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회 교양도서 독후감 경시대회 최우수작『벨킨이야기』를 읽고 부제 : 세 사람의 엇갈리 관계 이번에 교양 글쓰기 교재로 [벨킨 이야기]를 읽게 되었다. 5편의 재미있고 짧은 소설들마다 작가가 많은 의미를 부여해 놓았지만, 나는 두냐와 역참지기의 삶에 끌려‘역참지기’에 관해 쓰려 한다. ‘역참지기’는 두냐, 역참지기, 민스키 세 사람의 이해관계가 엇갈리며 두냐에 의해 좌지우지 되는 두 남자와 탕아에 비유되는 두냐를 그린 작품이다. 소설‘역참지기’에서는 역참지기의 힘든 삶을 독자에게 부각 시키면서 그 일이 고될 뿐 아니라 그런 직업 때문에 딸을 잃은 한 아버지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처음에 이 소설을 읽고선 단지 ‘역참지기가 불쌍하다.’ ‘두냐는 왜 아버지를 찾아뵙지 않았을까.’ ‘두냐는 정말 이기적이군.’단순히 이렇게 느꼈을 뿐이었다. 하지만 수업 중에 교수님께서 더 깊게 생각해 보고 미묘한 무언가를 발견해야한다고 말씀하셔서 더 주의하며 읽고, 더 깊게 생각하려 노력했다. 그러자 소설 속 ‘무덤 앞에서 우는 두냐’ 그림의 두냐에게서 나도 모르게 연민이 느껴졌고 그녀가 내가 처음에 그랬듯이 단순하게 그녀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에 억울해 할 것 같다는 생각
제10회 교양도서 독후감 경시대회 최우수작『유토피아』를 읽고 부제 : 도달할 수 없는 이상향을 향하여 나는 SF를 좋아한다. SF는 Science Fiction을 줄인 말로 과학적 공상에 의거한 허구물을 통틀어 일컫는 말이다. 개인적으로 과학적 공상과 상상을 즐기는 편이라 SF 영화도 즐겨보는 편인데 이번에 교양세미나 교재 중 토마스 모어의 「유토피아」를 읽고 몇 년 전에 보았던 이라는 영화가 떠올랐다. 이 영화에서 감정이 철저히 통제되고 인간의 감정을 기반으로 하는 모든 문화적 행위들이 사회질서를 해치는 악으로 규정되는 사회를 보면서 당시 신선한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난다. 영화에서 표현된 이상향이 「유토피아」를 읽고 난 후 내가 꿈꾼 이상향과 일부분이나마 닮아 있었기 때문이다. 나의 이상향은 두 번에 걸쳐서 변했다. 어렸을 때 첫 번째 이상향은 모든 사람이 부자가 되는 것이었다. 세상 사람들이 자신들이 필요로 하는 물건들을 제한 없이 얻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생각에서였다. 그러나 그것은‘절대적 풍요’라는 긍정적 개념을 도출할 수 있기는 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경제관념을 전혀 고려해보지 않은 이상향이었다. 두 번째 이상향은 만화영화에나 나올만한
제9회 교양도서 독후감 경시대회 최우수작『아큐정전』을 읽고 부제 : 정체성(正體性)과 정체성(停滯性)의 차이 이장희(경영대학 1년) 정체성(正體性)이란 변하지 아니하는 존재의 본질을 깨닫는 성질. 또는 그 성질을 가진 독립적 존재를 말한다. 더 나아가서는 자아정체성이라 불리며 굳게 자리 잡아 한 사람이 발전해 나아갈 밑거름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아Q정전에 실린 , , , 등의 4편의 단편소설에 나오는 등장인물들은 정체성(正體性)을 갖고 있는 것이 아니라 정체성(停滯性)을 띠고 있다. 즉, 발전이 없이 멈추어서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다. 