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끌’ 주식투자가 대세가 된 시대 탐욕에 눈멀어 빚에 허덕이는 일 경계해야 SK바이오팜, 카카오게임즈, 빅히트엔터테인먼트. 30조 9천899억 원, 58조 5천543억 원, 58조4천236억 원. 최근 몇 달 사이 천문학적인 돈이 일반 공모주 청약에 몰렸다. 주식 광풍의 시대다. ‘영끌’(영혼까지 끌어내는 것처럼 모든 수단을 동원해 돈을 모아) ‘주린이’(주식 투자를 시작하는 어린이)의 모습은 주변에서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시작은 지난 3월이었다. 우리가 알지 못했던 코로나19 바이러스가 덮치자, 주식시장은 패닉에 빠졌다. 생산과 소비 등 경제활동이 멈출 것이라는 비관적인 전망 속에 코스피는 1400선까지 떨어졌다. 이런 상황에서 생각지도 못한 일이 일어났다. 일반 투자자들이 주식 시장으로 몰려들었다. 이들은 1997년 외한 위기, 2008년 미국 서브프라임 위기 등 두 차례의 위기 상황을 보며 경제는 다시 반등한다는 것을 학습했다. 경기가 안 좋으면 미래를 대비해 현금을 쓰지 않고 모아놓는 것과 반대로 주식을 사 모았다. 이른바 ‘동학개미운동’이다. 외국인과 기관 투자자들이 급하게 팔아 값이 떨어진 국내 주식을 수집했다. 코스피는 마침내 바닥을 찍
한동안 자취를 감췄던 차벽이 다시 등장했다. 보수단체가 개천절 집회 강행을 선언하자 정부가 꺼내든 고육지책이다. 문재인 정부 들어 차벽이 설치된 것은 2017년 트럼프 대통령의 방한 이후 이번이 두 번째로, 경찰은 서울 시내 진입로 곳곳에 총 90개소의 검문소를 설치하는 한편 광화문 일대를 지나는 전철을 모두 무정차 통과시키는 등 집회 차단에 열을 올렸다. 일각에서 집회의 자유를 침해하는 과잉대응이라는 지적이 나오자 경찰은 “코로나19 방역을 위해 불가피한 조치였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방역의 불가피성이 집회의 자유를 앞서는 상황은 썩 유쾌하지 않다. 불과 4년 전 부패한 권력에 대한 국민적 분노와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으로 가득했던 광화문 광장에 공권력의 상징인 차벽이 줄지어 선 모습이 익숙하고도 불쾌한 기억을 되살린 탓이다. 차벽은 과격·폭력 집회를 방지하고 집회 현장의 질서유지와 안전을 도모하기 위해 지난 2003년 처음 도입됐다. 그러나 당초의 도입 취지가 무색하게도 차벽은 권력의 입맛에 따라 집회의 자유를 침해하는 수단으로 악용돼 왔다. 2008년의 ‘명박산성’과 2015년의 ‘근혜장성’이 그러한 악용의 대표적인 사례이다. “국민과 소통하는 정부를 만
우리 전통음악장르 ‘가곡(歌曲)’을 아십니까? 고등학교 음악시간에 불러보기도 한 것 같은데, 우리의 가곡은 이은상의 ‘가고파’, 최영섭의 ‘그리운 금강산’이 있고, 서양의 가곡은 슈베르트의 ‘겨울나그네’, 슈만의 ‘시인의 사랑’ 등이 있습니다. 헌데, ‘가곡’이라는 명칭을 우리 사회가 개화기를 거치면서 서양양식의 가곡에게 빼앗겼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가곡을 구분 짓기 위해 ‘전통’이라는 어두가 붙어 소개되곤 하지요. 제가 소개하려고 하는 ‘전통가곡’은 그 중 하나라고 꼭 집어 말하기가 어렵습니다. 음악이나 공연이나 작품이라고 할 수 있을 듯하면서도 적절치 않은 듯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그 느낌은 그 어느 한 개념만으로는 제가 갖게 된 전통가곡의 독보적 정체성과 실체적 아름다움을 전하기가 어렵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것은 딱히 작품도 아니며, 온전히 음악도 아니며, 더구나 공연무대에 올라 청중과 원활한 소통을 거둘 ‘무엇’이 아니라는 망설임 때문입니다. 전통가곡은 국악의 대표성을 띠는 장르가 아니라서 아주 간간히 무대에 오르기 때문에 이를 경험할 기회도 없는 학생들이 많을 것입니다. 그러다 기회가 생겨 무대에서 볼 수 있어도 신기해하거나 너무 낯설어 질색
