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코끝이 시려 눈을 뜨니 벌써 2019년의 끝이 보인다. 나무는 1년 동안 꽃을 피우고 낙엽을 물들게 하고 또 지게 했다. 정작 나는 1년 동안 무엇을 했는지 잘 모르겠다. 입학하던 2018년 3월의 알싸한 날씨가 아직도 생생한데 벌써 내년이면 3학년이 된다. 학년이 올라갈수록 늘 바쁘게 살아야 한다는 숨 막히는 압박감이 생긴다. 나는 이미 바쁜데 남들보다 안 바쁘면 뒤처진다는 불안감에 걱정만 눈처럼 쌓여간다. 하나의 걱정은 눈덩이처럼 시간이 지나 굴러갈수록 걷잡을 수 없이 커진다. 점점 거대해지는 눈덩이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모른 체 마음에 담아두기만 한다. 어른을 동경하던 시절이 있었다. 한 해를 마무리하는 게 좋았고 빨리 어른이 되고 싶었다. 정작 어른이 된 나는 어릴 적 내가 무엇을 동경했는지조차 잊어버렸다. 어릴 적 장래 희망을 적을 때, 마치 이름을 적듯 망설임 없었던 내가 이제는 아주 낯설다. 친구들의 꿈을 궁금해하고 나의 꿈을 누구보다 자랑스럽게 말하던 그때가 그립다. 언제부터인가 모든 게 망설여지는 내가 참 별로다. 이번 겨울에는 다시 어릴 적 나와 친해지고 싶다. 다시 나의 미래를 기대하고 싶다. 어릴 적 나의 겨울은 눈 오는 날 친
작고 앙증맞은 크기, 한입 베어 물면 너무 쫀득해서 찍혀 나오는 이 자국, 이것은 무엇일까? 바로 내가 가장 좋아하는 ‘마카롱’이다. 사람들은 왜 이 작은 디저트에 열광할까? 나는 그 이유를 잘 알고 있다. 사실 이유는 간단하다. 맛있기 때문에 사 먹는 것이다. 가장 중요한 일이다. 맛이 없으면 아무리 예쁜 디저트라도 사람들은 먹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크기에 비해 터무니없이 비싼 가격이다. 한 개로는 성에도 안 차는데 두 개를 먹어버리면 5천 원이나 써야 된다. 그럼에도 나는 일주일에 한 번은 무조건 사 먹는다. 그저 맛있다는 이유에 그치지 않는다. 내가 마카롱에 이렇게 열광하는 이유는 쫀득한 식감과 다양한 필링의 종류이다. 이 두 가지를 잘 표현한 가게가 바로 ‘스쿱당’이다. 아침 7시부터 약 4시간을 기다려 번호표 2번을 받았다. 나는 한 치의 고민도 없이 그날 판매하는 종류를 모두 구매했다. 가격은 상관없었다. 내가 먹어본 마카롱 중에서 가장 쫀득했으며, 버터크림은 적당히 묵직하고 부드러웠다. 가장 독특했던 마카롱은 ‘팡팡 콘치즈’이다. 보통은 연유와 옥수수만을 사용하는데 여기에 고추냉이를 추가한 것이 신의 한 수였다. 고추냉이가 버터크림의 느끼함을