등장인물들의 정체성(停滯性)을 띠고 있는 이유는 크게 네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는데 그 첫 번째는 자기합리화의 일상화이다. ‘아Q정전’의 아Q는 자신보다 강한 사람에게 약한 모습을 보이고 약한 사람에게 강한 척하는 비겁한 태도를 취한다. 짜오 어르신이나 동네 건달 등 힘이나 권력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따귀를 맞아도 군말 않고, 아Q 자신을 버러지라고 부르는 등의 자기 비하적 태도를 서슴없이 취하면서 비구니나 우어멈 등의 약하고 저항할 힘이 없는 사람들에게는 치근대며 자신의 힘을 과시한다. 강한 사람들 앞에서의 자기멸시도 약한
‘논어’! 왠지 이름만 들어서는 무언가 오래된 것 같고, 케케묵은 기분이 드는 책이다. 더구나 이 책이 동양철학을 대표하는 유학사상의 대부 격이신 공자(孔子)님의 말씀을 책으로 엮은 것이라서 그런지 왠지 멀게만 느껴지는 것도 사실이다. 우리는 흔히 오래된 이야기를 얘기할 때 “공자왈, 맹자왈...”이라는 표현을 쓰게 되는 데, 이는 아마 이 두 분께서 비록 아주 오래전에 세상을 살다가 가셨지만 그들의 가르침이 아직도 우리에게 많은 교훈과 배울 점을 주기 때문일 것이다. 그동안 마냥 멀게만 느껴왔던 공자님의 사상을 이번 기회를 통해서 알게 되어서 기분이 좋다. 공자는 중국 춘추 전국 시대 말기의 사람으로 오늘날로 말하자면 대학교 교수나 총장 쯤 되시는 분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의 아래에는 그의 사람 됨됨이를 보고 모여든 많은 제자들이 있었고 이들을 가르치면서 한 말이 ‘논어’의 근간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즉, 논어는 공자 사상의 핵심, 엑기스를 그의 제자들이나 후세사람들이 정리해 놓은 책이라고 하겠다. 논어를 읽으면서 나는 나 자신도 모르게 ‘孔子’라는 사람이 좋아졌다. 그동안 내가 알았던 공자는 ‘仁'과 ’禮‘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왠지 어렵게 느껴지
논어라는 책은 사실 철학책이기에 웬만해서는 갓 대학을 들어온 새내기 학생들은 읽지 않는 책 중 하나일 것이다. 물론 나도 서점에서 집어 들었다가 다시 놓았던 책이기도 했다. 대학생이 되어 얼핏 지나가면서 보았을 때는 ‘윤리 시간에 배운 논어 책이구나.’ 하는 정도의 생각을 하면서 무심결에 집어 들어 한두장 넘겨보았다. 고등학교 때처럼 한창 윤리에 대하여 공부하고 있었을 때라면 몰라도, 지금의 나로서는 지루함 밖에 느껴지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기에 곧 집어넣고 발걸음을 재촉했던 기억이 난다. 처음 교수님께서 이 책에 관해 설명해 주시던 날 우리에게 ‘논어라는 책을 보면 무엇이 떠오르느냐’ 고 하셨다. 그때에는 가장 중점이 되는 인물인 공자와, 공자의 나라인 노나라, 인. 의. 예, 지 등 학문적인 이야기 밖에 나오질 않았다. 그래서 교수님께서는 고리타분함은 느껴지질 않느냐고 말씀 하셨다. 내가 느꼈던 그 지루함과 고리타분함이란 것이 상반된 것이 아니었기에 쉽게 수긍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딱히 생각나지 않았던 이유는 모든 사람들이 그렇게, 당연하게 생각하고 받아들일 것이라는 편협한 사고방식 때문일 것이다. 또한 읽어보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은 까닭이 있다면 아
