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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험 계명의 현장

제5회 교양도서 독후감 경시대회 최우수작

『주홍글자』를 읽고...-칠링워스 그의 입장에서

제5회 교양도서 독후감 경시대회 최우수작

『주홍글자』를 읽고...-칠링워스 그의 입장에서



두 남녀의 사랑과 또 다른 한 남자의 집착을 중심으로 써 내려 간 주홍글자에 대해 일반적으로는 헤스터와 딤즈데일 두 남녀의 관계가 사랑인가, 불륜인가에 대해 많이 논쟁되어지곤 한다. 그러나 주홍글자의 작가 호손이 책 전반에 걸쳐 나타내고자 하는 것이 사랑이나 불륜 뿐 인 것은 아니라 보며 실제 책에서도 헤스터와 딤즈데일간의 사랑에 관한 내용은 거의 찾아 볼 수 없었다. 오히려 등장인물들 각자가 처한 상황과 그에 따른 각 인물들 간의 관계에 대해 구체적으로 서술하는 것을 더 중요하게 여기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자신의 죄가 밝혀짐으로서 속죄의 기회를 얻었던 헤스터와 그렇지 못한 딤즈데일 그리고 배신당한 후 이를 복수 하려고한 칠링워스. 이러한 각자가 처한 상황이 이들 세 사람의 관계를 연결해주는 연결고리가 되었다고 본다. 그리고 헤스터와 딤즈데일 이 두 남녀의 불륜이라는 상황으로 인해 칠링워스와 그들 사이에 복수를 하려는 자와 그 복수의 대상이라는 관계가 형성된다. 이들의 이러한 관계에 대해 흥미가 생겼고 헤스터나 딤즈데일과의 관계에 비추어 칠링워스에 대해 이야기 해보고자 한다.


이 책에서 칠링워스는 본래 온화한 성격의 소유자였으나 아내의 외도 사실을 알게 되면서 그 충격으로 점차로 냉혹하고 파괴적인 성격파탄자로 변하게 된다. 또한 악마로 비유될 정도로 철저히 악역을 맡고 있기도 하다. 이러한 모습이 책을 읽는 내내, 그리고 책을 다 읽은 후 까지도 계속해서 그가 헤스터나 딤즈데일보다 오히려 인상적으로 기억에 남았다. 이러한 이유로 불륜을 저지른 아내, 그리고 불륜의 상대인 딤즈데일과의 관계에 비추어 그의 이러한 급격한 성격 변화에 대해 그리고 왜 사랑과 복수에 그토록 강렬한 집착을 하였는지 또한 그가 정말 악인 이었나 그의 입장에서 한번 생각해 보고 싶다.

칠링워스는 자신의 사랑하는 아내가 사실 자신을 사랑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고 또한 그녀에 대한 자신의 일방적인 사랑이 어리석었다고 스스로 잘못을 인정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결코 아내의 외도에 대해서는 용서 할 수 없었고 결국 복수를 결심하게 된다. 그런데 칠링워스는 아내인 헤스터에 대한 복수는 치욕의 상징인 주홍글자에 맡겨버리고 그녀의 불륜 상대인 딤즈데일에 대한 복수만을 집착한다. 이것은 딤즈데일에게 복수를 함으로서 그녀에게 간접적이지만 오히려 더 큰 고통을 줄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러나 칠링워스가 여전히 그녀를 사랑했기 때문에, 자신이 사랑하는 여인을 빼앗아간 딤즈데일에 대한 복수심이 더 강렬했던 탓이 아닐까? 이렇게 칠링워스의 복수의 화살은 헤스터가 아닌 딤즈데일에게로 향하게 된다. 그는 딤즈데일에 대한 복수로 그의 죄를 폭로하는 것도, 그리고 딤즈데일 그가 스스로 자신의 죄를 고백하는 것도 또한 원치 않았다. 오히려 딤즈데일의 죄가 폭로되는 것을 막으려 했다. 이는 딤즈데일이 죄의식에서 해방됨으로서 고통에서 벗어나는 것을 막는 것이 그의 정신과 영혼의 파괴를 야기 시키고 이로 인해 최고의 복수를 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 아닐까? 그는 자신이 받은 정신적인 고통을 딤즈데일 또한 받기를 원했던 것이다. 이렇듯 자신이 사랑하는 여인에 대한 집착과 그 여인을 빼앗아간 사내에게 복수하려는 집착이 온화하였던 그를 이토록 잔혹하고 냉담한 인간으로 변화 시켜버렸다.

