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을 조심해라, 말이 된다. 말을 조심해라, 행동이 된다. 행동을 조심해라, 습관이 된다. 습관을 조심해라, 성격이 된다. 성격을 조심해라, 운명이 된다. 우리는 생각하는 대로 된다.” 1979년부터 10여년간 영국 총리를 역임한 대처(Margaret Thatcher, 1925~2013) 여사를 다룬 영화 ‘철의 여인(The Iron Lady, 2011)’에서 늙고 병든 대처가 의사에게 하는 말이다. 영화에서 대처는 어릴 때 그녀의 아버지에게 들은 말이었다고 덧붙인다. 오늘의 나는 어제의 내가 빚은 것이다. 아무도 모르는 머릿속 자기 혼자만의 생각이 결국 자신의 운명이 되는 것이다. 여러 고전에서 볼 수 있는 낯설지 않은 말인데, 다른 문화권이라도 이런 식견은 서로 통하게 마련이다. 생각과 말과 행동이 습관과 성격과 운명이 된다. 누구나 뻔히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누구나 흔히 망각하는 일이다. 고매하고 난삽한 이론은 책장을 넘기면 얻을 수 있다. 흔히 망각하는 뻔한 사실을 반복해서 다시 떠올리기, 우리 교육의 또 하나 중요한 지향점이 되어야 한다. 이 시기 교육기관으로서 대학이 거듭 다짐을 두어야 하는 쪽은 후자일 것이다. 전국적 현상이 된지 오래지만,
일일 코로나19 감염병 확진자 수가 몇십만 명씩 나오고 있다. 2년 전 대구·경북 지역 코로나19 일일 확진자가 20~30명씩 ‘무더기 감염(?)’이 나오고, 대구를 봉쇄해야 한다며 여러 언론에서 대서특필하던 것이 불과 며칠 전인 것처럼 느껴진다. 세월은 지났고, 오미크론 유행화와 위드 코로나(With Corona)가 시행되면서 사람들은 코로나19와 함께 생활 속에서 서서히 적응되기 시작했다. 대학교 캠퍼스도 예외는 아니다. 전면 대면 수업을 시행하는 학교가 늘기 시작하면서 캠퍼스에 다시금 활기가 돌고 있다. 하지만 코로나19 이전의 일상으로 돌아가기 위해서 해결해야 할 문제가 산적해 있다. 먼저 학생들이 비대면 수업에 익숙해지면서 학교생활 적응에 방황하고 있다. 코로나19 학번의 어느 학생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자신은 학교를 처음 나왔고 대면 수업이 낯설다고 한다. 그동안 캠퍼스 갈 일이 없다 보니 어느 건물에서 수업을 들어야 하는지도 모르겠고, 수업 시간에 팀별 과제나 다른 학생들과 교류를 해본 경험이 없다 보니 친구도 없고 처음 접하는 대면 강의에 적응하는 게 힘들다는 것이다. 학교와 교수들이 수업의 질 개선을 위해 노력했음에도 지난 2년여간의 코로나19
2022학년도 학생자치기구 총선거가 내일(11월 30일) 실시된다. 원칙대로라면 총학생회를 비롯한 16개 단위에서 차기 자치기구의 장을 두고 치열한 선거전이 펼쳐져야 한다. 그러나 지난 11월 15일 후보자 등록이 마감된 결과 인문국제대, 사범대, 음악공연예술대, 미술대는 입후보자가 없어 선거가 무산됐고 후보자가 등록된 단위에서조차 경선을 치르는 곳이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흔히 선거를 민주주의 사회에서 벌이는 가장 큰 축제라고 한다. 그러나 ‘축제’를 맞이한 학생들의 여론은 냉담하기만 하다. 선거가 사실상 당선이 확정된 이들에게 민주적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한 절차적 요식행위로 전락한 지 오래이고, 무엇보다 학생자치의 효용성을 학생들이 체감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한때는 ‘총학생회장에 당선되면 차 한 대 뽑을 수 있다’는 풍문도 널리 퍼져있었다. 물론 현재에는 그런 일이 발생할 가능성이 매우 낮다고 생각되지만, 모든 소문에는 그 집단에 대한 당대의 평가가 응축되어 있기 마련이다. 세월이 흘러 이러한 양상은 학생들이 수혜비 납부를 거부하는 것으로 변모했다. 등록금 납부 기간마다 우리학교 에브리타임 커뮤니티에는 “수혜비(학생회비)를 꼭 납부해야 하느냐
