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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험 계명의 현장

인 연 <2006 하계 국외 봉사활동 (베트남)을 다녀와서>

학교를 다니면서 인간관계의 중요성을 실감할 때가 많이 있다.

사람을 얼마나 깊게 폭 넓게 사귀느냐의 문제는 자기 자신 그리고 서로에게 있어서 중요한 문제이며, 사회생활을 하는 데 있어서 든든한 버팀목이 된다. 이번 하계 국외 봉사활동을 통해서 내 인생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 줄 사람들을 만났고 대학 4년 동안에 가장 보람된 일을 함께할 수 있었다.

물론, 혼자서는 절대 해 낼 수도 없었던 일이었고 함께 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라고 생각한다. 팔공산에서의 사전교육이 있었던 날이다. 나에겐 팔공산 등반이 그다지 어려운 일은 아니었지만, 체력이 약한 다른 조원들은 뒤처지곤 했다. 우리는 서로 앞에서 끌어주고 뒤에서 밀어주며 한 사람도 포기하는 사람 없이 사전교육을 끝낼 수 있었다. 팔공산 사전 교육을 통해서 앞으로 베트남 봉사활동을 하면서도 혼자 앞서지 말 것이며 나에게는 든든한 조원들이 함께할 것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또한 봉사활동을 떠나기 전 문화 봉사를 위한 댄스와 풍선아트를 준비하면서 우리를 반겨줄 현지의 아이들을 상상해 보았고 기뻐할 그들의 모습을 생각하면서 하루하루가 설레었다.

인천공항 도착 후 짐을 부치고 비행기를 탈 때까지만 해도 실감나지 않았던 베트남 봉사활동은 현지에 도착해서 그 곳의 후텁지근한 공기를 들이마시면서부터 온 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공항에서 숙소로 이동하는 버스 안에서는 가이드의 장황한 설명보다도 내 두 눈과 귀를 사로잡았던 것은 하노이 길거리의 빽빽한 오토바이와 경적소리였다. 자그마한 체구의 사람들이 묘기를 하듯 세, 네 명씩 오토바이를 타고 거리를 질주하고 있었다. 버스에서 내려서 발을 내딛기가 겁이 날 정도였다.

나에게 하노이의 첫인상은 무법천지였다. 실질적인 봉사활동을 위해 다음 날 하노이 근교 하뜨이 지역으로 이동했고 그 곳에서 우리를 반갑게 맞아주는 사람들을 만났다. 그 곳의 아이들은 호기심 반, 두려움 반으로 우리를 쳐다보았고 그런 아이들의 눈망울들이 정말 때 묻지 않은 순수 그대로였다. 봉사활동 둘째 날, 셋째 날. 시간이 흐를수록 아이들은 우리 봉사단원들에게 마음의 문을 열었고 우리들도 그들과 어울려 하나가 될 수 있었다.

강아지, 모자, 하트 풍선과 즉석사진 한 장에 좋아서 어쩔 줄 몰라 하는 아이들을 보고 있자니 그때만큼은 더워도 더운 줄을 몰랐다. 실제 그 곳의 더위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더운 대구보다 훨씬 더웠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어떻게 견뎠는지 신기할 정도다. 지금도 날씨가 너무 더울 때는 그 곳의 더위를 생각하면서 열을 식히곤 한다. 문화 봉사로 댄스공연을 했었던 날은 더워서 얼굴에 미세한 경련이 일어날 정도였다. 그래도 열심히 우리가 준비해간 탈춤을 선보였고 공연 후엔 직접 만들었던 탈바가지를 아이들에게 주기도 했다.

단 5일간의 짧은 봉사활동이었지만 우리가 그 곳에서 흘린 땀방울은 정말 값지고 보람된 것이다. 봉사활동 마지막 날에는 벽화로 예쁘게 장식한 뜨즈엉 유치원의 준공식이 있었다. 모든 동네 사람들과 아이들이 준공식에 참석하여 우리에게 감사의 박수를 쳐주었고 우리도 그들에게 축하의 박수를 선물해 주었다. 운동장 작업을 할 때 땀을 뻘뻘 흘리며 일을 도와 준 꼬맹이들 그리고 서툰 영어로 나이와 이름을 물어보던 아이들, 모두들 그날 서로 껴안고 사진을 남기기에 여념이 없었다.

