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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 사실이 절대 불변의 진실 아닐 수도 있다는 의문”

제19회 교양도서 독후감 경시대회 최우수 작품 (역사란 무엇인가 - 에드워드 카 저)

교양교육대학이 주최한 ‘제19회 교양도서 독후감 경시대회’가 우리학교 재학생을 대상으로 작년 10월 29일부터 11월 5일까지 열렸다. 이번 대회는 계명교양총서인 ‘아큐정전’, ‘역사란 무엇인가’, ‘유토피아’, ‘일반인을 위한 서양음악의 이해’ 중 하나를 선정해 독후감을 쓰고 제출하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이번 대회에는 총 3백1편의 독후감이 접수됐는데, 창의성·논리성·표현력 등을 중심으로 심사한 결과, 이건(관현악·1) 씨의 ‘역사란 무엇인가’가 최우수 작품으로 선정됐다. 그 외 우수 3명, 장려 6명, 가작 40명이 수상했다. 최우수작인 ‘역사란 무엇인가’를 본지 1104호 및 1105호에 나뉘어 게재한다.

- 엮은이 말 -


예술 고등학교에서 바이올린을 전공한 탓에 일찍부터 체계적인 글쓰기교육을 받지 못한 내게 『역사란 무엇인가』 독후감은 사실 무모한 도전이었다. 이번 학기 <교양세미나와 글쓰기> 수업의 담당 교수님께서 교양서 네 권 가운데 『역사란 무엇인가』가 가장 어려우니 쉽지 않을 것이라 말씀하셨지만, <한국의 역사와 문화>수업에서 배운 내용들과 영화 <변호인>이 내게 남긴 강렬한 인상이 결국 나를 도전으로 이끌었다. 나에게 『역사란 무엇인가』는 대학의 필수교양수업의 교재인데도, 영화 <변호인>에서는 국가보안법에 저촉되는‘불온서적’으로 등장한다. 영화 속 주인공인 변호인 송우석은 저자인 에드워드 카(E, H, Carr)가 러시아 공산주의자가 아니라 민주주의 국가인 영국의 외교관이며 역사가라는 점, 한국의 국민들이 이 책을 많이 보기를 바란다는 영국대사관의 답변 등을 들어 검사의 주장이 틀렸다는 것을 밝히지만, 재판부는 변호인의 변론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내가 굳이 이 책으로 독후감 쓰기에 도전한 것은 바로 그것이었다. 그 영화가 단순한 픽션이 아니라 실화에 기반을 둔 것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30여 년 전 이야기라 하지만, 왜 이 책이 ‘불온서적’으로 지목받았을까? 반대로 말하면 아무리 30년의 세월이 흘렀다고 하지만, 공산주의를 적대시하는 것에는 변함이 없는 우리나라에서 ‘불온서적’취급을 받던 책이 이제 와서 대학의 교양도서로 널리 읽히는 까닭은 무엇일까? 나는 우선 이 점이 궁금했다.

하지만 호기심이 가져다 준 대가는 너무 가혹했다. 처음에는 지혜의 축복이나 마음의 안식 같은 것을 기대했지만, 막상 책을 펼쳐보니 그것은 열어 서는 안 되는 판도라의 상자 같은 것이었다. 모르는 단어들이 수없이 쏟아져 나왔고, 한 쪽을 읽는 동안 백과사전을 열 번도 더 찾아야 할 정도로 어려운 내용 두성이었다. 더더욱 나를 힘들게 하는 것은 페이지가 넘어갈수록 저자가 과연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점점 더 알 수 없도록 한다는 점이었다. 용어문제는 백과사전의 도움을 얻을 수 있었지만, 궁극적 주제가 무엇인가 하는 점에 대해서 나를 구원해 줄 것이 많지 않았다. 그래서 내가 수강하고 있는 역사 수업 교수님께 이 책의 주제에 대해 여쭈어 보았는데, 기대했던 답은 주지 않으시고 “우리들에게 일어나는 일들은 우연일까? 필연일까? 역사의 합법칙성이 있다는 말은 진리일까? 아닐까?”하시며 새로운 화두를 던지셨다. 조급함에 확답을 요구했지만, 돌아온 것은 인내심을 갖고 처음부터 끝까지 줄을 쳐가며 읽어보라는 것과, 랑케, 크로체, 에드워드 카의 역사학과 관련한 수십 쪽의 ‘더 머리 아픈’자료들이었다.

그래서 우선 그 자료들을 볼펜을 들고 줄쳐가며 읽고 난 후에, 다시 『역사란 무엇인가』를 펼쳐보니 처음과는 다르게 조금 알 듯 말 듯해졌다. 분명 한글인데도 도무지 알 수 없는 난수표처럼 느껴졌던 글들이 조금씩 읽어지기 시작하고, 이 말하다가 저 말하다가 횡설수설하는 것처럼 느껴지는 문장들이 왜 그런지 약간 이해되기 시작했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래! 이 책을 교과서처럼 생각하고 접근했으니 이해가 안 되었던 거야. 이 책은 에드워드 카의 일기장이야!” 다시 말해 나는 이제까지 『역사란 무엇인가』라는 이 책의 제목에 현혹되어 이 책을 통해 역사의 정의를 단박에 깨달을 수 있다고 기대했기 때문에 혼란을 겪었던 것이었다. 그것을 깨닫는 순간 나는 비로소 에드워드 카가 무엇을 말하고자 했는지 새로운 궁금증이 생겼고, 다시 첫 장을 뒤적이기 시작했다.

다시 읽다 보니 12쪽에서 액튼과 그의 동료들의 신념에 대해 논평한 구절 중 “모든 인간적 판단에는 인간과 관점이란 요소가 포함되므로 이 판단이든 저 판단이든 기껏해야 매한가지 이며, 객관적인 역사적 진리는 없다는 이론에서 피난처를 갖는다.”는 구절에서 눈이 멈췄다. 이게 무슨 말인지 처음에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객관적’이라는 단어를 곱씹어보니, 과거에 있던 역사가 오늘은 이랬지 만 내일은 저럴 수 있다고 이야기 하는 것 같아서, 지금까지 내가 배워온 역사적 사실이 절대 불변의 역사적 진실이 아닐 수도 있겠다는 의문이 들었다. 내가 알고 있는 역사가 어디부터 어디까지가 진실인지 거짓인지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고, 따라서 많이 혼란스러웠다. 더불어 에드워드 카가 왜 마지막 장에서 넓어지는 지평을 기대하고 있는지 알 듯 말 듯 했다.

일단 역사서에 적혀진 내용이 무조건적인 진실이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을 염두에 두고 계속해서 책을 읽어내려가보니, 14쪽의 “역사는 확인된 사실이 집합으로 이루어진다. 생선가게에서 생선을 입수하듯이, 사가는 문서나 비명 등에서 사실을 입수하여 집으로 가져와 자신의 구미에 맞게 요리하여 자신의 식탁에 올려놓는다.”는 말이 비로소 무슨 의미였는지, 액튼과 동료들의 신념에 대한 논평이 어떤 의미였는지 이해되기 시작했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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