오늘부터 새로운 방역 체계가 시행된다. ‘단계적 일상회복’이다. 일부 예외가 있지만 모든 시설의 상시 영업이 가능하고, 사적 모임은 10명까지, 행사의 경우 100명까지 모일 수 있다고 한다. 코로나19가 국내에 유입된 지 어느덧 2년째다. 누구나 알고 있고 흔히들 하는 말이지만, 인간의 삶은 코로나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 코로나19가 초래한 피해는 개인과 사회에 걸쳐 이루 말할 수 없이 크고도 깊지만, 교육 분야의 피해는 다른 분야에 비해서 유독 심각하다. 회복할 수 없다는 점에서, 개인의 인지 여부와 별도로 피해는 지속될 것이다. 학교 문을 닫는 것은 어느 시대나 극히 중대한 의미를 갖는 일이다. 더욱이, 질병으로 학교 문을 닫은 유례를 찾기 어렵다. 대부분의 교사 및 교수, 학생에게 강제된 비대면 수업이 구체적으로 어떤 결과를 초래하였느냐에 대해서는 앞으로 여러 연구가 제출되겠지만, 하나 분명한 점은 교원과 학생들 모두 비대면 수업의 한계를 절감했다는 점이다. 우리 대학에도 기왕에 다수의 온라인 수업이 있었지만 그 존립의 바탕은 대면수업이라는 것이 분명해졌다. 다행히 우리 대학은 이번 학기 시작부터 대면수업 위주의 학사운영을 하고 있다. 많은 준비와 노
학사일정 5주차에 접어든 지난 9월 29일부터 수강정원이 100명 이상인 이론 강의를 제외한 대부분의 강의가 대면수업으로 전환됐다. 이미 개강 첫날부터 실험·실습·실기가 동반되는 강의는 대면수업을 진행 중이고, 교육부 또한 코로나19 백신 접종률이 70%를 상회함에 따라 단계적인 대면수업 재개를 권고한 바 있다. ‘전면 비대면 수업’이라는 사상 초유의 형태를 취했던 지난 2년간의 대학 교육이 일단은 정상화 궤도에 오른 것이다. 지난 2년여의 팬데믹은 우리로 하여금 이른바 ‘위드 코로나(with Corona)’로 불리는 바이러스와의 불편한 동거를 강요해 왔다. 화합, 만남, 유대와 같은 가치는 모두 ‘방역’이라는 현실 아래에 종속되고 말았다. 지난 7월 26일 동아대병원 김동민 교수 연구팀이 발표한 연구에 따르면, 코로나19 대유행 국면 이후 우울증이나 불안 증세를 경험한 국민이 53%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관계의 공백’이 불러온 우울감은 청년들에게 특히 가혹했다. 지난해 9월 정의당 이은주 의원이 건강보험심사평가원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의하면 2020년 상반기 우울증 진료 인원은 59만 명으로 2019년 같은 기간에 비해 5.8% 증가했다. 특히 2
