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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험 계명의 현장

제9회 교양도서 독후감 경시대회 최우수작

『아큐정전』을 읽고정체성(正體性)과 정체성(停滯性)의 차이

제9회 교양도서 독후감 경시대회 최우수작

『아큐정전』을 읽고 부제 : 정체성(正體性)과 정체성(停滯性)의 차이
이장희(경영대학 1년)


정체성(正體性)이란 변하지 아니하는 존재의 본질을 깨닫는 성질. 또는 그 성질을 가진 독립적 존재를 말한다. 더 나아가서는 자아정체성이라 불리며 굳게 자리 잡아 한 사람이 발전해 나아갈 밑거름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아Q정전에 실린 <광인일기>, <약>, <아Q정전>, <복을 비는 제사>등의 4편의 단편소설에 나오는 등장인물들은 정체성(正體性)을 갖고 있는 것이 아니라 정체성(停滯性)을 띠고 있다. 즉, 발전이 없이 멈추어서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다.

등장인물들의 정체성(停滯性)을 띠고 있는 이유는 크게 네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는데 그 첫 번째는 자기합리화의 일상화이다. ‘아Q정전’의 아Q는 자신보다 강한 사람에게 약한 모습을 보이고 약한 사람에게 강한 척하는 비겁한 태도를 취한다. 짜오 어르신이나 동네 건달 등 힘이나 권력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따귀를 맞아도 군말 않고, 아Q 자신을 버러지라고 부르는 등의 자기 비하적 태도를 서슴없이 취하면서 비구니나 우어멈 등의 약하고 저항할 힘이 없는 사람들에게는 치근대며 자신의 힘을 과시한다. 강한 사람들 앞에서의 자기멸시도 약한 사람들 앞에서의 자기과시도 모두 ‘난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며 반성 대신에 말도 안 되는 자기합리화를 일삼는다.

두 번째는 미신의 신봉이다. <약>에서는 라오수안 내외가 사람의 피를 묻힌 만두를 먹으면 병이 깨끗하게 낫는다는 터무니없는 소문을 믿고 결국은 아들을 죽음으로 내몰았으며 <복을 비는 제사>에서는 쓰 아저씨네 부부가 1년에 한번 성대하게 치르는 제삿상은 과부의 손을 거치면 부정한 운을 탄다며 샹린댁을 제사와 관련된 일은 어떤 것에도 손을 대지 못하게 해서 그녀를 공황상태로 만들었다. 현상이나 정보를 비판적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진위여부에 관계없이 그저 타인을 희생해서 자신의 ‘복’을 만드는 무척이나 단순하고도 이기적인 행위일 뿐이다.

세 번째는 일관성의 결여-군중심리이다. 단편소설들에 나오는 인물들은 주변인들의 행동에 따라 줏대없이 자신의 가치관마저 바꾼다. 아니, 아예 자신만의 생각이라는 것이 없다. 이것은 단편소설 3편에 고루 나타나있다. <아Q정전>과 <복을 비는 제사>에서 아Q와 샹린댁에 대한 한 사람의 태도가 마을사람 전체의 태도로 바뀌는 점이 그러하다. 아Q가 웨이주앙에 있었을 때 그를 무시하는 태도가 비단 건달들이나 짜오어르신, 치엔어르신의 큰아들뿐만 아니라 마을 사람들 전체에 만연해있었다. 그러나 아Q가 웨이주앙을 떠났다 돌아왔을 때 아주 잠깐이었지만 짜오 어르신의 태도가 바뀌자 뭇 아낙네들부터 시작해 모든 사람들이 그를 존경의 대상으로 바라보기도 했다. 또 샹린댁이 재가한 후 아들을 잃고 다시 루진으로 돌아왔을 때 모두 그녀를 피하다가 그녀의 얘기를 듣고 다시 동정과 연민의 눈길을 보낸 것,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샹린댁을 멸시한 것 그리고 <광인일기>에서 모씨의 동생이 살고 있던 동네 사람들 중 몇몇은 그의 미친 소리가 무엇을 뜻하고 있는지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게 하니까’ 나 하나쯤의 행동은 나쁘지 않겠지 라는 생각으로 악습을 되풀이 하는 것 등이 등장인물 중 누구하나 할 것 없이 모두 자신의 태도에 일관성을 부여하지 못하고 그저 주위 사람들에게 휩쓸려 다님을 알 수 있다.

