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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불라 라사 115 (계명교양총서 115선)- 성찰

데카르트(Rene Descartes, 1596~1650)는 고대와 중세를 벗어나 근대로의 문을 연 사상가이자 철학자이다. 그가 확실한 앎에 도달하기 위해 채택한 방법론으로서의 ‘회의(의심)’는 이전의 전통 철학이 외부세계에 대한 ‘경이(놀라움)’에서 시작한 것과는 또 다른 철학함의 계기를 마련했다. 또한 확실한 지식을 추구하기 위해 의심스러운 것은 모두 제거하고 도달한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라는 명제는 근대 이후의 모든 사고에 인간의 자기의식 안에 인간이 아닌 다른 존재와의 근본적 차이가 있음을 보여줬다. 그의 노력은 이후 새로운 철학함과 아울러 자율적 인식 주체 및 도덕 주체의 성립에 큰 기여를 했기에 우리는 그를 일컬어 ‘근대철학의 아버지’라고 한다. 그는 자신의 내면과 세계 안에서 직접 진리를 찾아내고자 했다. 이처럼 새로운 방식으로 진리를 찾는 그의 철학은 스스로 자신의 행위 법칙을 설정하는 인간에게 형이상학적 근거를 제공해, 인간을 자유롭게 만드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했다. 그의 철학적 근본사상은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그는 보편타당성을 지닌 명증과학으로서의 수학이야말로 모든 지식의 전형이며, 따라서 확실성을 갖는 수학적 방법만이 학문의 유일한 방법이라고 믿었다. 이러한 믿음 위에서 누구도 의심할 수 없는 확실한 논증의 방법을 수학의 근거 위에서 세우고자 했으며, 이런 의미에서 철학을 ‘보편수학’이라고 불렀다.

둘째, 그는 확실한 진리에 도달하는 능력, 즉 이성에 대한 보편적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인간은 참된 것을 거짓과 구분할 수 있는 능력인 이성을 갖고 있다. 그는 이러한 선천적 이성을 통해 철학의 기초를 새롭게 마련하고자 했으며, 이를 ‘방법적 회의’라 불렀다. 모든 학문의 절대적 출발점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검증되지 않은 모든 확신들을 파괴해야 했고, 이 방법을 의심에서 찾았다. 이 의심은 진리에 도달하기 위한 하나의 방법이지, 진리 자체의 존재를 의심하는 것은 아니었다.

셋째, 방법적 회의를 통해서 모든 학문의 토대를 세우고자 시도했다. 모든 것을 의심한 데카르트가 최종 도달한 절대적으로 확실한 진리는 의심하는 ‘나’의 존재였다. 지식의 모든 확실성이 무너져버린 그 자리에서, 새로운 확실성이 발생한 것이다. 의심할수록 더욱 확실해지는 것은 지금 이 순간에도 의심, 즉 생각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는 이처럼 철저한 의심을 통해, 자신의 존재는 더 이상 의심할 수 없음을 깨달았다.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는 명제는 바로 이러한 깨달음을 담고 있다.

그의 ‘성찰’은 무엇보다도 인간 존재의 우연성, 외부 세계의 불확실성 등을 극복하려는 문제의식에서 시작됐다. 인간이 저지를 수 있는 오류와 착각, 만일 악한 신이 존재한다면 신이 나를 속일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한 공포가 ‘성찰’ 전체에 걸쳐 깊이 깔려 있다.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는 인간의 자기 주장은 삶의 허구와 우연성, 스스로 만든 착각과 밖(악한 신)에서 오는 기만으로부터 자신의 존재를 스스로 확증해 보존을 꾀하려는 노력이다.

데카르트가 인간의 자기 존재를 확립시키려는 전략은 매우 치밀하고 철저하다. 제2성찰에서 그의 ‘나’는 보편적 회의를 통해 “조금도 의심할 수 없는 것은 하나도 없다”는 사실을 먼저 확인한다. 감각작용, 기억, 모양 등은 의심이 가능한 것이기 때문에 확실성의 영역에서 모두 배제된다. 이후, ‘나’는 이러한 보편적 회의 가능성의 인식 가능 근거를 묻는다. 조금도 의심할 수 없다는 생각은 신이나 어떤 전능자가 집어넣을 수 있지만 내 자신이 그것을 만들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미 나는 어떤 감각 기관과 신체를 가지고 있지도 않고, 이 세상에는 하늘도 땅도 정신도 물체도 없다고 나 자신을 설득할 수 있다. 그래서 ‘나’는 과거의 나의 존재는 확실성을 가질 수 없다는 것을 확인한다. 그러나 만일 내가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나를 설득했다면 설득당한 나는 확실히 있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악한 신은 마치 내가 과거에 있었던 것처럼 나를 속일 수 있다. 이제 마지막으로 악한 신이 나를 속인다고 하면 나는 현존해야 한다는 사실은 의심할 수 없음을 확인한다. 내가 나 자신을 무엇이라 사유하고 있는 동안 악한 신은 내가 아무 것도 아닌 것으로 만들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존재한다”는 명제는 절대 의심할 수 없는 사실을 담게 된다. 이 명제는 내가 사유하고 있는 동안엔 확실하다. 왜냐하면 내가 사유하기를 그친다면, 그 순간 또한 현존하기를 그칠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처럼 절대적으로 의심할 수 없이 확실하게 존재하는 ‘나’는 어디에서 왔는가? 이 물음을 통해 데카르트는 신의 존재를 ‘증명’한다. 내가 의심하고 사유한다는 것은 이미 내가 유한한 존재라는 사실, 내가 결핍과 욕망의 존재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사유의 주체로서 나는 순수하게 내 자신의 정신적 능력으로 사유할 수 있는 존재이지만 나의 구체적인 존재에 있어서 나는 타자에게 의존해 있는 것이다. 나의 사유와 자기의식도 나 자신의 부재 탓이다. 즉 자기 의식은 나의 유한성의 징표이다. 만일 나 자신의 현존과 부재의 엇갈림을 경험하지 않고 마치 신처럼 항상 자신에게 현존해 있는 존재라면 반성적 자기의식은 일어날 수도 없고, 그럴 필요도 없을 것이다. 결국 나의 존재의 절대적 확실성 안에는 무한한 존재, 즉 신의 존재가 이미 함축돼 있다. 신은 반드시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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