세대를 아우르는 말이 참 많다. 386세대, 신세대, 오렌지족, X세대, Y세대, Z세대 그리고 이젠 MZ세대라는 말까지 나왔다. 코로나19로 인해 비대면 강의기술을 익히기도 쉽지 않은 일인데, 이젠 MZ세대의 사고를 알아야만 학생과 소통할 수 있고 그렇지 않으면 소위, 노땅 아니면 꼰대 취급을 당한다. 그런데 다시금 MZ세대를 생각해본다. 인간의 역사에서 항상 젊은이는 기성세대와 갈등을 빚었다. 진위를 떠나 그리스 신전에 당시 젊은이의 행실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는 낙서가 있다는 이야기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기성세대와 젊은 세대의 갈등이 있었다는 것을 방증하는 것이 아닐까? 코로나19로 인해 우여곡절 끝에 개최된 도쿄올림픽에 참가한 우리 선수단은 단순한 경기 그 자체만이 아니라 경기에 임하는 태도를 통해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특히 MZ세대가 경기에 임하는 태도는 더 그랬다. 소위 ‘라떼’를 외치는 기성세대 시대에는 올림픽에 참가한 선수가 금메달을 획득하면 대통령 각하(?)께 감사를 드리는 것이 당연시됐었다. 금메달을 따지 못하고 은메달이나 동메달을 딴 선수가 마치 전쟁에서 패한 병사처럼 고개를 들지 못하고 국민에게 죄송하다는 말을 눈물과 함께 전하는 모습이
한국의 민주주의는 사실상 민주주의의 정체 또는 퇴행이라고 볼 수 있는 위기 가능성의 징후가 많다. 정치권에 대한 국민의 낮은 신뢰도, 정체성이 없는 정당정치 등은 한국 정치의 낮은 제도화 수준을 반영하고 있다. 이처럼 민주주의 토대를 위한 사회적 기반의 붕괴와 민주주의 절차의 핵심인 정당체제의 역할이 실종된 한국의 정치 상황에서 국민이 행복한 삶을 영위하기 위해 한국정치가 어떠한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함의를 제시하기 위해 다수결주의와 합의주의 정치모델에 대해 말하고자 한다. 다수결주의는 말 그대로 다수의 뜻이 지배하는 정치원리를 의미한다. 이 원리는 다수를 점한 세력에게 정치권력을 집중시키는 것이며, 일사분란하고 결단력 있는 리더십과 신속한 의사결정을 가능하게 하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다수결주의는 다수를 점하는 정치세력이 권력을 독점하기 때문에 야당은 다음 선거에서 권력을 획득하기 전까지는 침묵해야 한다. 다수결주의는 이러한 면에서 매우 배타적이고 경쟁적이고 적대적이다. 다수결주의가 작동되는 가장 대표적인 나라는 미국이다. 합의주의는 다수가 지배하는 정치원리라는 면에서는 다수결주의와 다를 바 없으나, 다수에 의한 지배를 최소한의 기준으로 삼는다는
미디어가 부모나 교사의 역할을 일정 부분 대체한 지 오래다. 부모에 안겨 스마트폰 영상을 응시하는 아이의 눈길과 강의에 대한 궁금증이 생길 때마다 휴대폰으로 해결하려는 학생들의 손놀림을 보면 어쩌면 상상하는 그 이상인지도 모른다. 이제 미디어 없는 삶을 상상조차 하기 어렵다. 사람들이 의존하는 미디어는 세상에 대하여 무엇을 생각하고 어떻게 인식해야 하는가에 대하여 우리를 끊임없이 교육시킨다. 이로 인해 이용하는 미디어 채널에 따라 사람들의 생각도 특정한 방향으로 고정되고, 유사한 신념과 가치체계로 이어진다. 그래서 보수 매체를 이용하는 사람의 인식은 보수적 생각으로 이어지고, 진보적인 사람은 자신과 유사한 성격의 매체 이용에 의존하는 경향을 보인다. 이러한 과정이 지속되면서 사유의 편식은 더욱 강화되고, 자신이 이용하는 미디어가 현실이 되고 진리처럼 받들어진다. 하지만 미디어가 다루는 현실은 지속적으로 중재되고 가공되는 과정의 결과물이다. 미디어가 생산하는 내용에는 미디어 조직의 이윤이나 정치 권력적 욕망 등과 같은 다양한 요인들이 개입되고 주관적 해석과정이 관여한다. 동일 사건이나 이슈에 대해서도 매체마다 바라보는 대상이 다르고 설명이 차별적인 이유이다.
