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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불라 라사 115 (계명교양총서 115선)] '파우스트'

괴테 ‘파우스트’의 소재가 되고 전형이 된 것은 독일 전설에 나오는 파우스트라는 인물이다. 이 중세의 파우스트는 마술에 능했고, 점성술에 밝았으며, 신학과 의학에도 상당한 지식을 가지고 있는 떠돌이 학자였다. 인간이 습득할 수 있는 최대의 지적 능력을 갖춘 상태에서 자신의 영혼을 담보로 악마와 계약을 체결함으로써 반복되는 일상의 무료함을 떨쳐버리고 과감하고 무모한 행동을 일삼는 것이 중세 파우스트 이야기의 기본 틀이다.

세상의 모든 지식을 섭렵한 노학자 파우스트 박사가 인간의 지성과 학문적인 능력의 한계를 절실히 느끼고 지령의 도움을 받아 그 한계를 극복하고 탈출구를 모색해 보고자 하지만 별 소용이 없다. 절망에 빠진 파우스트가 자살을 하려고 하는 순간 부활절의 종소리와 천사들의 합창 소리가 울려 퍼지는데, 그 소리를 듣고 파우스트는 다시금 살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이때를 틈타 메피스토펠레스가 처음에는 복슬 강아지 모습을 하고 파우스트에게 접근을 하고, 그 다음에는 학생 차림으로 변신을 해서 파우스트 앞에 나타난다. 그리고는 파우스트의 영혼을 담보로 파우스트에게 관능적인 쾌락의 삶을 선물한다는 내용의 계약을 맺는다.
학문에 대한 회의, 그것으로 인한 고뇌와 갈등, 그레트헨과의 불같은 사랑, 그리고 속수무책인 비극적인 상황에서의 좌절 등은 질풍노도 시대의 젊은 괴테를 연상시킨다. 그리고 ‘파우스트’ 1부 끝 장면에서 결국 자기 때문에 사형을 당해야 하는 그레트헨에 대해 ‘그녀는 구원을 받았다.’라고 하는 파우스트의 절규가 ‘파우스트’ 2부로 이어지면서 모든 비극적인 상황의 원인이었던 파우스트 자신이 또 다른 그레트헨인 헬레네에 의해 마침내 구원을 받는다. 이 부분에서 우리는 여성의 고전적인 아름다움을 찬양하고, 노력하는 인간의 방황을 허용하는 고전주의시대의 장년 괴테를 만난다. 그리고 이러한 고전주의적인 가치는 한편으로 파우스트의 행동하는 인류애를 통해 발현되고 또 다른 한편으로 창조적인 행위 자체에 포함되어 있는 원형적인 것이 된다.

이렇게 볼 때 괴테의 ‘파우스트’는 괴테의 생애 전반을 아우르고, 괴테 생애의 중요한 단계를 모두 포함하고 있으며, 각 단계별 마디마디가 다 녹아들어 있는 총체적인 작품이다. 괴테의 ‘파우스트’는 깜깜한 숲속 내지 무방비 상태의 세상에 ‘내던져진’ 인간이 길을 잃거나 방황할 때 또 다시 일어나 가던 길을 묵묵히 걸을 수 있도록 인도하는 하나의 등불과 이정표로서 우리 앞에 놓여 있다. 그리고 그 등불과 이정표는 시공간의 변화와 역사의 흐름에 아랑곳하지 않고 어두운 곳에 빛을 밝히고 여러 갈래의 길이 나 있는 곳에서 올바른 방향을 제시해 준다. 따라서 우리는 이 세상에 태어나는 순간부터 죽는 그 순간까지, 살기 위해 몸부림치고 노력하는 매 순간, 때로는 방황하고 때로는 좌절하는 그때마다 괴테의 ‘파우스트’를 펼쳐들고 우리의 가야할 길을 괴테에게 물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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