네 번째는 다수에 의한 횡포이다. 이는 <광인일기>에서 가장 잘 드러난다. 이 작품은 ‘미친 사람만이 현실을 제대로 직시하는 아이러니와 그것에서 비롯되는 비극’을 드러내고 있다. 옳은 소리를 하는 사람은 오직 모씨 형제의 아우뿐이지만 그를 제외한 모든 사람들, 즉, 다수는 인정하고 싶지 않은 바른말을 오직 ‘여러 사람’ 이라는 이유만으로 정직한 눈을 가진 사람을 미친 사람으로 매도하고 말았다. 곧 ‘소수=광인’인 그들 나름의 공식을 세워 자신들이 보기 싫은 진실을 정당하지 못한 방법으로 가려버리는 무자비한 횡포를 저지른 것이다. 작품 속에서는 모씨의 아우가 피해망상증을 가짐으로 인해 다른 모든 사람들이 그를 업신여기고 미친 사람 취급을 했다. 그렇지만 그가 하는 말은 틀리지 않았다. 지긋지긋한 악습을 되풀이 한다는 내용을 단지 사람을 잡아먹는다는 말을 써서 표현했을 뿐, 그는 전혀 미치지 않았다. 왜냐하면 작품 중 그의 대사에 안 된다는 걸 알고 있지만 여전히 먹으려고 하는 자들이 있다는 부분이나 사람을 먹어본 적 없는 아이들을 구하라는 부분 등 작품의 곳곳에서 ‘사람을 먹다’를 ‘악습을 행하다’로 바꿔서 끼워 맞춰보면 신기하게도 맞아 들어가기 때문이다. 또한 드러내놓고 국민성을 고치자는 말을 할 수 없는 상황이기에 루쉰이 부러 생뚱맞게 사람을 먹는다는 개념을 삽입한 것 일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 외에도 등장인물들의 정체성이 모호하며 현실회피의 태도를 취함을 알아챌 수 있는 구절들이 곳곳에 숨어 있다. ‘아Q는 성명과 본적이 모호할 뿐 아니라, 이전의 ‘행적’도 모호했다.’(p.59),'그저 하늘과 땅의 신들이 제물과 향연을 흠향하고, 곤드레만드레 취하여 공중에서 비틀거리면서 루진의 사람들에게 무한한 복을 내려줄 차비를 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질 뿐이었다.’(p.136) ‘다른 한 부류는 잡아먹어서는 안 된다는 걸 알고 있으나 여전히 먹으려고 하는 자들이다.’(p.30) 등의 부분들이 말해준다. 이제까지 제시한 이유들의 공통점은 바로 옳지 못한 행동을 하면서도 그것이 잘못됐다는 의식을 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아Q정전에 실린 단편소설들을 읽고 독후감을 작성하면서 정체성이 가지고 있는 의미에 대해 한 번 더 생각해보는 기회를 가지게 되었다. 저자인 루쉰은 그의 나이 15세 때 아버지의 죽음을 이유로 친척들에 의해 억울하게 누명을 씌인 이후 인간에 대한 회의적 감정을 갖게 되었다. 그리고 그 뒤 일본에서 유학생활을 하며 중국의 국민성에 대한 문제점을 뼈저리게 느끼게 된다. 그래서 곧 그는 ‘문학을 통한 계몽 운동’에 착수하게 된다. 그래서 아Q정전은 신해혁명 당시의 혼란했던 중국의 상황을 눈으로 보고 온 몸으로 겪었던 지은이의 고뇌와 변화를 촉구하는 목소리로 점철되어있고 더 나아가서 나로 하여금 나와 현대 사회의 정체성에 대해 고민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우선 개인적으로는 지금 이렇게 등장인물들의 태도를 비판하고 있지만 정작 나는 정체성(停滯性)을 띠고 있지는 않은지 이제까지 나의 행동을 되돌아보는 계기였다. 그리고 나의 정체성(正體性)을 확립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나름의 방법을 구상해보았다. 자신이 무조건적으로 옳다는 생각을 버리고 허황된 미신이나 소문, 선입견에 대해서는 비판적인 자세를 취하며 (물론 다른 사람의 말을 귀담아 듣는 것도 필요하겠지만) 올바르다면 소수의 의견도 수렴할 줄 알고 자신만의 가치관을 정립해서 이리저리 휘둘리지 않는 태도를 갖추어야 비로소 나의 정체성(正體性)을 찾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내가 아는 한 이렇게 바람직한 정체성을 가진 인물에는 허구속의 인물 한 명과, 실재하는 인물 한 명이 있다. 나의 이러한 다짐은 <약>에 나오는 위얼의 모습에서 깊은 감명을 받아 우러난 것이다. 그는 자신의 죽음을 무릅쓰고 자신의 가치관을 위해 목숨을 바쳤다. 허황된 미신이나 소문(위얼의 신념과 반대되는 개념의 정치적 가치관-당시 중국 안에서의 혁명을 반대하는 세력이나 그에서 비롯된 악질의 루머들)에는 신경도 쓰지 않고 오직 정립된 자신의 가치관에 의존하여 흔들리지 않고 올곧게 자신을 지켰던 것이다. 이와 비슷하게 정체성을 확립한 인물에는 익히 잘 알려진 영화배우 이준기氏가 있다. 그는 연예인이 되기 위해 무작정 서울로 올라온 후에 그를 유혹하는 허황된 소문에 흔들리지 않고 가고 싶어 했던 대학에 몇 번 이나 고배를 마시면서도 자신의 꿈을 위해서 줄곧 배우의 길 만을 걸어왔다. 그는 배우가 된 후에도 줄곧 그를 비판하는 사람들의 의견을 모두 수렴하는 건강한 가치관을 지니고 있다.