코로나19는 대학가의 풍경마저 바꿔놓았다. 학생들에게 있어 가장 와닿은 변화는 축제가 아닐까 싶다. 올해엔 코로나19로 인해 축제를 진행하지 못할 가능성이 커 보인다. 총학생회는 여러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고 밝혔지만, 확진자 수가 좀처럼 줄지 않는 상황에서 축제를 기대하기는 어려워보인다. 사실상 무산된 축제의 아쉬움을 뒤로하고, 제1177호 뉴스타임머신은 1985년으로 향한다. 많은 학우들이 모르고 지나가는 사실이지만, 우리학교 축제의 정식명칭은 ‘비사대동제’다. 여기서 대동(大同)이란 ‘크게 하나됨’을 의미한다. 대학 축제에 대동제라는 명칭이 붙은 것은 80년대의 엄혹한 시대상과 무관하지 않다. 당시 대학가에서는 군부 독재에 항의하는 시위를 벌이다가 다치거나 죽는 학생들이 많았는데, 이러한 현실 속에서 마냥 가벼운 마음으로 축제를 즐길 수는 없었을 것이다. 또 당시 대학가를 지배했던 민족주의적인 분위기가 이러한 흐름과 결합해 축제가 곧 하나의 거대한 공동체적 의식으로 자리매김하고 있었다. 또 1985년은 우리학교의 학도호국단(군사정권이 학생들을 통제하기 위해 조직한 단체)이 총학생회로 환원된 시기이기도 하다. 그래서 우리학교 학생들은 그간의 억눌렸던 민주
우수한 인재들이 모두 의대로만 쏠리는 현실 사회적으로 적정한 배분인지 따져봐야 ※ 사회적 쟁점을 대학생의 눈높이에서 해설하는 '키워드로 보는 세상'이 새롭게 연재됩니다. 생사를 가를 중요한 진단을 받을 때 누구를 선택하겠는가? 1번) 매년 전교 1등을 놓치지 않기 위해 공부에 매진한 의사. 2번) 성적은 부족하지만 의사가 되고 싶어 추천제로 입학한 공공의대 의사. (의협 의료정책연구소) 이 질문을 다른 방식으로 바꿀 수 있다. 평균 잡아 전국 2천300여개 고등학교에서 전교 1등 또는 2등을 해야 정원이 3천58명인 의대에 입학할 수 있는데, 전교 1등만 의대를 가야 할까. 아니면 1등이 아니어도 들어갈 수 있게 의대 문을 좀 더 넓힐 필요가 있을까. 선택은 제각각이지만 한국 사회는 이 문제로 홍역을 앓고 있다. 정부가 의대 정원을 늘리겠다고 밝히자, 이에 반대하는 의대생들은 시험을 거부하고 병원에서 일하는 전공의들은 진료거부로 맞섰다. 정부와 여당은 수도권과 지방의 의료격차를 해소하고 지역 의료를 강화하기 위해선 의사를 더 공급해야 한다고 말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나라들은 평균 1천명당 3.4명의 의사가 있는데, 한국은 한의사까지
사람은 언제 죽는다고 생각하는가. 병에 걸렸을 때? 국가적 재난 상황일 때? 아니다. 사회가 방기했을 때다. 세계가 코로나19로 곤욕을 치르고 있다. 경제는 위축되었고, 사망자는 나날이 늘어간다. 각 국은 저마다의 실패로 자신들의 취약점을 드러내고 있다. 미국을 보라. 미비한 의료보험제도와 살인적인 의료비용으로 인해, 선진적인 의료 수준에도 불구하고 대다수의 시민들이 의료혜택을 누리지 못하고 죽었다. 이는 의료복지의 실패다. 또한 미국시민들 중 일부는 마스크 착용에 반대하는 시위를 하기도 했다. 이는 공교육의 실패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스웨덴을 보라. 입증되지 않은 집단면역을 보건정책으로 추진해 수많은 노인과 이민자들의 죽음을 초래했다. 준비되지 않은 채 안일하게 대응한, 어쩌면 경제 논리를 우선한 스웨덴 보건정책의 결과는 잔인했다. 스웨덴 방역책임자 Tegnell은 노령층이 희생될 위험을 알고도 이를 강행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지만, 여전히 기만적인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 국가기관이 마땅한 대안도 없이 집단면역을 추진한 것은 언어도단이다. 이제 대한민국을 보자. 우리나라가 방역 선진국이라고 자랑스럽게 말하곤 했던 이들은 최근 들어 입을 다물었다. 누군가는
꼭 10년 전, 어느 청년이 일터에서 퇴근하지 못했다. 당진에 위치한 철강소에서 일했던 김씨는 5m 높이의 전기로 위에서 고철을 넣어 쇳물에 녹이는 작업을 하던 중 발을 헛디뎌 추락사했다. 당시 전기로는 섭씨 1천600도가 넘는 쇳물이 담겨 있었고 이에 김씨의 시신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렸다. 김씨는 결혼을 앞둔 상황이었다. 이 비극적인 사건을 두고 한 네티즌은 다음과 같은 시를 댓글로 남겼다. ‘광염에 청년이 사그라졌다/그 쇳물은 쓰지 마라/자동차를 만들지도 말 것이며/철근도 만들지 말 것이며…바늘도 만들지 마라’. 오늘도 2.3명이 일터에서 집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1년에 855명이 산업현장에서 사고로 죽는다. 죽음의 원인은 제각각이다. 