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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험 계명의 현장

국외봉사활동을 다녀와서…….

이력서에 한 줄 더 쓰려는 욕심이었을지도 모른다. 백두산 간다기에 무작정 지원한건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이것도 저것도 아니고 친구 따라 강남 가는 심정으로 그냥 지원한건지도 모르겠다. 지원 마감일에 부랴부랴 지원서를 낼 때도 큰 기대 없이, 큰 욕심 없이 뒤돌아 나올 수 있었다.

몇 일후 합격자 통지가 있었다. 합격자 명단 끝자락에 내 이름이 보였다. 같이 지원한 친구 녀석들 이름은 보이지 않았다. 덜컥 겁이 나기 시작했다. ‘나 혼자 합격한 건데 친구들한테 미안해서 어쩌지?’, ‘내가 갈만한 자격이 되나?’, ‘주위에서 하자고 해서 같이한 것 빼고 자원봉사는 처음인데 어쩌지?’, ‘여권도 없는데 혹시 여권발급 안 되는 것 아냐?’ 이런 막연한 두려움들은 막상 중국 땅을 밟을 때 까지, 봉사활동을 시작할 때까지 계속 나를 따라다녔던 것 같다.

6월 29일. 많은 분들에 격려와 배웅을 뒤로하고 대구공항에서 중국으로 출발했다. 봉사단원들 얼굴에는 다들 설렘으로 가득해 보였다. 뭔가 단체로 국외여행 가는 기분도 들고, 기말고사 이후 오랜만에 만나서 그런지 어색하면서도 반가운 마음에 어수선하게 웃고 떠들었다. 그 속에서 나도 긴장이 풀리고 여유가 조금 생겼지만, 역시 아직까진 움츠려만 지는 느낌이었다.

본격적인 봉사 활동은 6월 30일부터 시작되었다. 봉사 활동 장소인 '흥안소학교‘는 조선족 학생들이 주로 다니는 학교로 우리말과 글이 통하는 우리 동포가 다니는 학교였다. 그곳에서 우리 봉사단이 한 봉사활동은 크게 2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교육 환경 개선’이란 이름으로 진행된 육체적 봉사활동과 함께 ‘문화 봉사’라는 이름으로 진행된 여러 가지 공연들이 그것이다.

처음에 시작한 봉사 활동은 기숙사 뒤편에 텃밭으로 파밭을 일구는 것이었다. 작업 준비를 하고, 작업반장님의 지시에 따라 본격적인 봉사활동이 시작된 것이다. 나는 내 맡은바 임무인 사진 촬영으로 봉사 활동을 시작했다. 기록은 기억을 지배한다는 광고 카피처럼 우리 봉사단의 뜻 깊은 봉사활동을 제대로 남겨야 한다는 생각으로 한 컷 한 컷 찍어나갔다. 한 컷 두 컷 촬영해 나가면서 그동안의 긴장과 두려움은 사라지기 시작했다.

많이 준비했고, 다른 많은 사람들과 함께 하는 봉사활동이었다. 나 혼자 아무 길잡이 없이 횡단하는 사막이 아니었던 것이다. 때로는 카메라로 봉사단 활동을 찍고, 때론 같이 삽자루를 들면서 같이 땀 흘리고 같이 쉬면서 그렇게 맡은 바 임무를 열심히 하면 된다는 걸 알게 되었다. 일이 진행됨에 따라 파밭뿐만 아니고, 분수대 건설 마무리작업도 하고 유치원 페인트 도색작업도 하고 제초작업도 하고…….

여러 가지 흥안소학교에 도움이 될 만한 일들은 하나라도 더 해주고 싶었다. 모두들 하루하루 시간이 너무 빨리 감에 아쉬워했다. 좀 더 도움을 주고 싶은데, 찾아보면 도움이 필요한 일이 좀 더 있을 텐데……. 아직도 아쉬움으로 남는다.

문화 봉사 활동으로는 크게 2번의 정식 공연이 있었다. 한번은 흥안소학교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공연이었고, 다른 한번은 유치원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공연이었다. 중국을 오기 전에는 ‘문화 봉사 잘할 수 있을까? 전문가가 아닌 아마추어들인데?’란 생각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공연을 직접 보자 쓸 때 없는 걱정이었다는 생각임을 알 수 있었다. 낯선 사람들 앞에서 서먹서먹하고 어색한 모습의 아이들이 마술쇼를 시작으로 달라지기 시작했다. 마술 하나하나에 신기해하고 놀라는 모습에 순수한 아이들을 느낄 수 있었다. 마술쇼에서 달아오른 분위기에 구연동화 ‘팥죽할머니와 호랑이’ 공연이 이어졌다.