메모지를 들고 와서는 우리의 이름과 메일주소를 써 달라고 하는 아이들에게 하나하나 정성껏 메모해 주었고 말은 통하지 않았지만 눈빛만으로도 고마워하는 그들의 마음을 읽을 수 있었다. 나 또한 그들에게서 때 묻지 않은 순수함을 알게 해줘서 고맙다고, 나중에 또 오고 싶다고 마음으로 속삭였다.

실제로 이번 봉사활동을 통해서 우리가 그들에게 봉사를 했다기보다는 배워 온 것이 훨씬 많았다. 몇 일간 무법천지 하노이를 자세히 들여다보면서 부지런히 움직이는 베트남 사람들을 볼 수 있었다. 그들을 통해서 베트남이라는 나라의 밝은 미래를 볼 수 있었고, 역사적으로 볼 때 많은 외침을 모두 이겨낸 강인한 민족답다고 느낄 수 있었다. 봉사활동의 아쉬움을 달래 주었던 문화탐방 기간 동안에도 그러한 역사와 민족성은 강하게 느껴졌다.

여러 소수민족들과 자국민을 우선적으로 보호하는 정부의 정책들, 호치민, 그리고 그를 열렬히 지지하는 국민들까지-지금은 인도차이나 반도의 약한 국가일지 몰라도 베트남의 미래는 어느 나라보다 밝기를 기원하고 싶다.

봉사활동을 통해 얻은 값진 것은 앞에서도 언급한 사람들과의 끈끈한 그 무엇이다. 좋은 사람들과의 좋은 시간이었다. 항상 취업에 대한 고민과 걱정으로 하루하루를 보내던 나는 베트남에서의 시간만큼은 모든 것을 잊어버리고 봉사와 문화탐방 활동을 할 수 있었다. 그 만큼 이번 하계 국외 봉사활동은 나 개인에게 여유를 가져다준 소중한 시간이었다. 그리고 우리 봉사단원 전원은 그 곳에서 찍어온 사진을 보며 그 곳과 그 곳의 사람들을 추억하고 있다.

끝으로 이번 봉사활동을 위해 몇 달 전부터 철저하게 준비를 하시고 좋은 환경에서 좋은 일을 할 수 있도록 해주신 지용호, 김주욱 선생님, 봉사활동 내내 좋은 말씀 많이 해주신 처장님께 깊이 감사드리며 2006년 여름에 만들어진 나의 추억과 인연들을 소중히 간직하고 싶다.





[독자마당] 봉사활동으로 채워지는 꿈 영원히 미성년에 머물러 있을 줄 알았던 내가 성년이 되었다. 봉사활동을 즐겨 하던 어린아이는 어느덧 스물두 살의 대학교 3학년이 되어 ‘청소년’의 끝자락을 향해 가고 있다. 몇 년간 봉사해 오니, 이것이 적성에 맞는 것 같다는 작은 불씨 하나를 발견하게 되었다. 진로를 향한 작은 불씨는 단순히 봉사활동으로 뿌듯함과 성취감을 느끼는 것이 아닌, 직업으로 삼아 다양한 연령층을 위해 복지를 지원하고, 클라이언트의 기본적인 생활을 영위할 수 있도록 돕고 싶다는 큰 불씨로 번지게 되어 사회복지학과에 진학하였다. 대학교에서 한 첫 봉사활동은 학교에서 진행하는 독거노인분들께 ‘편지 작성 및 생필품 포장, 카네이션 제작’이었다. 비록 정기적인 봉사는 아니었지만, 빼곡히 적은 편지를 통해 마음을 전해 드릴 수 있었기에 뜻깊음은 배가 되었다. 하지만 조금의 아쉬움은 있었다. 봉사활동이라고 하면 직접 대상자와 소통할 줄 알았는데 해당 봉사는 대상자와 면담하지 못하고, 뒤에서 전달해 드리는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가장 기억에 남는 봉사활동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장애아동어린이집‘에서 활동한 겨울 캠프 활동 보조일 것이다. 이곳에서 가장 힘들었던 것은 아동들이 다른 길로 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