제5회 교양도서 독후감 경시대회 최우수작『주홍글자』를 읽고...-칠링워스 그의 입장에서 두 남녀의 사랑과 또 다른 한 남자의 집착을 중심으로 써 내려 간 주홍글자에 대해 일반적으로는 헤스터와 딤즈데일 두 남녀의 관계가 사랑인가, 불륜인가에 대해 많이 논쟁되어지곤 한다. 그러나 주홍글자의 작가 호손이 책 전반에 걸쳐 나타내고자 하는 것이 사랑이나 불륜 뿐 인 것은 아니라 보며 실제 책에서도 헤스터와 딤즈데일간의 사랑에 관한 내용은 거의 찾아 볼 수 없었다. 오히려 등장인물들 각자가 처한 상황과 그에 따른 각 인물들 간의 관계에 대해 구체적으로 서술하는 것을 더 중요하게 여기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자신의 죄가 밝혀짐으로서 속죄의 기회를 얻었던 헤스터와 그렇지 못한 딤즈데일 그리고 배신당한 후 이를 복수 하려고한 칠링워스. 이러한 각자가 처한 상황이 이들 세 사람의 관계를 연결해주는 연결고리가 되었다고 본다. 그리고 헤스터와 딤즈데일 이 두 남녀의 불륜이라는 상황으로 인해 칠링워스와 그들 사이에 복수를 하려는 자와 그 복수의 대상이라는 관계가 형성된다. 이들의 이러한 관계에 대해 흥미가 생겼고 헤스터나 딤즈데일과의 관계에 비추어 칠링워스에 대해 이야기 해보고자
가보지 못한 낯선 땅을 밟는다는 것은 누구에게나 있어 설레는 경험일 것이다. 월남 전쟁, 제3세계라는 이미지밖에 없었던 낯선 베트남. 출발하기 전 이 나라에 대해서 아는 것은 없었지만 막연히 설레었고 앞으로 생길 일들에 대해 기대되었다. 모든 일정을 마치고 돌아온 지금 나에게 신선한 충격을 안겨준 그 나라에서의 봉사 활동과 문화 체험에 대해 이야기 해보고자 한다. ● 무질서 속에서 질서를 찾는 그 곳 2006년 7월 13일 우리 국외봉사단은 베트남의 수도 하노이의 노바이 국제공항에 도착했다. 공항을 빠져나오자 습하고 뜨거운 공기가 우리를 반겨주었고 앞으로 우리가 겪게 될 봉사활동보다 더 힘든 더위와의 싸움을 직감할 수 있었다. 베트남의 여름은 밤중에도 30°를 웃도는 폭염이었던 것이다. 숙소로 이동하는 도중 목격한 진풍경은 다시 한 번 다른 세상을 실감하게 했다. 신호등이 없는 도로를 수십, 수백 대의 오토바이들이 쉴 틈 없이 경적을 울리며 돌아다니고 있었다. 양보란 없었다. 재주 것 제 갈 길로 지나가면 그만이었다. 너무나 무질서하고 희귀한 그 광경이 놀라웠고 그 당시에는 베트남 사람들이 무섭기까지 했다. 그 후로 3~4일간은 오토바이 경적소리에 잠 못 이
모든 것이 새로운 경험들이었다. 한국을 벗어난 것도 처음이고, 9시간의 기차여행, 고급호텔에서의 숙박, 베트남의 아버지 호치민의 시신 등등 눈에 보이는 모든 것들, 귀에 들리는 모든 소리들, 입으로 맛보는 모든 음식들, 피부로 직접 느끼는 극한 더위 이 모든 것이 나에게 있어서는 처음 접하는 새로운 경험들이었다. 새로운 경험들은 삶에 자신감을 주고 경험 이전의 자신에 대한 능력의 한계를 깨닫게 함으로써 자기의 수준을 알 수 있게 해준다. 새로운 것을 경험함에 따라 사는 방법에 대한 안목이 넓어지고 한국에서의 생활과 베트남에서의 생활을 비교ㆍ체험함으로써 당연하게 생각했던 나에게 주어진 조건들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었고 그 혜택이 얼마나 소중하고 행복한지 느낄 수 있었다. ● 내 인생의 가장 큰 행운 ‘베트남 국외 봉사 활동’ 나는 처음부터 다른 봉사단원들과 조금 달랐다. 추가로 힘겹게 선발되었기 때문이다. 이 집단의 특성상 추가 선발은 기대할 수 없는 특수한 경우였고 또 그 한명에 내가 뽑힐 것이라고는 상상도 할 수 없었다. 행운에 행운이 겹쳐 선발된 것은 분명히 내 인생의 기회였다. 그래서 나는 이번 국외 봉사에 큰 목표를 두고 최선을 다 할 수 있었다.