그렇다면 어째서 칠링워스는 그토록 강렬한 집착을 보였는가 하는 의문이 든다. 여기서 집착이란 자신이 강렬히 사랑하는 사람의 부재로 인해, 사랑이 변질된 결과가 아닐까 생각해보았다. 그런데 이러한 집착이 강렬한 사랑에 따른 것이라는 것 자체가 결국 집착이라는 것이 절대적으로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 같다. 물론 그로 인해 상대방, 즉 헤스터에게 피해를 준 것은 분명 잘못한 일임이 틀림없다. 그렇지만 칠링워스 그에게도 그만한 이유가 있었던 게 아닐까? 그리고 딤즈데일을 향한 복수에 대한 집착도 사랑하는 여인을 빼앗아간 사내에게 어쩌면 너무도 당연히 가지게 되는 증오의 감정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볼 때, 이 또한 무작정 그를 악인이라고 비판하기에는 좀 더 생각해 볼 여지가 있다. 결국 칠링워스의 강렬한 사랑과 지독한 증오의 감정이 집착이라는 변질된 감정을 불러일으켰다 생각한다.

이렇게 칠링워스의 사랑과 복수에 대한 집착이 결코 부정적인 것만은 아님에도 불구하고, 그의 집착은 독자들에게 그를 악인으로 여기게끔 만든다. 그러므로 그의 이러한 집착과 관련해 그가 단순히 악인인가에 대해 칠링워스의 입장에서 좀 더 객관적으로 평가해 볼 필요가 있다고 본다. 그리고 먼저, 누군가의 입장에서 본다는 것은 그 전에 반대의 입장 또한 충분히 알고 있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 의미에서 먼저 헤스터 그녀의 입장에서 보자면, 그녀에게 있어 칠링워스는 더 없는 악인이라 할 수 있다고 본다. 그녀는 칠링워스와 함께 했던 삶 전체를 부정했으며 또한 그녀로 하여금 그녀가 행복한 삶을 살고 있다고 믿게 한 것이 그의 가장 큰 죄악이라고 그녀는 말했으며, 딤즈데일에 대한 지독한 복수 역시 용서 받을 수 없는 행위라 말하고 있다. 이렇게 말한 것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다. 왜냐하면 칠링워스는 일방적인 사랑만으로 젊고 아름다웠던 그녀에게 행복을 강요하여 그녀를 불행하게 하였고, 또한 그녀가 사랑하는 이를 치유될 수 없는 고통에 빠뜨렸기 때문이다. 이러한 고통을 당하는 입장에 서게 된다면 누구라도 분명 칠링워스를 저주 하고 증오할게 뻔한 일이다.

이런 식으로 이 책에서는 사랑하는 여인에 대한 배신감과 변질된 사랑 그리고 복수에 대한 집착이 그를 철저히 악역으로 몰고 가는 듯 하다. 그렇다 그는 책 전반에 걸쳐 부정적으로 묘사되며, 대부분의 독자들은 주름진 얼굴과 기형적인 몸을 가졌고 주인공들의 순수한 사랑을 갈라놓는 칠링워스를 전형적인 악당이라 볼지도 모른다. 그러나 칠링워스의 입장에서 좀 더 객관적이고 현실적으로 이들 세 사람의 관계를 직시하자면 과연 누가 악당인지 명확히 말할 수 있을까?
요즈음 세계적으로 간통죄가 폐지되고 있는 추세라고 하지만 간통에 대한 부정적 시각은 아직도 여전 하다고 본다. 윤리적인 면을 강조하는 대한민국에서 태어나 교육받으며 자라온 나로서는 더욱 부정적인 시각을 가질 수밖에 없으며 또한 대부분의 사람들 역시 마찬가지로 부정적인 시각을 가질 것임을 확신한다. 그 누구라도 자신이 사랑하는 이가 자신을 배신하는 것을 원치 않을 것이고 또한 이를 용서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이렇듯 현대 사회에서도 그러하듯이 그 당시 사회적으로도 부정하게 비추어지는 헤스터와 딤즈데일 두 남녀의 불륜이 잘못 된 것이 틀림없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아름답고 순결한 사랑으로 승화시키기 위해서 칠링워스 그가 어쩔 수 없이 악역을 맡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여기서 알 수 있듯이 분명 칠링워스의 입장에서 보면 그는 오히려 피해자이고 불행한 인물이다. 그런데도 이렇게 악당 취급을 당하며 두 사람의 사랑을 더욱 부각시키는 역할로만 보여 지고 있는 칠링워스 그의 입장을 변호하는 것이 그에게서 슬픔과 연민을 느낀 독자로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라 본다. 물론 헤스터와 딤즈데일, 이 두 사람의 사랑을 전적으로 부정적으로만 보는 것은 아니며 그들의 입장 또한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사랑이라는 감정은 자연스러우며 원초적인 것이기 때문에 그러한 감정에 충실 하는 것은 본능에 충실 하는 것으로 당연한 일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이러한 사랑이 그 사회의 통념에 어긋나게 될 경우 문제가 생기게 되는데, 축복해 줄 수만은 없는 이러한 사랑으로 인해 피해를 받게 된 칠링워스라는 인물이 무작정 비판을 받을 이유는 없으며 그 또한 피해자라고 말하고 싶을 뿐이다.