최근 케이블 채널 엠넷(Mnet)이 <PRODUCE 101> 시리즈에서 시청자 투표수를 조작했다는 사실이 드러나며 큰 질타를 받고 있다. 이 프로그램은 ‘국민 프로듀서’라는 이름을 내세우며 시청자에게 공정성에 대한 믿음을 심어주었고, 더욱이 후반부 시청률이 항상 3~5%에 이를 정도로 매 시즌마다 많은 이들의 관심을 받은 프로그램이기도 했다. 그렇기에 이번 사건은 연습생들의 절박한 마음을 이용했을 뿐만 아니라 참가자에 대한 애정을 갖고 투표한 시청자들을 우롱하는 행위였다는 점에서 공분을 샀다. 내정자가 있었다면 서바이벌 경쟁 포맷을 적용해서는 안 됐다. 공정 경쟁이라는 번지르한 포장지 속에 사실은 승자를 내정해 두고 펼친 대국민 사기극인 것이다. 이는 비단 오디션 프로그램만의 문제가 아니라 각종 채용비리로 얼룩진 취업 시장의 모습을 투영하기도 한다. 회사가 ‘갑’이고 지원자는 ‘을’인 현실에서 특혜채용, 채용비리 등의 문제는 끊임없이 발생하고 있다. 이러한 불공정은 자연스레 노력만으로는 꿈을 이루지 못할 것이라는 ‘패배주의’에 빠지게 만든다. 이미 결과가 정해져 있는 상황에서 자신이 그저 누군가의 들러리일 뿐이라는 무력감을 느낀 채 좌절해버리기도
설화는 상상력의 유산이다. 그래서 설화는 인문학의 가치를 평가하는 데 아주 중요하다. 우리나라 역사에는 아주 많은 설화가 있다. 그 중에서도 일연의 『삼국유사』는 설화의 보고다. 설화 중에서도 시조의 탄생은 후손들에게 큰 자긍심을 선사한다. 경주에 가면 탄생 설화 주인공의 무덤을 만날 수 있다. 경주시 동천동에 위치한 탈해왕릉도 그 중 하나다. 『삼국유사』 권1 ‘기이’에 따르면, 탈해는 용성국의 왕과 적녀국의 왕녀 사이에서 알로 태어났다. 왕은 불길하다고 여겨 왕비에게 알을 버리라고 했다. 그래서 왕비는 알을 일곱 가지 보물과 노비와 함께 궤짝에 넣어 흐르는 물에 띄워 버렸다. 영일에 사는 한 노파가 궤짝을 건져 보니 옥동자가 있었다. 노파가 궤짝을 건질 때 까치가 울었다. 이에 까치 작(鵲)의 앞 부수를 따서 석씨가 되고, 알에서 태어나서 탈해가 되었다. 그가 바로 석씨 왕조의 시조다. 사적 제174호 신라 4대 이사금 탈해왕릉은 찾는 사람들이 많지 않은 문화재다. 그러나 탈해왕릉 옆에는 경주 김씨의 시조가 하늘에서 내려앉은 표암이 있고, 이차돈의 순교비가 있던 백률사가 있다. 탈해왕릉의 가치 중 하나는 시조 탄생의 현장이고, 다른 하나는 소나무 숲이다.
울긋불긋 산마다 단풍이 절정이다. 단풍은 뭐니 뭐니 해도 가을이 제격이다. 그런데 이러한 자연의 조화를 깨고 한 여름에도 붉은 빛을 띠고 있는 단풍이 있으니 이름하여 노무라단풍이다. 일본말로 노무라가에데(野村楓,ノムラカエデ)라 불리는 단풍나무가 언제 한국에 들어왔는지는 모르지만 경복궁 뜰, 강릉 오죽헌 정원, 이순신 사당인 충남 아산 현충원 등에서도 눈에 띄어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모든 나무들이 푸르른 한여름에 하필 노무라단풍 혼자서 붉은 빛을 띠니 더욱 눈엣가시 같다. 