학교를 다니면서 인간관계의 중요성을 실감할 때가 많이 있다. 사람을 얼마나 깊게 폭 넓게 사귀느냐의 문제는 자기 자신 그리고 서로에게 있어서 중요한 문제이며, 사회생활을 하는 데 있어서 든든한 버팀목이 된다. 이번 하계 국외 봉사활동을 통해서 내 인생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 줄 사람들을 만났고 대학 4년 동안에 가장 보람된 일을 함께할 수 있었다. 물론, 혼자서는 절대 해 낼 수도 없었던 일이었고 함께 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라고 생각한다. 팔공산에서의 사전교육이 있었던 날이다. 나에겐 팔공산 등반이 그다지 어려운 일은 아니었지만, 체력이 약한 다른 조원들은 뒤처지곤 했다. 우리는 서로 앞에서 끌어주고 뒤에서 밀어주며 한 사람도 포기하는 사람 없이 사전교육을 끝낼 수 있었다. 팔공산 사전 교육을 통해서 앞으로 베트남 봉사활동을 하면서도 혼자 앞서지 말 것이며 나에게는 든든한 조원들이 함께할 것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또한 봉사활동을 떠나기 전 문화 봉사를 위한 댄스와 풍선아트를 준비하면서 우리를 반겨줄 현지의 아이들을 상상해 보았고 기뻐할 그들의 모습을 생각하면서 하루하루가 설레었다. 인천공항 도착 후 짐을 부치고 비행기를 탈 때까지만 해도 실감나지 않았던
베트남으로 출국하기 전 내가 알고 있는 베트남이란 나라는 지구상에 몇 안 남은 사회주의 국가, 정말 더운 곳, 못사는 나라였다. 출국일 아침 대구를 떠나, 인천공항을 통해 비행기를 타고, 하노이공항에 내리기 전까지만 해도 그런 이미지는 변함이 없었다. 하노이공항에 내리자마자 느껴지는 푹푹 찌는 습도 높은 더위, 그리고 베트남 입국심사대에 서있던 제복 입은 베트남 고위간부, 현지인들의 허름한 옷차림은 내가 알던 이미지와 크게 다르지 않았기 때문에 별로 놀랍지 않았다. 그 때만해도 ‘버려진 이 땅의 사람들에게 잘사는 우리가 베풀어야지’ 하는 나의 생각은 변함이 없었다. 내 무의식속에는 문화적 상대성이란 말은 없고, 한·베트남의 문화적 차이를 경제력의 잣대로 인한 수직적인 구도로 이해하려고 하는 맘이 있었나 보다. 하지만, 하노이 공항에서 우리가 묵어야 되는 숙소로 이동하는 버스 안에서 가이드의 설명을 들은 후 나의 생각은 달라졌다. 6.25전쟁이 끝나고,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2번째로 가난한 나라로 꼽혔던 시절, 안남미(安南米)라는 이름으로 우리나라에 대량의 식량지원을 해준 국가, 그런 고마운 나라에 피와 참극으로 되갚은 한국. 비록 (전)대우그룹 김우중 회장이
도망치고 싶었다. 어디로든 떠나기만 하면 내가 안고 있는 많은 고민들을 보다 명료하고, 가볍게 볼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매번 학기가 끝나갈 무렵이면 생각했다. 다음 학기엔 휴학을 하고 어딘가로 떠나야겠다고, 생각할 시간을 충분히 갖고, 내가 진정 원하는 무엇을 꼭 찾아내야겠다고. 하지만 쉬운 일은 아니었다. 별다른 목적 없이 쉬는 게 얼마나 후회를 남기는 일인지 주위 선배, 동기들을 통해 많이 들어왔던 터였기 때문이다. 모두들 걷고 있는데 나는 쉬면서 뒤처지는 게 싫었다. 그래서 억지로 그들과 걸어갔다. 하지만 얼마가지 않아 나는 ‘한계’를 느꼈고, 더 이상은 걸을 수 없었다. 그러던 중 “국외 봉사활동”을 알게 되었다. 이보다 더 좋을 순 없었다. 나는 떠나고 싶었고, “국외 봉사활동”은 충분히 명목이 되어주었다. “봉사”라는 무보수의 아름다운 행동을 이렇게 이기적인 동기로 해도 되는 건지 부끄러운 마음도 물론 없진 않았지만 나는 국외 봉사활동을 신청하게 되었다. 몇 번의 만남을 통해 서로에 대해 알게 되었다. “봉사”를 목적으로 만들어진 단체답게 서로를 이해하고 배려하려는 마음이 많아 친해지는데 별반 어려움이 없었다. 긴 시간의 비행 끝에 드디어 베트