떨어져서 죽는 이가 347명으로 제일 많았다. 이어서 끼임(106명), 부딪힘(84명), 깔림‧뒤집힘(67명), 교통사고(55명), 물체에 맞음(49명) 등이 뒤를 이었다. 질병을 얻어 사망한 노동자를 포함하면 하루 평균 5.5명이 죽는다. 광산노동자 503명은 뇌심질환으로 사망했고, 402명은 진폐증으로, 125명은 직업성 암으로 숨을 거뒀다. 이들은 공통적으로 육체에 부담이 되는 작업을 해왔고, 요통을 앓아왔으며, 난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이하 코로나19)가 세계 인류의 일상에 엄청난 영향을 주고 있다. 현재 인류는 코로나19를 떠나서 그 어떤 것도 생각할 수 없는 상황이다. 잠자는 시간을 제외하면 한순간도 코로나19와 관련한 얘기에서 벗어날 수 없다. 유사 이래 인류가 코로나19처럼 동시에 시련을 겪은 적은 없었다. 인류는 현재 코로나19로 절체절명의 위기를 맞았다. 이 같은 위기는 어느 한 국가, 어느 한 개인의 잘못으로 일어난 것이 아니라 인류가 지금까지 살아온 결과의 산물이다. 그래서 코로나19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모든 사람들이 그간의 삶에 대해 성찰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이 문제를 해결할 수가 없고, 이 문제를 해결하는 실마리를 찾지 못하면 지금의 고통에서 결코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자세는 코로나19를 해결하는 데 상당히 중요하다. 짜증나고, 화도 나고, 한숨만 나오더라도 피하지 않고 당당하게 직시해야만 한다. 무엇보다도 코로나19는 그 누구도 책임에서 벗어날 수 없기 때문에 모든 사람이 의무적으로 문제 해결에 나서야 한다. 코로나19와 관련해서 가장 경계할 것은 백신과 치료제가 나오면 코로나19 이전으로
아무것도 만지지 말라! 누구도 만나지 말라! 신용카드를 내밀고, 붐비는 장소에서 말을 한다. 그런데 이런 사소한 일상에서 한 번의 접촉으로 사람들은 치명적인 질병에 감염되어 영문도 모른 채 며칠 내에 죽어 나간다. 영화 ‘Contagion’(2011)에 나오는 내용으로 contagion은 접촉감염(병), 혹은 사상이나 생각 등의 전파(영향력, 감화력, 도덕적 부패) 등의 의미를 지닌 단어이다. 한 번의 접촉으로 일어나는 원인불명의 질병으로 죽음이 전 세계로 퍼져나가면서 생기는 혼란과 그 속에 숨은 음모론, 위기 상황에 무방비로 노출된 인류의 대재난을 그린 미스터리 스릴러다. 전 세계가 연결되어 있어 안전지대가 없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는 영화이기도 하다. 이전의 에볼라 바이러스 백신과 치료제를 개발하는 과학자의 숭고한 정신과 인류 생존의 처절함을 다룬 ‘Outbreak’(1995)에 이어 바이러스성 감염병의 실태와 심각성을 다룬 영화로 한 사람에게 박쥐 등의 동물을 거쳐 엄청난 전염성을 가진 변이된 바이러스가 유입되고, 단순한 일상생활의 접촉만으로도 3~4개월 만에 30여 회의 전파경로를 통해, 10억명 이상이 사망하는 대유행이 발발한다는 내용이다. 현재의
※ 기자들의 취재 후기를 생생하게 전달하는 '취재수첩'이 새롭게 연재됩니다. 얼마 전 편의점에 들르기 위해 잠깐 집 밖으로 나섰다가 황급히 집으로 돌아왔다. 마스크를 쓰지 않았던 탓이다. 코로나19가 세상을 한바탕 뒤집어 놓았는데도 나는 이따금 마스크 착용을 잊어버리고야 만다. 사실 나에겐 코로나19에 감염되어 병원 신세를 지지 않을까 하는 우려보다도, ‘당신은 왜 마스크를 쓰지 않았느냐’는 비난의 눈초리가 보다 현실적인 압력으로 다가온다. 그래서 타인과 공동체의 감염을 염려한 태도라기보다는 사회적 압박으로 인해 일정 부분 강제되는 것에 가깝다. 다만 하루가 멀다 하고 쏟아지는 확진자들과 내일은 ‘2단계’일지 아니면 ‘2.5단계’일지를 두고 전전긍긍하는 자영업자들처럼 더 어렵고 딱한 처지에 놓인 사람들을 떠올리면서 귀찮고 번거롭지만 마스크를 챙긴다. 코로나19 특별장학금을 두고 갑론을박이 이어지고 있다. ‘특별장학금’ 명목이지만 이는 ‘등록금 감면’과 같은 조치다. 지급되는 것이 아니라 등록금 고지서에서 ‘공제’되는 형식이기 때문에 이러한 사실을 모르는 학생은 없다. 지급방식이야 어찌 됐든, 특별장학금 지급에 사각지대에 놓인 학생들의 존재는 문제다. 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