노무라단풍은 일본에서 가지고 들어온 것이지만 우리나라에 있는 아름다운 꽃 이름에 일본 사람 이름이 들어 있거나 일본의 꽃 이름을 그대로 번역해서 붙인 경우는 더욱 민망스럽다. 요즘은 금강초롱이라고 부르는 꽃은 얼마 전까지 화방초(花房草, 학명은 ‘hanabusaya asiatica’)라고 불렸다. 화방초의 ‘화방’은 하나부사 요시타다(花房義質)를 일컫는 말로 그는 조선주재 초대공사다. 금강초롱을 화방초라고 이름 붙인 사람은 식물학자인 나카이 타케노신(中井猛之進)으로, 하나부사가 조선에 불러들인 일본 식물학자다. 나카이는 금강초롱 말고도 조선총독이었던 테라우치(寺內正毅)의 공적을 기리기 위해
소설은 스스로를 ‘현장 보고서’라고 했고, 영화는 스스로를 ‘가족 이야기’라고 했다. 조남주의 소설은 심각한 갈등 한복판에서 슬쩍 ‘소설적’으로 건너뛰며 발을 뺀다. 울타리 안을 맴돌며 주변의 넋두리를 한 몸에 받아 안아야 할지 모를 김지영을 두고 말이다. 첫 불쏘시개가 되는 것으로 소설은 임무완수였다. 대개의 소설과 달리 호칭부터 낯설게 하고 건조체를 유지했다. 제3자 시선의 객관화라는, 뉴스도 감정이입을 유도하는 이 시대에 ‘이화(異化)’를 통한 동화(同化)에 성공했다. 영화는 애초에 전략과 갈 길을 달리했다. 김도영 감독의 영화 <82년생 김지영>은 숱한 삶의 고충 중 ‘우선순위’를 택했음을 분명히 한다. 남편은 처음엔 일일드라마 속 딱히 착하지도 못되지도 않은 남편처럼 굴다가 배우 공유의 이미지를 입힌 정대현 씨로 입체화된다. 자상하고 좋은 사람이고 무엇보다 집은 (소설의 24평보다 넓은)30평대다. 경제적 고민을 덜고 말하고자 하는 바에 집중했다. 육아 초기에는 문명의 혜택조차 거의 안 통한다. 엄마는 이전 ‘스펙’이 어땠건 5천년 전 여인네들과 진배없을 과정에 놓인다. 공부와 일만 생각하고 살다가, 처음으로 자신이 ‘동물’임을 (울며)깨
● 뮤지컬 <맘마미아 - 대구> 일시: 2019.12.06.~12.29./장소: 계명아트센터/문의: 1599-19801999년 영국 웨스트엔드에서 탄생한 뮤지컬 ‘맘마미아’는 현재까지도 관객들의 변함없는 사랑을 받으며 20주년을 맞았다. 2004년부터 서울을 포함한 33개 지역에서 상연되었으며 12월 대구에서 열린다. ‘도나’의 우정과 사랑, 딸 ‘소피’의 자아 찾기 그리고 엄마와 딸의 가슴 먹먹한 이야기를 통해 전 세대를 아우르는 재미와 감동을 느껴보자. ● 전시 <EDITABLE : 첨삭가능한>일시: 2019.10.04.~12.29./장소: 수창청춘맨숀/문의: 053-252-2566이 전시는 에디톨로지(Editology), 즉 편집학에 대한 전시로, 다양한 매체의 작품들을 통해 첨삭 행위의 다양한 과정을 볼 수 있다. 관람자가 작품들을 감상하는 과정에서 적극적으로 첨삭 과정에 참여함으로써 관람자와 작가가 함께 교정자 혹은 편집자가 되는 전시가 되기를 희망한다.