어디서 어떻게 시작하는 것이 좋을까? 나는 이번 봉사활동에서 가슴 깊이 와 닿는 한 문장이 있다. “주어진 환경에서 최선을 다하라.” 정말 이 말이 이번 봉사활동에서 제일 딱 맞는 말인 것 같다. 처음에 떠나기 전에 오리엔테이션을 할 때만 해도 한국과 너무나 다르고 열악한 환경이라 생각했었다. 새로운 환경에 대해 걱정도 앞섰지만 봉사활동에 대한 마음을 잊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즐기려고 가는 것이 아니다. 봉사활동을 하러 가는 것이다.’라는 말을 마음속에 되새기고 또 되새겼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6월29일이 되었다. 어렸을 때 소풍가는 마음처럼 설레어 전 날 한숨도 자지 못하고 새벽 일찍 집합하기로 한 학교로 향했다. 어쩌면 길고 어쩌면 짧은 12박13일인데 부모님과 작별 인사를 하고 돌아서니 진짜 실감이 나기 시작했다. 봉사라는 단어 하나로 뭉치 30명이 집합시간에 맞혀 모여들었다. 서로 말은 하지 않았지만 나와 같은 느낌을 가지고 여기까지 온 것 같았다. 이제 학교를 떠나 대구 공항에서 북경으로 가는 비행기를 탔다. 연길로 바로 가는 비행이가 없었기 때문에 북경에 들려 연길로 향했다. 봉사도 하기 전에 기다림에 지치는 것 같았다. 우리의 목적지에 도착했을
12박 13일의 잊지 못할 봉사활동을 끝내고 한국에 돌아왔을 때 그 허전함이란, 서로 헤어지기 싫어서, 서로 먼저 떠나기가 아쉬워서 본관 앞에서 머뭇거리던 시간들, 활짝 웃으면서 우리들의 마지막 사진을 찍고 싶었지만 눈물이 흘러 해맑게 웃지 못했다. 문득 우리가 처음 만났을 때가 생각난다. 그렇게 서먹서먹했던 우리가 지금은 우리의 추억을 함께 그리워한다. 돌아온 지 단 하루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12박 13일의 즐거웠던 추억이 마치 한 폭의 그림같이 흘러간다. 부푼 가슴을 안고 도착한 중국 연길공항, 우리를 반겨준 사람들 중 가장 눈에 띄는 이들은 색동옷을 곱게 차려입은 조선족 남학생과 여학생이었다. TV에서 개그맨들이 따라하던 그런 독특한 억양의 한국말을 쓰던 두 아이들. 비행기를 타고 몇 시간을 날아왔는데 한국이 아닌 장소에서 한국말로 서로 대화를 해도 전혀 어색하지 않게 통하는 우리 동포가 있다는 사실에 감동했다. 뿐만 아니라 외국인이 아닌 우리 동포들을 위하여 봉사활동을 한다는 것 자체가 봉사를 임하는 나의 마음을 더욱 뿌듯하게 만들어 주었다. 봉사활동 중 여러 가지 작업을 했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잡초 뽑기! 오죽하면 우리가 중국에서 돌아와 해단
이력서에 한 줄 더 쓰려는 욕심이었을지도 모른다. 백두산 간다기에 무작정 지원한건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이것도 저것도 아니고 친구 따라 강남 가는 심정으로 그냥 지원한건지도 모르겠다. 지원 마감일에 부랴부랴 지원서를 낼 때도 큰 기대 없이, 큰 욕심 없이 뒤돌아 나올 수 있었다. 몇 일후 합격자 통지가 있었다. 합격자 명단 끝자락에 내 이름이 보였다. 같이 지원한 친구 녀석들 이름은 보이지 않았다. 덜컥 겁이 나기 시작했다. ‘나 혼자 합격한 건데 친구들한테 미안해서 어쩌지?’, ‘내가 갈만한 자격이 되나?’, ‘주위에서 하자고 해서 같이한 것 빼고 자원봉사는 처음인데 어쩌지?’, ‘여권도 없는데 혹시 여권발급 안 되는 것 아냐?’ 이런 막연한 두려움들은 막상 중국 땅을 밟을 때 까지, 봉사활동을 시작할 때까지 계속 나를 따라다녔던 것 같다. 6월 29일. 많은 분들에 격려와 배웅을 뒤로하고 대구공항에서 중국으로 출발했다. 봉사단원들 얼굴에는 다들 설렘으로 가득해 보였다. 뭔가 단체로 국외여행 가는 기분도 들고, 기말고사 이후 오랜만에 만나서 그런지 어색하면서도 반가운 마음에 어수선하게 웃고 떠들었다. 그 속에서 나도 긴장이 풀리고 여유가 조금 생겼지만, 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