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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험 계명의 현장

내 안의 가능성을 보다

도망치고 싶었다. 어디로든 떠나기만 하면 내가 안고 있는 많은 고민들을 보다 명료하고, 가볍게 볼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매번 학기가 끝나갈 무렵이면 생각했다. 다음 학기엔 휴학을 하고 어딘가로 떠나야겠다고, 생각할 시간을 충분히 갖고, 내가 진정 원하는 무엇을 꼭 찾아내야겠다고. 하지만 쉬운 일은 아니었다. 별다른 목적 없이 쉬는 게 얼마나 후회를 남기는 일인지 주위 선배, 동기들을 통해 많이 들어왔던 터였기 때문이다.

모두들 걷고 있는데 나는 쉬면서 뒤처지는 게 싫었다. 그래서 억지로 그들과 걸어갔다. 하지만 얼마가지 않아 나는 ‘한계’를 느꼈고, 더 이상은 걸을 수 없었다. 그러던 중 “국외 봉사활동”을 알게 되었다. 이보다 더 좋을 순 없었다. 나는 떠나고 싶었고, “국외 봉사활동”은 충분히 명목이 되어주었다. “봉사”라는 무보수의 아름다운 행동을 이렇게 이기적인 동기로 해도 되는 건지 부끄러운 마음도 물론 없진 않았지만 나는 국외 봉사활동을 신청하게 되었다.

몇 번의 만남을 통해 서로에 대해 알게 되었다. “봉사”를 목적으로 만들어진 단체답게 서로를 이해하고 배려하려는 마음이 많아 친해지는데 별반 어려움이 없었다.

긴 시간의 비행 끝에 드디어 베트남 땅에 닿았다. 도착하자마자 가장 먼저 나를 반겨주는 것은 더위였다. 공항 문을 나서는 순간 숨이 턱하니 막혔다.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이정도일 줄은 몰랐다. 그렇다고 여기까지 와서 약한 척 하고 있을 수는 없었다. 날씨가 어떻든 간에 나는 이번 봉사활동을 통해 내가 원하는 것을 얻어가야 했고 날씨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낯선 풍경과 낯선 사람들 모든 것이 낯설었다. 이러한 느낌이 좋았다. 앞으로 베트남에서 펼쳐질 11박 12일의 시간이 무척기대 되었다.

봉사활동의 첫 만남이 생각난다. 서로 어색하게 인사를 하고 주고받던 소개말들, 타인에 대한 약간의 경계심을 갖던 우리들이 마지막 날 그토록 아쉬워하고 잡은 손을 놓지 않게 될 줄은 그때는 미처 몰랐다.

본격적인 봉사 활동이 시작되었다. 아침 6시 30분에 일어나 씻고, 7시부터 호텔 6층에 둘러앉아 간단한 아침식사를 했다. 타국에서 맛보는 한국음식의 맛은 타국에서 먹어본 사람들만이 알 것이다. 아침을 먹을 땐 서로가 별 말이 없다. 친구들의 푸석푸석한 얼굴 뒤로 들어오는 따뜻한 햇살을 보며 오늘 하루에 대한 기대를 했다. 오전 8시쯤 모두 모여 한 시간 가량의 버스를 타고 봉사활동의 목적지에 도착했다.

우리의 할일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뉘어 졌다. 기본적으로는 노력봉사로 유치원 건립을 도우는 것이고, 부가적으로 문화 봉사로 태권도, 댄스, 풍선아트 등으로 아이들에게 한국의 문화를 알리고 웃음을 주는 봉사이다. 여기서 나는 태권도를 맡았는데 출발하기 3주전부터 태권도를 맡은 팀원들과 함께 격파, 태권체조, 기본연합동작을 연습했다. 이번 문화 봉사 중에 태권도를 가장 기대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팀원들 모두 열심히 연습해 한국의 태권도를 세계에 알리자는 마음가짐을 가지고 연습에 임하였다. 그때 흘렸던 땀방울이 베트남에 와서 이렇게 값진 보람을 가져다 줄줄은 몰랐다.