“장애인 학교를 누가 좋아하겠나?”, “집값 떨어진다.” 지난 9월 29일 충청북도교육청의 특수학교 설립 추진 중 일부 주민들이 낸 반발의 목소리다. 이러한 이기주의적 모습은 이번만이 아니다. 2017년 9월 강서구 특수학교 설립 간담회에서도 장애 아동 부모들이 지역민들의 거센 항의에 무릎을 꿇고 호소한 일이 있었다. 현재 우리나라의 특수학교는 전국 1백77곳으로 매우 부족한데, 그마저도 전체 장애 아동 8만 명 중 고작 30%만을 수용하는 수준이라 장애 아동 부모로서 특수학교 유치가 절박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특수학교는 일반학교에서 진행할 수 없는 장애아동들의 직업 교육과 사회화 교육으로 홀로서기를 돕는다는 점에서 그 가치가 높다. 실제로 2018년 김해 ‘제1회 희망나눔 페스티벌’에서 특수교육을 통해 대기업 입사에 성공한 장애 학생이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하며 학교와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하기도 했다. 이렇듯 성공사례도 존재하지만 대부분은 그 필요성과 커리큘럼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한다. 이러한 무지함에서 비롯된 이기주의가 갈등을 더욱 심화시키는 것은 아닐까? 특수학교를 꺼리는 우리나라와 달리 독일, 캐나다, 프랑스 등 우리에게 잘 알려진 선진국들은 장애인들
단풍잎에 물이 다 들지도 않았는데 입동이 찾아왔다. 작년에도 이렇게 빨리 계절이 바뀌었나 생각하며 떠올려보니 알 턱이 없었다. 1년 전, 나는 수험 공부 때문에 교실에만 틀어박혀 있었다. 친구들은 감기에 걸릴까 두려워 창문을 꽁꽁 닫았고 햇빛이 공부에 방해된다며 커튼을 쳤다. 열 명도 되지 않는 학생들이 스스로 들어간 밀실에서 하루를 견뎠다. 4시가 지나면 전문대에 합격한 학생들이 먼저 집으로 갔다. 우리는 부러워하며 그들의 뒷모습을 지켜봤다. 우리 반에는 유난히 정시를 준비하는 친구들이 많았다. 반은 간호학과에 가고 싶어 했고, 나머지도 각자의 길이 있었다. 나는 후자에 속했다. 성격도 관심사도 달랐지만, 우리는 친구가 되었다. 저녁에는 다 같이 책상을 붙여 밥을 먹었다. 빨간 기름이 고인 불고기가 나온 날에는 학교 앞 편의점으로 갔다. 수능시험 전날에도 고사장 앞에서 종이로 포장된 초콜릿을 까먹었다. 유난히 따뜻한 겨울이었다. 그 후로부터 1년이 지났다. 나는 내가 가고 싶어 했던 학교, 학과에 입학했다. 함께 저녁과 토요일을 보냈던 친구 중에서 몇몇은 원하는 학교에 갔고, 아닌 친구도 있고, 재수를 준비하는 친구도 있다. 가끔 SNS에 올라오는 파푸아뉴
할 말이 있어서 너를 불렀던 밤이었다. 막 가을이 지나고 겨울이 오려던 찰나였다. 너는 짙은 갈색 재킷에 물 빠진 데님바지. 검은색 벨트. 왼손에 Emporioarmani 손목시계. 고르지 못한 숨. 제법 긴 의자. 내 옆에 네가 앉았다. 고개를 돌리고 속삭이던 내 입가에 너는 눈썹을 추켜세우고 가까이 귀를 댔다. 가로등 밑이었다. 자주 벌겋게 달아오르던 너의 귓불. 어두워도 보이던 너의 찰나들. 나는 내게서 네가 빠져나갔던 시간을 되뇌었다. 하려던 말들이 도망치고 나서야 당신이 왔다. 나는 어쩔 줄을 모르고 애꿎은 입술만 깨물었다. 앞니는 갉아먹는데 익숙했고 봄은 사라지는데 익숙했다. 나는 나부끼는 이파리들과 지나가는 사람들의 발걸음 소리 위에 당신을 눕혔다. 말들은 공중에서 도망쳤고 길을 헤맸다. 애타게 너를 찾았던 그 시절 나처럼. 당신의 일렁이는 동공 위에는 한 겹의 계절이 남아 있었다. 다섯 번째 계절이었다. 속눈썹을 잠그고 했던 간곡한 부탁들. 느린 말투. 옅은 보조개. 이름 모를 향수. 이 센티미터 더 가까이 그 계절이 왔다. 겨울의 초입에서 차갑게 언 내 손은 생의 반대편으로 내던지고 싶었다. 얼굴이 없는 긴 목들이 왼쪽 손목에서 생에 가장 빠