또한 헤스터의 입장에서 그녀가 아무리 칠링워스로 인해 불행하였고, 딤즈데일 그의 입장에서 역시 그가 아무리 칠링워스로 인해 고통 받았더라 할지라도, 그들 역시 결코 칠링워스를 악인으로만 볼 수 없을 것이다. 헤스터도 딤즈데일도 마찬가지로 칠링워스에게 크나큰 고통을 안겨 주었기 때문이다. 물론 칠링워스의 일방적인 사랑에 대한 집착과 과한 복수심이 그 스스로를 악인으로 몰고 가고 있으며 뿐만 아니라 냉혹하게 변한 그의 성격 역시 그를 악인으로 몰고 가지만, 헤스터와 딤즈데일 두 남녀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인 펄은 칠링워스에게 있어서는 불행의 산물이자 부정하고 싶은 존재인데도 불구하고, 그가 죽은 후 막대한 유산을 남긴 것을 보아 그의 내면 깊숙한 곳에 여전히 온화한 마음이 남아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결국에는 헤스터와 딤즈데일에 대해 어느 정도 비판적인 나로서는 두 사람이나 칠링워스나 다를 바가 없다고 생각한다. 헤스터도 딤즈데일도 그리고 칠링워스도 마찬가지로 서로에게 크나큰 고통과 슬픔을 안겼다. 남에게 준 상처가 크고 적은 것을 떠나 상처를 줬다는 자체가 옳지 못한 행동이라 본다. 그러나 인간이라면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지 않고 살아가는 것은 극히 어려운 일이다. 어떻게든 남에게 상처를 주기 마련인 것이다. 인간이란 결국 서로에게 상처를 주며 살아가는 동물이 아닐까? 중요한 것은 그 상처를 보듬어 주고 또한 용서 해주는 것이라 여겨진다. 결국 칠링워스 그가 진정으로 악역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자신에게 상처를 준 이들, 즉 헤스터와 딤즈데일 이 두 사람을 용서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한 게 아닐까 생각한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서로에게 준 상처 또한 말끔히 치유되지 않을까?


사랑하는 아내의 배신으로 냉혹하게 변한 사내, 결코 악인이라고만 생각할 수 없는 사내 칠링워스. 각자가 보는 관점이 모두 다르듯이 작가가 보는 관점과 내가 보는 관점 또한 분명 다를 것이다. 이 책에서는 칠링워스가 사랑과 복수에 집착하며 냉혹하고 잔혹한 인간이며 악마 같다는 식의 부정적인 이미지로 드러나는데, 만약 내가 주홍글자라는 책을 쓴 작가였다면 그의 입장에서 일방적인 사랑에 집착한 사내가 아닌 정열적이고 순수한 사랑을 한 사내, 복수심에 불타는 악인이 아닌 상처받고 버림받은 가여운 인물인 칠링워스를 그려보고 싶다. 이렇게 작가와는 또 다른 관점에서 칠링워스를 바라보고 또 그에 대해 글을 써 보는 것은 나에게 매우 흥미로운 경험이었다. 조금이나마 칠링워스에게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었고 또한 그의 이러한 슬픔과 고통을 다른 누군가에서 알려줌으로서 내가 느끼는 그에 대한 연민을 공유할 수 있다는 것은 분명 매우 기쁜 일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