우리의 태권도 시범을 보고 아이들이 환호하고 놀라워하는 것을 보고 연습한 보람을 느꼈다. 단순히 보고 놀라는 것에 끝나지 말고 우리의 무술 태권도를 가르쳐 주고 싶었다. 비록 시간이 얼마 되지 않아 자세히 가르쳐 주지는 못했지만 태권도에서 중요시 하는 예의와 인내를 가르쳤고 기본 발차기 몇 가지를 가르쳐 주었다. 배우는 아이들의 얼굴에도 웃음이 끊이지 않았고 가르쳐 주는 나의 얼굴에도 흐뭇한 미소가 끊이지 않았다. 수련을 마치고 각자에게 한국에서 미리 가져온 태권도 배지를 가슴에 달아주었다. 이것을 보며 이 아이들이 나중에도 한국의 태권도를 기억할 것이고 나에 대해 어렴풋이 기억을 할 것이다. 그 것만으로 뿌듯했다.

노력봉사는 예상했던 대로 날씨가 최고의 걸림돌이었다. 모두가 일을 하고자 하는 열정만큼은 뜨거웠지만 날씨로 인한 급격한 체력저하로 인해 생각보다 일의 진행이 더디었다. 한국이었다면 이틀이면 끝났을 것을 여기서는 일주일이 지나도록 계속하고 있는 듯했다. 노력봉사를 하며 군대에서 배웠던 많은 기술들을 쓰게 되었다. 제대이후에는 쓸 일이 없을 것 같았던 삽질과 곡괭이질 그리고 도색작업 역시 무엇이든 배워놓으면 쓸데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어떤 일이든지 남들보다 한 발짝 앞서 서 했고 남들이 하기 싫어하는 일이라면 내가 먼저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이번 봉사활동에 임했다.

남들이 보기에 그렇게 느꼈을지는 모르겠지만 봉사활동이 끝난 지금 나 자신을 평가하라면 그 신념만큼은 잘 지켰다고 생각한다. 노력봉사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우리가 한 삽, 한 삽 퍼다 나른 삽들이 모여 호수를 메웠고 그곳에 아이들이 안전하게 지낼 수 있게 담이 세워질 수 있게 하였고, 우리의 서툰 페인트칠을 바탕으로 그곳의 벽에 벽화를 그려 아이들이 유치원을 더욱 편하게 느끼고 놀 수 있도록 해주었던 것이다. 우리에겐 비록 보잘 것 없는 것들이지만 그들에게는 큰 힘이 되는 것을 알았고, 봉사의 참된 의미는 돈을 많이 기부하는 것도 아니고 건물을 크게 지어 주는 것도 아니었다. 이렇게 아이들과 만나고 서로 대화하고 웃고 서로를 이해하고 그 것이 국외봉사활동이 주는 참된 의미인 것 같다. 봉사활동 마지막 날 우리가 그곳을 떠나는 것을 알고 아이들이 그 작은 손으로 준비한 조그만 선물들은 내가 태어나 받은 어떤 선물보다도 값지고 소중한 선물이었다.

베트남에 다시 올 것이냐 라는 질문에 아무래도 다시오기는 힘들 것 같다고 대답했는데 그게 지금에 와서는 마음에 걸린다. 나는 언제든지 원하면 다시 갈 수 있는데 그 때 아이들이 얼마나 서운했을 지를 생각해보니 정말 미안하다. 다시 그때로 돌아가 나에게 다시 베트남에 올 거냐고 묻는다면 YES라고 대답할 것이다. 베트남은 나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 주었고 나로 하여금 자신감과 용기를 주었기 때문이다.

