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맑음동두천 -14.4℃
  • 구름많음강릉 -9.0℃
  • 맑음서울 -13.1℃
  • 대전 -11.1℃
  • 맑음대구 -7.5℃
  • 맑음울산 -7.0℃
  • 광주 -5.8℃
  • 맑음부산 -6.1℃
  • 흐림고창 -5.6℃
  • 제주 0.9℃
  • 맑음강화 -13.1℃
  • 맑음보은 -10.9℃
  • 구름많음금산 -9.0℃
  • 흐림강진군 -3.8℃
  • 맑음경주시 -8.0℃
  • 구름많음거제 -4.7℃
기상청 제공

체험 계명의 현장

내 인생의 잊지 못할 12박 13일

12박 13일의 잊지 못할 봉사활동을 끝내고 한국에 돌아왔을 때 그 허전함이란, 서로 헤어지기 싫어서, 서로 먼저 떠나기가 아쉬워서 본관 앞에서 머뭇거리던 시간들, 활짝 웃으면서 우리들의 마지막 사진을 찍고 싶었지만 눈물이 흘러 해맑게 웃지 못했다.

문득 우리가 처음 만났을 때가 생각난다. 그렇게 서먹서먹했던 우리가 지금은 우리의 추억을 함께 그리워한다. 돌아온 지 단 하루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12박 13일의 즐거웠던 추억이 마치 한 폭의 그림같이 흘러간다.

부푼 가슴을 안고 도착한 중국 연길공항, 우리를 반겨준 사람들 중 가장 눈에 띄는 이들은 색동옷을 곱게 차려입은 조선족 남학생과 여학생이었다. TV에서 개그맨들이 따라하던 그런 독특한 억양의 한국말을 쓰던 두 아이들. 비행기를 타고 몇 시간을 날아왔는데 한국이 아닌 장소에서 한국말로 서로 대화를 해도 전혀 어색하지 않게 통하는 우리 동포가 있다는 사실에 감동했다. 뿐만 아니라 외국인이 아닌 우리 동포들을 위하여 봉사활동을 한다는 것 자체가 봉사를 임하는 나의 마음을 더욱 뿌듯하게 만들어 주었다.

봉사활동 중 여러 가지 작업을 했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잡초 뽑기! 오죽하면 우리가 중국에서 돌아와 해단식을 하기 위해 우리 학교를 다시 들어섰을 때 아주머니들께서 풀을 뽑으시는 것을 보고 우리 여학생들은 왠지 모를 사명감을 가지고 학교를 위해 학교 잡초 우리가 다 뽑자고 결심했을까?

잡초 뽑기가 가장 기억에 남는 이유가 있다. 남학생들은 유치원안 페인트칠을 열심히 벗겨내고, 여학생들은 유치원 앞 잡초 뽑기 작업을 하는 날이었다.

오순도순 모여서 수다떨어가며 잡초 뽑기를 재밌게 하고 있었다. 잡초를 열심히 뽑아서 모아 버리고 또 뽑고 잡초를 뽑는다고 뽑았는데 뭔가 너무 짧고 너무 쉽게 뽑히는 느낌을 느꼈다. 뭐지 하고 봤더니 아니 이건 흑 회색의 죽은 mouse…….소리를 꺄악 질렀더니 공 일남 과장님이 스윽 치워주시면서 하시는 말씀. “감상문에 적어~!” 그 날 정말 이건 감상문에 꼭 적어야지 생각했다. 내가 언제 쥐 털을 또 뽑아 보겠는가.

흥안소학교에서 정말 너무나도 순수한 아이들을 만나면서 우리가 조선족이라는 이름으로 그들과 우리의 선을 긋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순수한 아이들이 고사리 같은 손으로 우리에게 선물을 주었다. 처음으로 받은 “새우깡”도 아닌 “새우깡” 은 절대 잊지 못할 것이다. 아이들이 유리병에 든 작은 편지지를 선물 해 줬을 때, 내가 되레 돌려주면서 “여기다가 다시 편지 써서 다시 줄래?” 라고 했더니 서로 편지지 받으려고 손들던 여자아이들의 얼굴이 잊혀지지 않는다. 얘들이 써온 편지엔 “저 잊지 마세요. 사랑 요.” 조심스럽고 또한 예의바른 그들의 사랑언어 “사랑 요” 는 우리들의 유행어가 되었다.

봉사활동 마지막 날, 내 눈치를 보며 우물쭈물 하는 한 소녀를 보았다. 내가 나왔더니, 예쁘게 꽃을 단 직접 만든 듯한 상자를 내게 건네주었다.

“난 아무것도 준비한 것이 없는데…….미안해서 어떻게…….” 그랬더니, “일 없슴다. 오늘이 마지막으로 볼 수 있는 날이잖아요. 앞으로 볼 수도 없는데…….”