또한 <아Q정전>에는 개인뿐만 아니라 지금 한국 사회의 모습에 비추어 자기반성을 불러일으킬 점이 참 많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현대 사회에는 문명이 발달됨에 따라 ‘개인주의’와 ‘1人 생활문화-혼자서도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생활문화’가 보편화되어 이기주의가 만연해있다. 사람들은 “나만 아니면 돼” 혹은 “다른 사람들도 다 그렇게 하잖아” 라는 핑계로 자기합리화를 일삼는다. 한국인의 정체성을 잃고 무작정 영어에만 매달리는 비뚤어진 교육열, 서구화된 얼굴을 선호하는 여성들 등이 알맞은 사례이다. 그리고 경제적으로는 광복 이후 자유경제체재가 발전되어오면서 고용의 불안정성과 몇 차례 경제 위기를 겪으며 심약해진 사람들의 마음에 미신의 신봉이 점점 더 자리를 키워가고 있다. 그 결과 요즘 들어 사이비 종교의 개수가 부쩍 늘어나며 기승을 부리고 있다. 일관성의 결여 측면에서는 정부의 정책 측면에서 말할 수 있는데 우리나라처럼 교육 정책이 일관성 없는 나라가 또 있을까 싶을 정도로 권력층의 성향이 바뀔 때 마다 손바닥 뒤집듯 몇 년 사이에 교육 정책은 홱홱 바뀌고 있다. 교육은 백년지대계라는 말이 있다. 일관성이 가장 결여된 분야이자 가장 필요한 분야가 아닐까 싶다. 멀리서 찾아보지 않아도 다수의 횡포는 쉽게 발견된다. 누구든 학교 다닐 때 소위 왕따라고 불리우는 학우들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그들은 절대적 소수이기 때문에 물리적 힘으로는 다수를 당해낼 수 없다. 그래서 항상 억압받고 미움 받고 배척당한다. 이런 왕따 현상은 현대로 올수록 강도가 심해지고 빈도수도 늘어나고 있다. 자의로 왕따가 되는 사람은 없다. 그들은 다수의 횡포에 희생된 피해자일 뿐이다.

책 한권을 읽고 나서 느낀 점이 참 많다. 소설들 속의 등장인물들을 타산지석으로 삼아 올바른 정체성을 찾을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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