, 충남 아산의 맹씨행단, 경북 청도의 자계서원 등에서 확인할 수 있다. 아울러 금성관 근처의 나주향교 대성전 앞에도 두 그루의 은행나무가 살고 있지만, 아쉽게도 문이 닫혀서 암수를 확인하지 못했다. 은행나무와 더불어
대학의 핵심 기능은 교육과 연구이다. 대학은 사회 유지와 발전에 요구되는 다방면의 인재를 양성하여 공급해 왔고, 깊이 있는 연구를 통하여 산출된 지식과 기술은 사회 발전을 견인해 왔다. 우리 대학과 같은 교육 중심 대학은 교육 부문에 우선순위를 두고 그 중심인 강의와 수업에 많은 노력을 집중한다. 두 기능이 바르게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우선적으로 모든 학생들에게 공정한 강의 혹은 수업 선택권이 보장되어야 하나, 우리 대학에서는 이번 학기에 처음으로 수강신청권을 암암리에 거래하는 일이 발생하여 수강 관련 민원이 야기되었다. 이는 학칙시행세칙 84조 ⓵항 12, 13호(면학분위기 저해 및 학원질서 어지럽힘, 학생 품위 손상)에 위배되는 행위로 이를 경고하는 교무처장 명의의 안내문이 대학 홈페이지 공지사항에 게시되어 있으며, 관련 학생에 대한 징계가 이루어지고 있다. 우리 대학은 학생들이 원하는 강의를 선택할 수 있도록 네 단계로 구성된 단계적 수강신청제를 운영하고 있다. 매년 1월 혹은 8월 말경에 수강꾸러미제를 통하여 본 수강신청 전에 빠른 수강신청이 가능하게 하여 수업계획을 사전에 충분히 검토할 수 있게 하고 있다. 1차 수강신청은 매년 2월, 8월 초순경에
●콘서트 <퀸 트리뷰트 콘서트> 일시: 2019.10.12./장소: 대구스타디움/문의: 053-602-2002 지난해 개봉해 한국에 퀸 열풍을 몰고 온 영화 <보헤미안랩소디>는 국내 퀸 팬들의 큰 호응을 얻었다. 뜨거운 성원에 보답하고자 영국 왕실이 트리뷰트 칭호를 하사한 전설적 밴드 ‘퀸 트리뷰트 밴드’의 내한공연이 대구에서 열린다. 많은 퀸 매니아들에게 사랑받는 퀸 트리뷰트 밴드의 공연을 통해 보헤미안 랩소디의 감동을 다시 한번 느껴보자. ●전시 <행복을 그리는 화가 에바 알머슨 in대구> 일시: 2019.09.06.~12.08/장소: 대구MBC 특별전시장/문의: 053-744-5400 이 전시는 에바 알머슨 화가의 유머러스하고 사랑스러운 ‘일상의 모습’들을 보여준다. 작가는 일상의 모습들을 그림으로 표현하여 우리 곁에 늘 존재하는 것들에 대한 소중함을 일깨워 준다. 특히 이번 전시에서는 대구를 주제로 한 최신작이 최초로 공개되어 전시장을 방문하는 관람객들에게 또 다른 재미와 볼거리를 선사한다.
묘한 영화다. 개인적으로 반했다. 두 번째 본 후에야 영화의 결이 보였다. <유열의 음악앨범>은 어떤 시간과 공간 속에 푹 잠겨보는 것, 그래서 영화에서 줄거리가 차지하는 몫은 길 안내에 불과하며 러닝타임 동안 실제로 ‘달려야’하는 건 관객 자신의 주체적 감각 동원력임을 일깨운다. 다 잊은 줄 알았으나 떨쳐지지 않는 기억, 아무리 돌이켜봐도 아쉬운 순간, 그것마저 소환해 ‘다시’ 살아보게 한다. 우연히 들려온 라디오 속의 사연과 음악이 마음을 잡아끌 때처럼. 사랑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우리는 알지 못 한다. 사랑에 빠져있는 동안 심지어 그것이 사랑임을 깨닫기도 쉽지 않다. 사랑에 대해 어쩌면 가장 흔한 건 후회일지도 모른다. 못다 한 사랑을 다시 하게 된다면, 잘 할 수 있을 것인가? 가정법이 의미 없음을 알면서도 수없이 되짚어보는 상상이다. 멜로나 로맨스는 바로 이 상상에 힘입은 장르일 터다. 왜 사랑은 지나간 후에야 그 전체의 윤곽이 비로소 보이는 것일까? 멜로가 ‘불가항력’에 의지해 연인들을 갈라놓고 엇갈리게 하는 전략을 쓰는 이유다. 가슴을 찢어놓는 자책으로부터 관객이나 독자를 구원하는 동시에 감정 몰입을 이끌기 위한 방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