지구온난화는 국제적으로 심각하게 논의되고 있는 문제다. 일부 선진국을 중심으로 적정 기준의 이산화탄소를 배출할 수 있는 권리를 제정한 교토의정서가 1997년 채택된 후, 지난 2015년에는 195개국이 참여하여 “지구 온도상승을 산업화 이전보다 1.5도까지 제한하도록 노력”하기로 한 파리기후협약을 맺었다. 우리나라도 파리기후변화협정에 따라 2030년까지 예상배출량 대비 37%까지 감축하기로 했다. 국제연합식량농업기구(FAO)는 농업과 식량 및 식품 산업이 전체 이산화탄소 배출량의 약 25%를 차지한다고 보고했다. 개발도상국의 경제성장과 함께 육류소비가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농업과 식량 및 식품 산업의 이산화탄소 배출량 중 축산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50%인데, 그 중 절반은 육류, 특히 소고기 생산에서 나온다. 이처럼 육류 생산 과정에서 배출되는 이산화탄소를 줄이자는 취지에서 ‘고기없는 월요일’ 운동이 전개되고 있다. 원래 ‘고기없는 월요일’은 2003년 미국 블룸버그 고등학교의 비만관리 프로그램으로 시작되었다가 비틀즈 그룹 멤버인 폴 매카트니가 2009년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열린 유엔기후변화회의(UNFCCC)에서 환경운동으로 제안하면서 전 세계로 확산되었고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라는 소설 제목을 패러디해 여러분께 던진다. 코로나19와 더불어 살기 시작한 지난 1년이 지나고 새롭게 맞이한 신학기에 이렇게 묻는 것이 뜬금없는 이야기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한 번씩 세상을 약간만 삐딱하게 바라보면 이제까지 보이지 않았던 새로운 세계가 보이진 않을까? 노자의 도경 1장에 道可道 非常道라는 문구가 있다. “도가 말해질 수 있으면 진정한 도가 아니다”라고 해석할 수 있다. 우리 주위에는 참 많은 사람이 자신만이 옳다고 주장한다.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정치가, 기업가, 의료인, 학자들은 마치 자신만이 이 나라를 구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라 주장하고 반 시민도 삶의 모든 영역에서 자신이 마치 전문가인 양 주장하면서 다른 이의 견해를 무시하곤 한다. 고용인은 자신이 부리는 사람이 열심히 일해야 한다는 이유에서 근로자를 선호하고, 피고용인은 노동을 제공하고 그 대가로 임금을 받는다는 의미로 노동자를 선호한다. 같은 사람인데 마치 다른 사람인 양 근로자와 노동자를 외친다. 자신의 관점에서 자신이 원하는 것만을 바라보면서. 존재 자체가 의문시되기도 하는 노자가 우리 시대에 나타난다면 앞서 주장하는 사람들이 도를 따르고 있다고 인정할
올 2월 국내에서 시작된 코로나19 감염증의 유행으로 인해 1학기에 임시방편으로 시작된 대학의 원격수업이 결국 2학기까지 이어져 곧 종강을 앞두고 있다. 정보통신기술의 비약적 발전으로 사물인터넷, 클라우드, 빅데이터, 인공지능 기술들이 초연결사회의 제4차 산업혁명의 시대가 이미 도래하였으나 미처 그 변화를 체감하지 못했던 대학교육이 아이러니하게도 코로나19 팬데믹 상황 인해 온라인, 디지털 플랫폼으로 이동하게 되었다. 1학기 초기 원격수업의 기술적 시행착오가 많이 줄었고, 교수와 학생 모두 각자 나름의 방식으로 새로운 수업환경에 빠르게 적응해 가면서 원격수업의 장점과 새로운 활용 가능성을 보기도 하였다. 그러나 원격수업 간의 질적 편차와 학생들의 학습(환경)격차, 소통 부족의 문제, 원격수업 인프라의 부족 문제 등은 아직 해결해야 할 과제로 남아있다. 많은 전문가가 코로나19와 같은 유사한 팬데믹 쇼크 상황이 재발될 가능성이 있음을 예측하는 상황에서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언택트, 비대면 생활양식은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뉴 노멀(New Normal)이 될 것이다. 이미 학생들은 소위 인강세대로 온라인으로 수업을 듣는 데 익숙하며, 이들이 사회에 나가면 온라인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