봉사활동 기간이 끝난 후 시작된 문화탐방은 그야말로 환상적이었다. 그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 사파로의 기차여행과 하롱베이의 유람선여행이다. 하노이에서 사파로의 기차여행은 내 평생 가장 땀을 많이 흘린 날로 기억될 것이다. 시원하지 않는 선풍기와 좁은 칸에 6명이 잠을 자야 하니 참으로 힘들었다. 이런 힘든 기억이 나중에는 추억이 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 당시에는 왜 그렇게 짜증이 나는지…….

지금은 사파행의 찜질기차라도 좋으니 그때로 돌아가고 싶다. 사파의 자연경관은 내가 여태껏 본 관경 중 단연 최고였다. 파란하늘과 초록색 산들이 어울러져 하나의 완벽한 풍경화를 이루었다. 자연은 있는 그대로 위대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태초의 자연은 이렇게 아름다웠으나 인간의 인위적인 개발로 인해 자연이 훼손되고 오염되고 있어 안타까웠다. 베트남은 아직 사회주의 국가라 이러한 자연이 고이 보존되고 있으나 이마저도 언제 개발되고 오염될지 모른다. 사파만은 내가 노후에 다시 오더라도 같은 풍경을 나에게 보여 줄 수 있었으면 좋겠다.

하롱베이는 3000여개의 섬으로 이루어져 있는 세계5대 아름다운 휴양지이고 007시리즈에 나왔을 만큼 빼어난 경관을 자랑하고 있다. 이름이 없는 섬까지 있을 정도이니 섬의 개수는 말할 것도 없이 많고 그 아름다움은 직접보지 않고 서는 말로써 모두 형용하기란 어렵고 경관을 욕하는 행위가 될 것이다. 하롱베이의 아름다운 바닷가에 수영도 해보고 백사장도 걸어보고 동굴도 가보고 이러한 경험들을 통해 나의 삶이 더욱 윤택해지고 아름다워지는 것을 깨달았다.

이번 봉사활동 및 문화탐방은 나의 가능성에 대해 알게 해주었고 나의 인생에서 이제는 없어서는 안 되는 친구들을 선물해 주었다. 이번 만남이 끝이 아닌 시작을 의미한다는 것을 모두가 알 것이다. 25살 나에게 가장 큰 선물을 해주신 나를 뽑아준 학생지원팀 학생처장님과 지용호 계장님 김주욱선생님 모두에게 감사하다. 평생 잊지 못할 추억을 함께 만들어간 30명의 우리 베트콩들 우리의 우정 영원히 변치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며 글을 마친다.





[독자마당] 봉사활동으로 채워지는 꿈 영원히 미성년에 머물러 있을 줄 알았던 내가 성년이 되었다. 봉사활동을 즐겨 하던 어린아이는 어느덧 스물두 살의 대학교 3학년이 되어 ‘청소년’의 끝자락을 향해 가고 있다. 몇 년간 봉사해 오니, 이것이 적성에 맞는 것 같다는 작은 불씨 하나를 발견하게 되었다. 진로를 향한 작은 불씨는 단순히 봉사활동으로 뿌듯함과 성취감을 느끼는 것이 아닌, 직업으로 삼아 다양한 연령층을 위해 복지를 지원하고, 클라이언트의 기본적인 생활을 영위할 수 있도록 돕고 싶다는 큰 불씨로 번지게 되어 사회복지학과에 진학하였다. 대학교에서 한 첫 봉사활동은 학교에서 진행하는 독거노인분들께 ‘편지 작성 및 생필품 포장, 카네이션 제작’이었다. 비록 정기적인 봉사는 아니었지만, 빼곡히 적은 편지를 통해 마음을 전해 드릴 수 있었기에 뜻깊음은 배가 되었다. 하지만 조금의 아쉬움은 있었다. 봉사활동이라고 하면 직접 대상자와 소통할 줄 알았는데 해당 봉사는 대상자와 면담하지 못하고, 뒤에서 전달해 드리는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가장 기억에 남는 봉사활동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장애아동어린이집‘에서 활동한 겨울 캠프 활동 보조일 것이다. 이곳에서 가장 힘들었던 것은 아동들이 다른 길로 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