봉사 단원들 연기 하나하나에 아이들은 깜짝 놀라기도 하고, 자지러질듯 웃기도 하고 너무나 즐거워하는 모습들이었다. 공연 후에는 풍선아트 순서로 아이들 앞에서 직접 풍선으로 강아지, 꽃 같은 것도 만들어주고 준비한 선물도 증정했다. 아이들의 즐거워하고 좋아하는 모습을 보며 우리가 육체적으로 한 봉사활동보다 이런 문화 봉사 활동이 더 뜻 깊고 중요한 활동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흥안소학교에서 짧은 봉사 활동을 마치고 몇 일간 문화 탐방의 기회가 있었다. 중국으로서는 변방인 연변지역은 국경지대로 러시아, 북한과 맞닿아 있는 곳이다. 또한 역사적으로 일제 강점기에 많은 독립 운동가들이 활동하던 근거지이기도 했다. 백두산은 물론이고 망해각, 대성중학교 어느 한곳도 분단 조국의 현실과 옛 독립운동의 흔적들로 가득했다. 북경에서도 만리장성, 천안문 광장, 자금성 등 많은 유적지를 봤지만, 사실 그리 큰 감동으로 다가오지 못했다. 백두산 천지에서 그 벅찬 감동과, 왜 우리가 중국 쪽에서 백두산을 오르며 ‘장백산’이라고 불러야 하는지…….

우리 땅도 아닌 타국에서까지 나라 독립을 위해 노력하던 분들의 흔적들. 말로 다 표현 못할 그 진한 감흥에 절로 고개가 숙여졌다.

봉사활동에서 느꼈던 나눔의 기쁨도, 문화 탐방 기간 동안 보고 느꼈던 감흥들도 아직 내 가슴속에 생생하다. 같이 땀 흘리고, 같이 일하고, 같이 쉬고, 같이 먹고, 같이 잠들던 봉사 단원들의 숨결이 아직도 느껴진다. 정신없이 바쁘게 지나간 12박 13일간의 일정이었지만, 나는 이것이 ‘끝’이 아니고 ‘시작’임을 믿는다. 어쩌면 나의 용기 없음으로 시작 못했던 일들을 이번 국외 자원봉사활동 참가로 시작할 수 있었다.

분명히 아직도 몇 주 전의 나처럼 지례 겁을 먹고 시작조차 못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큰 도움 안 되는 글이지만 망설이고 있을 그런 사람들에게 시작하는 계기가 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마지막으로 국외봉사단 모두들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끝이 아닌 시작으로, 아자 아자 파이팅!!!





[독자마당] 봉사활동으로 채워지는 꿈 영원히 미성년에 머물러 있을 줄 알았던 내가 성년이 되었다. 봉사활동을 즐겨 하던 어린아이는 어느덧 스물두 살의 대학교 3학년이 되어 ‘청소년’의 끝자락을 향해 가고 있다. 몇 년간 봉사해 오니, 이것이 적성에 맞는 것 같다는 작은 불씨 하나를 발견하게 되었다. 진로를 향한 작은 불씨는 단순히 봉사활동으로 뿌듯함과 성취감을 느끼는 것이 아닌, 직업으로 삼아 다양한 연령층을 위해 복지를 지원하고, 클라이언트의 기본적인 생활을 영위할 수 있도록 돕고 싶다는 큰 불씨로 번지게 되어 사회복지학과에 진학하였다. 대학교에서 한 첫 봉사활동은 학교에서 진행하는 독거노인분들께 ‘편지 작성 및 생필품 포장, 카네이션 제작’이었다. 비록 정기적인 봉사는 아니었지만, 빼곡히 적은 편지를 통해 마음을 전해 드릴 수 있었기에 뜻깊음은 배가 되었다. 하지만 조금의 아쉬움은 있었다. 봉사활동이라고 하면 직접 대상자와 소통할 줄 알았는데 해당 봉사는 대상자와 면담하지 못하고, 뒤에서 전달해 드리는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가장 기억에 남는 봉사활동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장애아동어린이집‘에서 활동한 겨울 캠프 활동 보조일 것이다. 이곳에서 가장 힘들었던 것은 아동들이 다른 길로 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