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이 없는 사회는 존재할 가치가 없다’는 피터 셰퍼(Peter Shaffer)의 <고곤의 선물, The Gift of the Gorgon>(1992)에 나오는 대사처럼 배우가 사라진 세상은 색을 잃은 물감처럼, 존재하지만 생명이 사라진 세계와 같을 것이다. 연기는 아름다운 예술이기 때문이다. 이성에만 의…
여기 왼쪽 집게손가락 하나가 없는 사람이 있습니다. 어쩌다가 손가락을 잃어버렸냐고 물으니 이렇게 대답합니다. 도자기 만드는 데 빠졌었지요, 녹로를 돌려야 하잖소, 그런데 이게 자꾸 거치적거리는 거요. 그래서 어느 날 손도끼를 들어……. 상상하기도 끔찍하지요. 이런 말을 할 만한 사람을 그려본다면,…
따스한 봄바람이 부는 캠퍼스, 우리 학생들에게 일본의 한 영화를 소개하고자 한다. ‘히미코’의 방이라는 뜻의 이 영화 제목 ‘메종 드 히미코’는 늙은 게이들이 모여사는 양로원의 이름이다. 양로원의 주인인 ‘히미코’의 이름을 따서 만든 히미코의 방이라는 뜻의 영화 제목은 왠지 기분이 따스해진다.…
지난겨울, 유난이도 눈이 많이 내리고 추웠던 날씨가 한풀 꺾기고 봄이 찾아 왔다. 개학을 하면서 새로운 얼굴들과 한결 가벼워진 옷차림으로 캠퍼스를 오가는 학생들이 봄이 왔음을 실감나게 한다. 새로움을 알리는 봄. 나는 한해를 시작하는 계절에 새로운 창조적 시도를 한 영화 한 편을 소개하려 한다. ‘올…
학창시절 친하게 지냈던 여학우의 남편이 베를린 영화제 단편 부문에서 대상을 받았다는 연락이 왔다. 그 참에 친구 몇몇이 모여 얘기꽃을 피웠는데, 일본 애니메이션도 주요 얘깃거리였다. 지브리로 대표되는 일본 작품들이 지금의 수준에 이를 수 있었던 것은 매년 수백 편의 작품들이 치열하게 경합하기 때…
올해 단풍은 유난히 고왔다. 특히 영암관 서편 언덕배기에 서 있는 당단풍은 눈이 부실 지경이었다. 품이 넉넉한 그 나무가 시월 중순부터 발갛게 물들어가는 모습에 바쁜 발걸음을 붙잡힌 게 한두 번이 아니다. 돌이켜보면 교정에서 이런 경이로운 순간을 경험하는 일이 적지 않았다. 보름달이 뜬 초저녁 무렵,…
현대사를 테러와 경찰 활동을 중심으로 관찰하면 크게 9.11 사건 이전과 그 이후로 구분할 수 있을 것이다. 20세기를 넘어서기까지 국가의 내적 질서와 인권의 팽팽한 긴장 관계 사이의 무게 중심이 지속적으로 인권의 방향으로 이동했고, 그 즈음 9.11 테러가 일어났다. 그리고 이 사건으로 인해 그 중심축의…
이제 정말 가을이다. 교정을 걷고 있으면 바람 없는 순간에도 여름 내내 무성했던 잎들이 살포시 나선형의 곡선을 그리며 발밑에 떨어진다. 가을은 남자의 계절인가? 아니면 독서의 계절? 고독의 계절? 하지만 나에겐 가을은 재즈, 그중에서도 단연코 베이스의 계절이다. 여름엔 시원스런 빗줄기처럼 거칠 것 없…
한문학자로 전문적 연구와 대중적 소통 양 방면에 성가(聲價)를 올리고 있는 안대회 교수의 신간이 나왔다. 한국한문학은 학회가 창립되고 이에 대한 연구가 본격적으로 이루어지기 시작한 지 40년이 다 되어간다. 연구 초기부터 조선후기 자료에 대한 발굴 및 연구 편중이 강하였음에도 여전히 발굴을 기다리…
요즘은 걷는 길이 유행인가보다. 제주도의 올레길에서 지리산의 둘레길, 강화도의 나들길 등등 새로 생겨나는 이름들이 적지 않다. 바로 얼마 전까지 마라톤으로 건강을 챙기려는 열풍이 일어나더니만 이제는 차분히 걷는 것에 열중하는 모양이다. 이렇게 걷는 길에 대한 매력을 일깨운 것은 ‘연금술사’로 유…
세계 사람들은 유태인을 바라보며 놀라워하고 있다. 전세계 인구의 0.2%에 불과하지만 노벨상 수상자 중 22%를 차지하고 있으며, 하바드 대학생 중 30%가 유태인 학생들이다. 이름만 들어도 알 수 있는 유명인물인 알베르트 아인쉬타인, 영화감독 스티븐 스필버그, 음악가 멘델스존 등이 유태인이다. 무엇이…
인류사를 되돌아보면 어떻게 저런 일이 일어날 수 있나 싶을 정도로 잔인한 순간들이 있다. 예를 들어 1990년대 보스니아 내전 당시 일어난 인종청소나 르완다 내전과 같은 일들이 그러하다. 그리고 이런 잔인한 사건들을 접하면서 드는 의문은 이런 일들이 일어나는 동안 그 사회의 지식인들은 무엇을 하고 있…
고대 바빌론에서는 “눈에는 눈 이에는 이”를 정의의 전형으로 하고 있었다. 당한만큼 보복하는 것이 정의였다. 그러나 현대사회는 이를 허용하지 않는다. 이처럼 정의의 관념은 시대에 따라 변한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정의는 사회적 개념으로써 공동체의 질서를 유지하는 것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선(善)은…
만약 세상의 모든 문명과 우리의 생활을 윤택하게 하는 모든 것들이 일순간, 인간이 인간을 사냥하는 날이 온다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곁에는 아직도 인류와 세계에 대한 순순한 희망을 꿈꾸며, 전적으로 나의 보호를 요구하고 있는 순진한 아이가 있다면... 나는 그런 세상에서 어떤 역할을 할 것인가? 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