정말 그 아이와 나는 앞으로 살아가면서 절대 만날 수 없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린 단 한번 만났지만 나에게 잊을 수 없는 기억의 한 부분이 되었다. 나도 그 아이의 기억에서 잊혀지지 않는 사람이 되기를 바란다.

이번 봉사활동을 통해 내가 얻은 가장 값진 것은 바로 사람과 사람사이의 인연이다. 지역은 틀리지만 같은 언어를 쓰는 사람들과 어쩌면 살아가면서 말 한마디 못 건넬 수도 있었던 33명의 사람들이 만나서 12박 13일이란 길지도 짧지도 않은 시간을 가족보다도 더 가깝게 지내면서, 나는 너무 소중한 것들을 얻었다. 내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점을 깨우치고 선배로써 또 후배로써 동료로써 상대방을 배려하는 마음을 배울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너무 받기만 한 봉사활동이었다. 한 사람에 적어도 한 가지 좋은 점씩 난 벌써 32개의 장점을 받아 배웠다.

누군가가 말했다. 우리는 연변 조선족 학생들에게 교육환경개선이라는 이름 하에 물질적인 봉사를 하러 왔다. 그렇지만 동시에 우리는 진심어린 마음의 봉사를 서로에게 하고 있는 것이라고. 이번 봉사활동이 내가 남에게 도움을 준 것보다는 오히려 너무 많은 것을 받기만 한 황홀한 경험이었다.

이번 국외 자원 봉사를 덕분에 내 인생이라는 나무에 큰 밑거름을 주었다. 사회에 나갔을 때는 절대 겪을 수 없다는 것을 나는 안다. 서로에게 바라는 것 없이, 정말 진심어린 충고와 따뜻한 말 한마디가 우리를 더욱더 단단히 묶어준 힘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문득 우리 작업반장님의 유행어 “여러분, 행복하십니까?” 이 물음이 떠오른다. 이 단 한 문장의 의문문이 많은 의미를 말해 주는 것 같다. 이런 물음을 받아 보기 전에 나의 행복에 대해서 한번 생각해 본 적이 있었던가? 난 정말 행복할까? 행복이란 것을 생각하기 보단 행복을 느낄 여유도 없이 그냥 그렇게 살았던 것 같다.

지금 나는 정말 행복하다. 내가 얼마나 행복한 지 말로 다 표현하지 못할 만큼 나는 내가 행복한 것이 느껴진다. 이 행복감을 함께 나누고자 주위 친구들에게 봉사활동 갈 기회가 있을 때 정말 놓치지 말고 꼭 지원하라고 만날 때마다 이야기 해준다. 사실 내가 그 이야기 할 때마다 친구들은 좀 의아해 한다. 봉사활동 고생하러 가는 건데 뭐 그리 좋으냐고. 정말 느껴보지 못한 이들은 우리가 얼마나 행복한지 모를 것이다. 오죽하면 이 멤버 그대로 봉사활동 한 번 더 가자는 의견까지 나오겠는가? 중국 봉사기간과 우리 33명 봉사 팀을 생각할 때마다 가슴이 벅 찬다.

가족처럼 정말 “사랑 합니다”라고 크게 말할 수 있는 32명을 알게 되고 서로 보고 싶어 안달 나서 얼굴만 봐도 그저 좋기만 한 소중한 인연들을 알고 또 계속 이어나갈 기회를 얻은 나는 정말 행복하다.





[독자마당] 봉사활동으로 채워지는 꿈 영원히 미성년에 머물러 있을 줄 알았던 내가 성년이 되었다. 봉사활동을 즐겨 하던 어린아이는 어느덧 스물두 살의 대학교 3학년이 되어 ‘청소년’의 끝자락을 향해 가고 있다. 몇 년간 봉사해 오니, 이것이 적성에 맞는 것 같다는 작은 불씨 하나를 발견하게 되었다. 진로를 향한 작은 불씨는 단순히 봉사활동으로 뿌듯함과 성취감을 느끼는 것이 아닌, 직업으로 삼아 다양한 연령층을 위해 복지를 지원하고, 클라이언트의 기본적인 생활을 영위할 수 있도록 돕고 싶다는 큰 불씨로 번지게 되어 사회복지학과에 진학하였다. 대학교에서 한 첫 봉사활동은 학교에서 진행하는 독거노인분들께 ‘편지 작성 및 생필품 포장, 카네이션 제작’이었다. 비록 정기적인 봉사는 아니었지만, 빼곡히 적은 편지를 통해 마음을 전해 드릴 수 있었기에 뜻깊음은 배가 되었다. 하지만 조금의 아쉬움은 있었다. 봉사활동이라고 하면 직접 대상자와 소통할 줄 알았는데 해당 봉사는 대상자와 면담하지 못하고, 뒤에서 전달해 드리는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가장 기억에 남는 봉사활동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장애아동어린이집‘에서 활동한 겨울 캠프 활동 보조일 것이다. 이곳에서 가장 힘들었던 것은 아동들이 다른 길로 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