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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착한 계명인’에 대하여

교수님들께 우리 대학교 학생들은 어떻습니까? 하고 물으면 대개 ‘착하다’고 하신다. ‘착하다’는 말의 사전적인 뜻은 ‘언행이나 마음씨가 곱고 바르며 상냥하다’이다. 말과 마음씨가 곱고 바르고 상냥한, 한마디로 다른 사람을 언짢게 하지 않는 ‘좋은 사람’이다. 분명히 칭찬이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착하다’는 단어가 별 특징이나 개성이 없는 사람, 자기 주관이 없는 사람, 다른 사람의 말을 그냥 따르는 사람이라는 의미로 사용되기 시작했다. ‘그 사람 어때?’ 했을 때 ‘착해’라고 하면 특별한 매력이 없는 사람이라는 뜻을 에둘러 말하는 표현이 되었다.

 

우리 대학교 학생들이 착하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생각해 본다. ‘말을 잘 듣는’, ‘시키는 일을 잘하는’, ‘문제를 제기하지 않는’ 등을 뜻하는 것 같다. ‘착함’을 이런 의미로 정의하는 것이 문제인가? 딴지를 걸려고 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러한 정의가 ‘도전적’, ‘창의적’, ‘비판적’이라는 단어와 잘 어울리지 못하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마치 착한 사람은 도전적이거나, 창의적이거나, 비판적이어서는 안 될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것은 개인적인 편견인지도 모르겠다.

 

우리 대학교 강의계획서에는 교과목이 우리 대학교의 핵심역량과 어느 정도 관련성이 있는지 표시하도록 되어 있다. 우리 대학교의 핵심역량은 ‘도전적 개척정신(F)’, ‘윤리적 봉사정신(A)’, ‘국제적 문화 감각(C)’, ‘창의적 전문성(E)’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러한 역량은 ‘착한 사람’이 되는데 도움이 되는 것일까, 이런 핵심역량이 추구하는 인재상과 상충되지 않으면서도 ‘착한 계명인’이란 어떤 사람일까 생각하게 된다.

 

착한 사람은 협력할 줄 아는 사람이다. 현실에서 우리는 많은 문제에 부딪히게 된다. 합리적이고 효율적으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자기주도적인 자세가 필요하다. 그러나 혼자서 해결하지 못하는 문제가 대부분이다. 협력이 필요하다. 심지어 협력이 불필요해 보이는 일조차도 여러 사람들의 공동의 노력이 필요한 경우가 많다.

 

그러나 협력하는 것은 어렵다. 그래서 대학에서는 조별 과제, 조별 발표 등의 조별 활동을 하도록 한다. 나와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도 존중하고 경청하며, 내키지 않더라도 한 걸음 물러서는 법을 배우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착한 사람은 자기주도적이지만 동시에 협력적인 사람이다.

 

착한 사람은 다른 사람의 의견을 무조건 따르는 사람이 아니다. 다른 사람과 다르게 생각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이다. 다른 사람의 의견을 경청하고 포용할 수 있지만 동시에 다르게 생각할 수 있는 사람이다. 호기심을 가지고 ‘왜’라는 질문을 하는 사람이다. 질문하지 않으면 문제의식이 생기지 않는다. 문제의식이 없으면 발전도 없다. 착한 사람은 다른 사람과 다른 관점을 가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끊임없이 질문하는 사람이다.

 

다른 사람과 협력하지만 다른 관점에서 질문하기를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을 ‘착한 사람’으로 정의하고 싶다. 우리는 고도의 디지털 기술문명 시대에 살아간다. 이러한 시대에 필요한 착한 사람은 협력하고 질문하는 사람이다. 이는 우리 대학교가 추구하는 FACE 인재상과 다르지 않다. 새 학기가 곧 시작된다. 캠퍼스가 ‘착한 계명인’들로 다시 가득 차길 기대한다.





[교수님 추천해주세요] 모든 존재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이들에게,  ‘어머니와 나’ 오늘도 밥은 제때 먹었는지, 수업에서 ‘예시’를 들어 쉽게 설명했는지 물으시는 아빠께 툴툴거렸다. 당신 딸의 나이가 별로 실감나지 않으시는 눈치다. 사실, 저 안에 담긴 아빠의 마음을 모르지 않는다. 그래 놓고 돌아서서 후회하는 나 같은 학생들이 많으리라. 이 책은 어느 이름 모를 여사님의 일상 목소리를 기록한 것이다. 대화의 상대이자, 책의 저자인 김성우는 바로 그녀의 아들. 70대 초반쯤 되셨을 법한 여사님은 일상에서 마주하는 수많은 상황-거창한 시대적 사건부터 천 원에 산 감자 이야기까지-에 대한 단상들을 꾸밈없는 잔잔한 언어로 들려준다. 그런데 책을 읽어가다 보면 모든 이야기가 편편이 분절된 것이 아닌, 세월만큼 깊어진 그녀의 너그러운 지혜로 꿰어졌음을 발견하게 된다. 이 책은 한 여인이 존재했음을 증명하는 구술사이자 그녀의 에세이요, 삶에 대한 성찰을 담은 철학서인 것이다. 문학과 철학의 언어는 때로 우리에게 추상적으로 다가온다. 평범한 사람들의 삶과는 별 관련 없는, 재주 많은 이들의 영역인양 느껴지기도 한다. 리터러시 연구자로서 문자 자체에 대한 이해력을 넘어 삶이 스며있는 소통에 대해 이야기 해 온 저자는 “나의 어머니가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